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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영월
피방아잠마 추천 0 조회 87 10.03.16 17:22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영월은 내가 살고 있는 태백과는 기차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 거리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요즘은 길이 아주 좋아져 1시간 이전에 도착한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월

그 영월과 태백은 문화가 많이 다르다.

영월을 고등학교 소풍때 처음 와 보았다.

장릉으로 소풍을 갔었다.

영월역에 도착한 열일곱의 나는 영월 역을 보고 놀랐다.

열일곱의 나의 머리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역이 아니였다.

기와로 만들어진 역은 나의 눈길을 잡아 끌어 장릉으로 가는 나를 자꾸만 돌아 보게 하였다.

우리는 4줄로 서서 긴다리를 건너서 장릉으로 간 기억이 난다.

스물셋의 내가 영월을 다시 온 것은 노란 은행잎이 영월을 덮고 있던 가을날이 였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선배 언니가 사북에서 영월로 시집을 오던날이 였다.

보슬비가 내려 시집 오는 처자를 방기고 있었다.

스물셋의 난 결혼식을 끝내고 나온 음식에 놀랐다.

아니, 고추가루 더덕더덕한 부침개가 이상하였다.

스물셋의 난 태백에서 같이 간 스물여섯의 언니 귀에다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이동네 웃긴다.

큰일을 치루는데 깔끔한 음식을 안 내고,

고추가루 더덕더덕한 김치로 부침개를 만들어네,

지저분해 보이게

스물여섯의 언니는 스물셋의 나의 말을 자르면서

그래, 참 웃긴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튀김이나 하지

지저분한 부침개가 뭐야, 그지

스물셋의 난 불고기전골로 밥만 먹고 있었다.

한가지 음식에만 젓가락을 가는 스물셋의 나에게 영월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술 한잔과 그 지저분하다고 느껴진 부침개를 안주로 내밀었다.

거절을 못 하고 먹은 안주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니, 그 맛은 열일곱 나의 기억 속에 늘 남아 있던 영월하면 떠오르던 전통미가 있는 영월역을 밀어내고

새로운 영월로 자리잡았다.

스물셋의 내 머리 속에 있는 영월은 청령포도, 장릉도, 장릉 옆 소나무가 아닌

맛있는 메밀부침개, 노란 은행나무잎으로 가득하던 길, 한국미 넘치는 영월역 건물로 남아 있었다.

스물넷의 나도, 스물다섯의 나도, 가을이 떠날 무렵에 휴일이면 기차에 올랐다.영월로 가는 기차에,

전통미 넘치는 영월역을 나와 긴 다리를 건너서 노란색 낙옆으로 가득한 노란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그 노란색 아스팔트를 걷다가 시장 한 귀퉁이에 솥뚜껑 엎어놓고, 메밀가루 풀어서 김치 두장 깔고 부치는 부침개를 먹기위해 자판앞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몇 일전, 마흔셋의 난 영월에 갔다.

기차를 타고 전통미가 넘치는 영월역에 내렸다.

스물셋 영월에 왔을때 처럼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 음식에 스물셋의 내가 먹던 음식은 없었다.

어느지역이나 똑같은, 아니 금액에 따라 메뉴가 조금씩 달라지는 그런 부폐였다.

가을이면 노란색 명품길을 만들던 은행나무도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영월에 살고 있는 혜지니님은,

은행나무가 있어 더 멋진길이라는것을 모르는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라졌다고.

전선줄이 걸린다고,

간판이 안 보인다고,

낙엽 쓸기 싫다고,

그렇게 그렇게 은행나무가 사라졌다고,

마흔셋의 영월은 스물셋의 영월과는 달랐다.

시집와서 20년을 넘게 살고 있다던 혜지니님은 영월은 그 때와 아무것도 달라진것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마흔셋의 나의 눈에 스물셋 기억 속에 영월은 달라져 있었다.

영월 거리를 걸었다.

혜지니님이 부침개 파는곳에 있다고

영월 왔으니 전병 먹고 가라고, 전화를 걸어 왔다.

스물셋 내 기억 속에시장과는 조금 다른 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맨 구석 자리에 혜지니님이 앉아 있었다.

솥뚜껑 엎어 놓고 앞치마 입고 앉아서 열심히 전병을 말고 있는 아줌마는 손으로는 전병을 말고 따신눈으로 밝은미소로 인사를 한다.

혜지니님은 전병 한박스를 나의 손에 쥐어 주고는 일이 있어 자리를 떠나고,

난 아줌마에게 메밀부침개를 부탁하였다.

부침개 부치면서 나눈 이야기는 참 고운이야기 였다.

무침개 아줌마는 올해 예순이라고,

얼굴은 예순이 아니였다. 화장 한번 안 해 본 얼굴이였다. 하지만 고운얼굴이 였다.

서른셋의 나 예순살의 나를 떠올리면서 저렇게 밝게 나이 먹었으면 싶다.

어린나이에 삼척에서 영월 산골로 시집와서 힘들게 힘들게 산골 살림 살아다고,

자식이 셋이 있다고,

둘은 짝지어 주고, 막내 하나 남아 있다고,

그 자식을 위해 젊어 힘 있을때 벌어서  한푼두푼 모아 놓아던 돈을 모두 주어다고.

자식들에게는 부모의돈은 맥이 없어, 그냥 사라지더라고,

부모는 힘들게 힘들게 모은돈이 지식들에게 가서 그 아들딸에게는 너무도 쉽게 쓰이더라고, 이젠 줄 돈도 없지만 주지도 않는다고.

살면서 고개 고갯길 많았어. 한 고개 넘고 나면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기다리고 있는 고개 있으면 숨 한번 크게 쉬고 넘어다고.

힘든 고개도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부침개 장사 처음 시작 하였을때 산골에 살던 아줌마 장사가 처음이라 이 구석자리 생각없이 얻어다고,

옆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여다고, 구석자리라서 장사 힘들겠다고,

구석자리라도 이미 돈 주고 얻어기에, 맛으로 승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여다고.

앞에 있는 저 많은 부침개 자판 다 두고 찾아 오는 사람들 생기더라고,

남들 보다 열심히 하니깐 기다려다 사 가는분도 있고, 멀리서 주문이 들어와 버스로 보내 준다고,

아무리 주문이 많아도 남의 손 안 쓰고 혼자 한다고, 

힘들어도 시장에 나와서 부침개 부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몇 해전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아다고,

그 수술  후 영월집에 다녀와도 된다는 의사선생님 말 끝에

부침개 부치면서 살아 가는데 부침개 장사 하고 싶다고,

부침개  장사하기 위해서는 김치를 해야 하는데,

영월집에 가면 김치 해  놓고 와도 될까요? 라고 물었어다고.

의사 선생님은  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더니, 꼭 부침개 장사 해야 하느냐고,

그래서 꼭 해야 한다고, 그리고 하고 싶다고,

의사 선생님은 그럼 집에 가서 김치 해 놓고 오세요.라고 말하여다고,

김치 해 놓고 오라는 그 말은, 내가 살아구나, 내가 살 수 있구나, 가슴이 터질것 같이 기뻐다고.

영월집에 와서 김치 해 놓고 서울로  가면서 행복하여다고.

난 부침개 아줌마의 밝은 얼굴이 더욱 더 밝아 보였다.

보통 그 나이에 아줌마들은 암 수술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살 수 있을까요? 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 볼 텐데,.....

시장 안에서 하루종일 기름 냄새  맡으면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부침개를 부치고, 전병을 말아도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것에 감사 할  줄 아는 아줌마라서,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 할 줄 아는 아줌마라서,

큰 수술후 불안한 마음을  내놓지 않고 김치 해 놓고 와도 될까요?라고 돌려 물어 볼 수 있는 아줌마라서,

그 부침개 아줌마의 말들이 살아서 마흔셋 내 가슴 속에 내 머리 속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영월, 마흔셋의 나 기억 속에 영월역도, 노란색 은행나무 가로수도, 메밀부침개도, 아닌 시장안 맨 구석 자리 딱딱한 의자에 앉아 솥뚜껑 엎어놓고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으면서 메밀전 부치고  메밀전병 말고 힘들게 살아도 행복하다고, 일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밝음을 잃어 버리지 않는 부침개 아줌마가 살아가는곳으로 남아 있을것이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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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3.17 20:28

    첫댓글 피방님...아니 주경맘... 글도 주경맘답게 씩씩하게 활달하게 잘 쓰네요.^^ 나는 그날 태백행 기차를 탈때까지 같이 있으려 했는데...( 태백에서 영월까지 왔는데, 혼자 있게 하는 게 맘에 걸려서...근데 또 오랜만에 영월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고싶어 하는 것 같아서...슬쩍 빠진거..ㅎㅎㅎ) 저 사진속의 태복분식 주인 아주머니...보셔서 아시겠지만, 참 열심히 삶을 사시는 분이랍니다. 나는 자세한 건 실은 잘 몰라요. 그냥 자주 가다보니...열심히 사시는 게 눈에 보여서...수술받으시고 쉬시는 동안...전병을 다른 곳에서 사먹을 수 없었지요...오며가며 주인없는 가게를 바라보는 맘이 짠...언제 오시나..오실 수 있는걸까...하면서....

  • 10.03.16 23:26

    너무 길어서 내일까지 읽고 독후감 발표할게요

  • 10.03.17 08:30

    예쁜 마음, 예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피방아잠마~ 마음속에 사랑과 정이 절절하게 흐르네요.
    글. 넘 잘 쓴다. 길~~~어서 한 참 읽었어.

  • 10.03.17 09:39

    혜진님..태백분식 아니구요..^^ 태복분식 맞구요 ^^
    작년에 우리4개 지역에서 봉화마을에 음식대접할때.
    영월에서는 전병과 메밀부치기..그리고 닭강정을 가지고 갔었는데...
    그때 가지고 갔던 전병과 메밀 부치기가.. 저 태복분식 작품이었습니다.
    봉화마을에 간다고 하니까 ,
    영부인께 드리라고 전병과 메밀부치기를 따로 싸서 주시던 센스와 고마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님들도 마니 애용해 주세요 ^^

  • 10.03.17 20:27

    ㅎㅎ 제가 태백분식 이라고 썼네요? ㅎㅎㅎ 태복분식인데...ㅎㅎㅎ

  • 10.03.17 17:27

    피방 주인 답습니다. 스물 셋에 바라보는 영월과 마흔 셋에 바라보는 영월의 모습도 사람사는 정도 다를 수 있지요, 그러면 부침게 맛도 달라지지 않을 까요?
    스뭄 셋의 기억을 이리도 정확하게 기억하시니 피방님은 천재 혹은 ...장문의 글 고맙습니다

  • 10.03.18 10:58

    글이 장물에 찍어먹는 부침개 맛보다도 더 맛갈스럽습니다. 그날 그 예식장에 나도 잠시 들렀었는데 오셨으면 연락주시지 않구여. 그랬음 탁배기 한사발쯤은 대접할 수 있었을텐데여... 품격있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광재사랑! 나라사랑!

  • 10.03.18 21:27

    피방님 참.. 마음도 글도.. 아름다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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