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네 집
“여보시오 거기 장비네 집이지유? 나 준희 할맨데 선상님지슈?“
“네? 아아 예예 준희 할머님 이시군요 웬 일로 전화를 다 주셨
습니까?“ “준희가 많이 아픈디에미가 병원 일로 바쁘다고 연락
좀 하라구 혀서.“ 굉장히 촌스러운 대화 같지만 할머니는 전직
영문학과 교수이시다 모습과 말씨가 너무 달라서 묘한 언밸런
스의 매력을 발산 하시는데 영문학과 교수 시절에 한복을 입고
강의하셨다고...심심하면 종종 엽기적인 얘기를 잘 하시곤 한다.
우리 집에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당에 흙 파고 노는 일도 드문 일이고 장비 처럼
커다란 개와 실랑이하면서 즐길수 있는 경우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과자를 남겨다가 주는 경우도 허다하고
오늘처럼 아파서 오지 못하는 날이면 수업은 빠지더라도 병원
가는 길에 담밖에서라도 장비를 불러보고 지나간곤 한다.“장비
앉아, 장비 엎드려 장비 손 올려봐 “우리집 무식한 개는 소리
만 어디서 들리는데도 듣던 목소리라 시키는대로 하면 먹을 것
생길까봐 말을 잘도 듣는다 무슨 소리가 나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우리 일행은 한바탕 난리가 나도록 웃어제끼고 기분좋
게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우리집은 ‘장비네 집’ 으로 전락되어
있는 실정이다 작년에 먼저의 장비를 장가 보낸 후 젖을 막 뗀
상태의 강아지를 데려다 기른지 9개월 되었는데 덩치가 뻥튀겨
서 송아지만하다.순종 진돗개와 일본 투견의 합작품이라나? 백
구가 다리도 긴것이 제법 맵시도 있고 청년 티가 물씬 난다.생긴
것도 제법 잘 생겨서 보는 사람 마다 그 진돗개 참 잘 생겼다.
족보가 좋은가 보군..하며 지나간다 말도 잘 알아듣고 동네 지키
는데는 파출소장과 거의 맛먹을 정도다. 다 좋은데 문제는 굉장
한 단순 무식의 총 집결체라는데 있다.여름이라 빠진 털이 마당
여기저기에, 황야의 무법자 영화에 나오는 덤불 덩어리처럼 굴러
다니길래 궁리 끝에 애완견용 솔로 빗겨서는 도저히 안될 것같아
마당 청소하는 나이롱 빗자루를 들고 개털을 빗겨주러 다가갔더
니 아 글쎄 이 무식한 것이 반갑다고 당나귀 뛰듯 달려 드는 것이
아닌가.달려드는 힘이 얼마나 센지 몇 번을 넘어 지면서 윽박 지
르고 사료도 주면서 구슬러서 행사를 겨우 마쳤다.샤워를 하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장비를 보고있다가 문득 ‘저 개새끼도 철학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느낌이 좋아 쉽사리 접근했다가 마음이 상하
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나 브로 맴돌다가 ‘아 내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사람 사귀는 일은 참으로 능력 밖의
일인 듯 싶다.장비는 무표정으로 꼬리만 흔들어서 감정을 표현하
곤 한다 너무나 고차원적 제스츄어같지 않은가 우리는 표정을 제
어하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된 다열질 아닌가 말이다.좋다고 말
하면서 뒷맛 씁쓸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쑥스러운 척 내숭을 있
는대로 떨면서도 잇속을 챙기는이가 얼마든지 있다.감정을 제어
하지 못하고 독설로 상처 주는가 하면 그것 때문에 다시 내가
상처 입는 경우가 허다하여 도대체 숫자로만 나이를 먹는 것 인
지 무의미하게 시간을 살아 낸 것인지 갈피를 못잡고 허공에 메
아리도 없는 의미없는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이다 ‘날 무시하지
마라 제발 나를 인정해, 보여지고 느껴지는 모든 것이 진실인
것을 믿어봐,이쯤 되면 우리는 장비의 개똥철학을 배울 필요성
을 절실하게 느낀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천둥 벼락이 난리를
부려도 그저 하루에 일어나는 일상이려니, 아는 이만 보면 내
마음이려니..하며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 대는 벙어리 제갈공명
의 속을 우리는 배울 때가 되지 않았는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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