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부자 넘치는 美…아파트 올인하는 韓
노후 대비 이대론 안된다
(1) 연금 선진국을 가다
美, 퇴직연금 적극 투자…노후 소득이 은퇴 전의 80%
韓, 퇴직금 중도인출해 아파트 '영끌'…노후 대비 막막
나스닥 등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미국의 연금 백만장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인 401K 등을 통해 주식시장에 장기 투자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뉴욕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데이비드 슈워츠 씨(55)는 내년 둘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조기 은퇴할 계획이다. 노후 걱정은 없다. 28년간 적립한 401K와 개인은퇴연금계좌(IRA) 덕분에 월평균 8500달러(약 110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는 “아내와 한 달에 한 번씩 국내외 여행도 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전모 부장(51)은 은퇴 후 인생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3년 전 마포구에 30평대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도 모자라 퇴직연금까지 중도 인출해 아파트 구입 자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전 부장은 “월급 실수령액이 1000만원 안팎인데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월급통장에 남는 게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5%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2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 샐러리맨의 노후 준비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은퇴 후 소득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50.8%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 비율이 81.3%에 달한다. 은퇴 전 평균 1억원의 연봉을 받았다면 은퇴 후에는 매년 800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S&P500과 나스닥시장 등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연금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수십만 명이다.
영국에서는 집값이 크게 오르는 와중에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주택 구입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퇴직연금 등으로 확보한 노후 자금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노인 인구가 늘어서다.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은 다양한 인센티브 등을 통해 개인의 노후 대비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하는 등 노후 대비를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섰지만 국민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에셋증권이 40~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3명은 한 해 동안 퇴직연금 수익률을 한 차례도 조회하지 않았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장은 “고령화 시대 국민의 노후자금 대비를 지원하기 위해 복잡한 세금 제도를 정비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美선 흔한 '연금 백만장자'…"증시 불안해도 연금은 안 깬다"
401K, 10년간 연평균 8~10% 수익…30년 일하면 충분히 백만장자 돼
‘은퇴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누리는 연금 백만장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운용회사 피델리티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인 401K 연금자산이 100만달러가 넘는 가입자는 약 37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01K 백만장자는 2만1000명이었는데 14년 만에 18배 급증한 것이다.
이병선 모건스탠리 뉴욕 본사 퇴직연금디렉터는 “연금 백만장자는 이제 평범한 사례가 됐다”며 “미국 대졸자가 30년 이상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증시 활황으로 연금자산 200만달러를 넘긴 고객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취업할 때 401K 매칭 비율 따져
미국인의 넉넉한 노후소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401K다. 401K를 중심으로 한 사적연금 제도가 다른 국가보다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공적연금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9.2%로 한국(31.2%)보다 8%포인트 높은 수준이지만 사적연금 소득대체율은 42.1%로 한국(19.6%)의 두 배가 넘는다.
401K 제도는 1981년 도입된 후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개인투자자의 투자 패턴을 바꾸는 선순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달 일정액의 퇴직금을 근로자와 회사가 매칭식으로 부담해 적립금을 쌓고, 근로자가 이를 주식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그 성과를 노후보장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릿 세이버그 TD카우언 매니징디렉터는 “요즘 미국에선 취업할 때 연봉뿐 아니라 401K 매칭 비율도 필수 판단 기준이 된다”며 “유능한 인재는 401K 플랜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은 배제하기 때문에 기업들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401K가 대세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세제 혜택이 있다. 정부는 401K 적립금 투자로 얻은 이익에는 과세를 최대한 유예해준다. 또 근로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할 때 401K에 적립하는 금액은 과세표준에서 제외해 주고 있다. 이 기준은 1987년 연 7000달러에서 꾸준히 올라 현재 2만2500달러(50세 이상은 3만달러)까지 높아졌다.
은퇴 후 401K 계좌에서 적립금을 인출할 때도 낮은 소득세율을 유지해 준다. 중도에 해지하면 높은 소득세와 함께 10%에 달하는 벌금을 내도록 해 401K가 근로자의 노후자금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업에도 401K 적립금에 대해서는 특별법인세를 면제해줘 세금 부담을 덜어줬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으로 자동 가입 제도가, 2007년 근로자가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금융사가 대신 운용할 수 있게 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면서 401K는 더 힘이 강해졌다.
미국 증시에 대한 믿음…연금런 없어
최근 10년간 미국 401K의 연평균 수익률은 8~10%에 이른다. 401K 연금 자산의 42%는 주식형 펀드에, 31%는 디폴트옵션의 대표 상품인 타깃데이트펀드(TDF)에 투자돼 있다.
장기 투자와 복리효과의 마법은 시너지를 일으켜 수십만 명의 연금 백만장자를 탄생시켰다. 최근엔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른 시간 안에 연금 백만장자가 되기 위한 플랜이 유튜브 등 SNS에서 유행할 정도다. 고학력 직장인은 주식형 펀드, 생산직 근로자 등은 TDF를 많이 선택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디폴트옵션과 401K로 조성된 자금은 미국 주식시장의 안전판으로도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401K 적립금 규모는 2010년 4조8000만달러에서 2021년 말 11조달러로 불어났다. 개인연금인 IRA 등까지 합친 사적연금 적립금 규모는 39조3000억달러(약 5경2500조원)에 달한다. 세이버그 매니징디렉터는 “증시 흐름이 불안할 때도 연금을 깨는 연금런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적립금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주식시장이 10년간 꾸준히 아웃퍼폼해오면서 미국 증시와 퇴직연금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첫댓글 한국은 주거비 비중이 너무 큽니다. 연금 백만장자 부럽습니다.
비정성적인 구조인데 대안이 없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