까마귀가 새벽부터 ‘까악 깍’ 짖어댄다. 이런 날은 괜히 심란해진다. 어두움에 휘감겨 고요했던 밤을 서서히 벗어나 동트며 눈 부신 햇살이 온 누리에 퍼지는 신선한 아침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까마귀가 하필 이 시간에 저러지. 목청이 제법 커서 멀리까지 거침없이 퍼져나간다. 과히 달갑지 않은 목소리다. 아니 아예 안 듣는 것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특별나게 그럴만한 직접적인 까닭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라 괜히 그렇다. 까치와는 달리 반갑지 않은 새로 어려서부터 귀에 익을 만큼 어른들에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밖에 다른 감정이나 미워하며 경계까지 할 일이 없을 텐데 선입감이 되었다. 도회지로 나와 한동안 잊고 살아왔던 까마귀다. 그런데 요즘 까마귀가 나타나 저처럼 울어댄다. 목소리 그 자체는 바뀐 것이 없지 싶다. 오히려 더 우렁차고 애절한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 불만이 가득 찬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다른 새였다면 반갑고 그 울음소리를 더 들어보고 싶었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연신 까(?) 깍(?) 짖는 것이 마치 뭔가에 대한 물음표 같기도 하고 의문을 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 무엇을 알고 싶고 무엇이 궁금한 것일까. 어쩌라는 것일까. 혹시 세상에 풀어놓는 화두와 같은 것인가. 자연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 못 하는 것이 인간 때문이란 것인지 조심스럽다. 삼족오란 세발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겼던 전설의 새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면 어미는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 정성껏 새끼를 키우고 새끼는 자라 그 반대로 60일 동안 먹이를 구해 어미를 정성껏 봉양하여 ’반포지효‘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탈을 쓰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학대한다. 이를 꾸짖고 야유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무슨 생각을 하든 여전히 ‘까악 깍‘ 아침을 흔들어대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너에 대한 인식이 밉상에 오히려 역효과란 것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