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리] 왜, 견진성사는 ‘꼭’ 받아야 하는가요?
세례-견진-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로서 ‘한 묶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이 세 가지 성사가 주교의 집전 하에 한날에 함께 이루어졌지만, 신자 수 증가 등 사목적 이유로 주교의 협력자인 사제가 세례-성체성사를 거행하고(단, 죽을 위험이 있는 이에게는 사제 역시 견진성사를 집전), 그 이후 적절한 시기에 주교가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성사거행에 있어 시간적 분리가 있다 해도,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로서 세례-견진-성체성사의 단일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곧 세례-성체성사를 받은 이는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 입문과정을 견진성사를 통해 ‘완성’해야 한다(『교회법』 제890조 참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견진성사는 왜 ‘꼭’ 받아야 하는가?
첫째,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견진성사 예식서』)하기 때문이다. 견진성사 예식은 ‘세례서약 갱신’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세례와 견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서, 견진이 세례의 은총을 완성함을 말해준다. 단, 견진이 세례의 은총을 ‘완성’한다는 말은 세례 때 주어진 은총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무언가를 보탠다는 말이 아니라, 견진(堅振, Confirmatio), 곧 ‘굳건’, ‘강화’, ‘확정’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세례로 받은 은총을 증가시키고 심화시킨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견진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 공동체와 ‘더욱’ 굳게 결합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03 참조).
둘째, 견진성사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통해 영적 선물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성령의 선물은 성령 강림을 통해 온전히 실현되는데, 이 성령 강림의 은총은 교회 안에서 견진성사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교리서』 1288 참조). 특별히 견진성사는 예식의 핵심인 ‘안수와 도유’를 통해 성령의 풍요로운 선물, 곧 일곱 가지 은혜(지혜, 통찰, 깨우침, 용기, 지식, 공경, 경외)를 전해줌으로써 견진자를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교회헌장』 11)으로 거듭나게 도와준다.
셋째,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성년식’으로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한 성사”(『교리서』 1308)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출생 후에 성장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하듯, 세례를 통해 시작하고 출발한 믿음의 여정은 결코 중단되거나 멈춰질 수 없고, 신앙을 강화하는 은총이 주어지는 견진성사를 통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길은 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만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마땅히 동반되어야 한다. 된장과 고추장은 항아리 속에 그저 가만히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건강한 음식이 되기 위해 순간순간 ‘발효’되고 있다. 분명 우리 역시 견진의 은총에 힘입어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는 순간순간 보다 더 나은, 보다 더 익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있다. 단연코 견진성사는 교회의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신앙의 참된 기쁨과 성장 그리고 변화로 넘어가게 해주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2024년 11월 10일(나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