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나았을 이야기들
공직 수행 능력 검증해야 할 인사청문회
국민들에게 트라우마 안기는 구태 멈춰야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전직 공무원 A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었다. 지금보다 위장전입에 둔감하던 2000년대, 이사와 자녀의 입학 준비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아내는 이사 갈 동네에 사는 친척집에 잠시만 아이 주소지를 옮겨두자고 했지만 A는 그러지 않았고, 아이는 3년 동안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경제 부처 공무원도 아닌데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안 했다. 사적인 모임에 모르는 사람이 두 명 이상 끼면 가지 않았다. 자칫 ‘업자’와 엮일 수 있기에. 부친상에 부정청탁금지법 한도를 넘는 부의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돈을 모두 돌려줬다.
이런 A를 보는 주위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장차관이라도 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리는 이도 있었다. 장차관은 못 됐지만 영예롭게 퇴직한 A에게 왜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살아왔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A는 “공직자는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공무원 혹은 ‘어쩌다 공무원’에게 이런 수준의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요구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인 수준의 도덕성은 갖추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런 기대는 짓밟혔다.
교육 문제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자식 잘 키우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평범한 국민들 중에 이번 인사청문회 이전에 풀브라이트 장학금이라는 걸 들어본 이는 얼마나 될까. 학부생 자녀를 논문 저자나 연구원으로 키울 만큼 인맥이 있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아빠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고 의대에 갈 수 있는 자녀는 얼마나 될까. 물려줄 게 없으니 공부라도 시켜야 한다며 열심히 동네 보습학원비를 벌던 수많은 부모들은 난데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가진 사람들이 더 이재에 밝다는 걸 알게 되는 것 또한 씁쓸한 일이다. 고가의 외제차를 사면서 위장전입을 하면 매입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공공기관 법인카드 결제가 금지된 시간에 결제를 했다가 취소하고 재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부모나 배우자와 부동산 거래를 할 때는 세금을 최대한 안 내는 게 룰인가 싶어질 지경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불법이나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공정과 상식’에 맞는지 묻고 싶다. 사전 검증을 엉망으로 한 정부 탓에, 국민의 눈높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관 한번 해보겠다고 등판하는 사람들 탓에, 인사청문회는 번번이 국민들 마음을 할퀴고 있다.
2000년 국회법 개정과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그간 국민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따로 있다는 걸 상기시켜 왔다. 여기에 덤으로 국민을 대표해 인사 검증을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수준까지 알려줬다. 없는 이모를 만들어내고, 영리법인을 사람인 줄 아는 이들이 무엇을 검증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이 정도면 청문 대상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인사청문회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이다.
우리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알고 싶은 건 그들이 ‘공직을 잘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는지다. 그런데 그들은 자꾸만 ‘기상천외한 능력’을 보여준다. 무책임한 검증단, 부도덕한 후보군, 무능한 국회가 삼위일체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암담하다.
김희균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