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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중위의 군대이야기 - "간부숙소: BOQ 생활"
군대에서 병사들보다 간부들에게 주어진 특혜 중 하나는 바로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간부들에게는 '간부숙소'가 따로 제공이 된다.
보통은 '간부숙소' 또는 '관사'라고 불렀는데,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BOQ(Bachelor Officer Quarters), BEQ(Bachelor Enlisted Quarters)라고 한다.
** BOQ와 BEQ의 차이점으로는 BOQ는 장교용 독신자 간부숙소, BEQ는 부사관용 독신자 간부숙소인데, 군대내에서는 그냥 BOQ로 통일해서 불렀다.
간부숙소는 군대의 일과 후에 당직근무나 5분대기부대를 제외한 간부들의 휴식처라고 할 수 있다. 퇴근 후에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놀든지, 먹든지, 자든지 제법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위수지역 이탈금지나 상황발생시를 대비한 연락대기는 반드시 지키면서 자유를 즐길 수 있다.)
내가 지냈던 간부숙소는 3인 1집의 구조였다.
방3, 화장실1,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이었는데, 소대장 3명이서 지내기에 방을 하나씩 쓸 수 있었고, 다른 공간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관리했었다.
크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지만, 청결도와 노후도에 대해서는 정말 문제가 많았다. 제법 깔끔한 성격인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방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를 대청소했는데, 함께 지냈던 고참들은 게임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던 슬픈 기억이 있다.
한겨울의 철원의 날씨는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매서웠다.
하지만 숙소의 보일러는 고장나서 잘 되지 않았고, 오직 침낭과 핫팩으로만 버텨야 했었다.
그러다가 부모님께서 필요한 짐을 갖다 줄 겸 두툼한 극세사 침구류를 갖다 주셨는데 침낭과는 비교되지 않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오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숙소 이곳저곳의 낙후한 시설을 둘러보시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셨지만, 성은이는 잘 할 거라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고 가셨다.
3명이서 지내는데 방이 3개 있었던 것은 각자의 독립된 생활과 짐정리를 할 수 있는 참 괜찮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방 3개가 다 똑같지 않고 너무나 큰 차이가 났던 게 문제였다.
첫 번째 방은 다른 두 방을 합친거의 두 배는 되는 엄청난 크기에 햇빛이 쨍쨍 들어오는 남향방이어서 따뜻하고 곰팡이도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방은 중간 크기의 방인데 창문은 있지만 북향방이어서 약간의 곰팡이가 있었고, 조금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세 번째 방은 라꾸라꾸침대 하나가 들어가면 3분의 2가 채워지는 엄청나게 아담한 방이었고, 창문을 열면 보일러실이어서 기름냄새가 진동했고, 상태가 안 좋았던 보일러는 연소될 때면 할리데이비슨 같은 엄청난 소음을 내주었다.
같이 지내는 고참들과 상의한 결과,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두번째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마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첫번째방에 지냈어도 고참들이 작은방에 지내는 거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을 텐데 가장 큰 방도, 가장 작은방도 아닌 중간방을 쓰게 돼서 가장 적당한 선택지였다고 생각한다.
작은 공간에 짐을 정리한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차곡차곡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을 좋아했고, 특히 침대는 내방에서 가장 청결을 유지하는 공간이었다.
(간혹 고참이 씻지도 않은 상태로 내 옷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내 침대에 눕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짜증이 났다. 하지만 군대이기에 싫은 내색만 할 뿐 크게 따지지는 못 했던 게 참 씁쓸했었다.)
퇴근 후에는 주로 책을 보거나 기타를 쳤던 것 같다.
컴퓨터도 없었고, 폰게임도 안 할뿐더러 여자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고참들이 떠난 후 내가 중대의 선임소대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큰 방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정말 신세계였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따스한 햇빛이 들어왔고, 아무리 짐을 많이 갖다 놓아도 채워지지 않는 엄청난 방의 크기...... 곰팡이 하나 없는 쾌적함까지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 방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전에 사용하던 고참은 청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참이 떠난 뒤에 알 수 없는 방의 냄새와 먼지,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틀에 걸쳐서 대청소를 했다.
누가 봐도 쾌적하고 깔끔한 방이 되었고, 중대장도 내 방을 보고는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방 같네!!"라며 나의 노력을 칭찬해주셨다.
이제 새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사단장 지시가 내려왔다. 새로 전입 온 초임간부 중 하나가 고참들과 함께 지내는게 불편하다며 사단장에게 호소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례없던 '간부 계급별 관사제도'가 생겼고, 소위는 소위끼리, 중위는 중위끼리 지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나는 새로운 방에 옮긴지 한 달도 채 안돼서 방을 떠나게 되었고, 막 중위진급을 했던 참이라 중위 관사에 갔을 때에는 다시 막내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GOP에 올라가기 전까지 1년 넘게 막내생활만 계속했었던 슬픈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간부숙소의 생활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각자의 생활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았던 건 간부들끼리의 '야식시간'이었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지친 간부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건 퇴근 후의 야식, 그리고 술이었다. 보통은 같이 지내는 간부들끼리, 아니면 소대간부들끼리 야식을 먹기도 했고, 가끔은 중대간부 전체가 모여서 야식을 먹기도 했었다.
관사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음식점'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다행히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이런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즐겁고 먹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하루의 즐거웠던 일 같은 가벼운 얘기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지휘 방향성에 대한 얘기 같은 무거운 주제까지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었다.
전입 초기에는 고참들의 술 강요가 다소 귀찮기도 했지만, 내가 고참이 될수록 그런 강요가 없어져서 더 맘 편히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술 취한 고참들이 따로 불러내서 욕을 할 때도 있었지만, 부딪혀봤자 나만 손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그런 고참이 되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하곤 했었다.
퇴근 후에 특히 부사관들과 노는 게 정말 즐거웠다.
같은 장교들끼리는 부대에서나 퇴근해서나 똑같은 선후임의 관계가 이어졌지만, 부사관들과의 관계는 참 묘했다. 부대에서는 경어를 사용하며 서로를 존중했지만 퇴근 후에는 마치 친구처럼 편안했다. 반말도 하고, 몸싸움도 하면서 장난치면서 지내는 관계에서 출근하면 다시 달라지는 관계는 묘한 즐거움을 주었다.
술에 취해서 뻗은 부사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두고두고 나만의 무기가 되곤 했었다. 가끔 나한테 이기려고 달려들 때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상황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관사에서 지내다 보면 배달음식을 정말 많이 먹는다.
철원 와수리에 있는 웬만한 배달음식은 다 먹어본 것 같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먹는 음식은 늘 치킨, 피자, 족발을 벗어나질 않는다.
거의 매일같이 야식을 먹다 보니 몸도 나빠지는 거 같고, 질리기도 해서 가끔은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특별한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관사에서 같이 예배드리는 다른 중대 고참이 있었는데, 둘 다 요리하고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해서 한 번은 고구마케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아마 전국의 군인 중에 관사에서 고구마케이크를 만들어 먹은 사람은 손에 꼽힐 거라 생각된다.
활동량이 많은 군인에게 하루에 세 끼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서 구입했던 미니오븐.
미니오븐에 토스트나 베이글을 구우면 아주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BOQ에서 크림치즈베이글을 만들어 먹는 군인도 거의 없을 것 같다. 가끔 주변 간부들에게 '괴짜'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관사에서 매일 배달음식과 술을 먹고,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지내는 것보다는 괜찮은 취미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간부들과 밖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오는 길에 초코에몽을 하나씩 먹으려고 마트를 들렀다. 마트에 들어가니 마시멜로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에 놀러가서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던 추억이 떠올라서 마시멜로를 사려고 하니까 다른 간부들이 맛도 없는데 그걸 왜사냐며 나를 질타했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서 모닥불 대신 가스렌지에 구운 마시멜로를 간부들에게 맛보여주니 맛있다고 난리다. 매일 PX에서 과자만 사먹을줄 알았던 간부들에게 살짝 구워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녹아있는 마시멜로는 처음 먹어보는 별미였을 것이다.
역시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언뜻 생각할 때는 삭막할 것 같은 군인관사 BOQ.
하지만 나름대로의 꿈과 낭만이 있는 곳이다. 짧은 머리의 그을린 피부의 군인들이 모여서 생일케이크에 초를 켜고 축하파티를 하기도 하고, 배불리 먹고 뒹구르며 계급을 떠나 허물없이 친구와 형동생이 되어 도란도란 놀았던 기억은 군생활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이다.
어떤 환경에 있느냐보다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조금만 깨끗하게 지내려고 정리하고, 조금만 즐겁게 지내려고 생각을 해본다면 얼마든지 군인 숙소에서도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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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 전방 철원에서 복무했던 초급장교의 군생활 이야깁니다.
장교들은 별로 안들어 오니 그들의 군생활은 어떤지 좀 궁굼하죠! 맹호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