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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위 집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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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1명에게서 가장 많이 선정된 음반에 먼저 순위를 매겼다.
> 2. 선정된 음반 횟수가 같으면 개인 순위의 합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순위를 매겼다.
> 3. 다음 '100대 명반' 순위 옆의 ( )안의 숫자는 선정 위원들에게 지목받은 횟수를 의미한다. 전체 1위인 들국화 1집의 경우는 선정 위원
전부에게서 선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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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정 위원(가나다 순임/총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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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정(서울스튜디오 마스터링엔지니어), 곽택근(신나라 레코드 영업부 대리), 김기정(펌프), 김민규(서브기자), 김영대(나우누리 뮤즈),
김종휘(팬진공편집인, 인디음반 제작실장), 류상기(다음기획 제작/기획부장), 박민희(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박상완(기독교방송 PD), 박준흠(서브 편집장), 신승렬(나우누리 뮤즈),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유현숙(논픽션작가), 이창기(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조경서(경기방송
PD), 조성희(서브기자), 조원희(카사브랑카, 슈거케인), 진용주(우리교육기자), 최순식(하나뮤직 기획/홍보실장), 한유선(자유기고자), 황정(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현실보다 과대포장되어 온 것이 과거이고 보면 그러한 거품을 걷어내고 결과물 자체를 냉정하게 응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경제적인 여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교묘한 통제에
끊임없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하던 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한 회상이 단지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로 그쳐진다면, 그리고 80년대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 의미를 갖는 명제가 한낮 운동권의 회상으로만 그친다면 그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 네 명의 젊은이들의 이 역사적인 첫 발디딤은 추억으로만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네 가지 독자적인 아이덴티티의 조합으로부터 파생된 들국화라는 이름의 록밴드가, 그리고 그들이 내지른 첫 번째 외침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있어서, 아니 적어도 대중음악에 있어서만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호황과
그 뒤에 얼굴을 숨긴 제도권의 입김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 채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던 가요계와 자신의 틀에만 안주하고자
하는 록과 모던 포크 등 대학 중심의 음악들은 위와 밑으로 나뉘어 더
이상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들국화가 던진 정사각형의 출사표는 긴 동면에 접어든 듯한 대중음악을 비로소 깨우게 된다. 들국화의 데뷔앨범은 각자 역량을 충분히 갖춘 네 명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음악이란 현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이 땅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 시킨 작품이다. <그것만이 내세상>에서의 전인권의 절규와 <매일 그대와>에서 보여준 최성원의 감성어린 목소리, 허성욱의 절제된 건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나타난 조덕환의 곡 쓰기, 그리고 최구희, 주찬권, 이원재 등의 당시 최고의 세션들 등.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이 음반이 철저한
싱어송라이터의 감각과 역량으로 라이브를 위한, 라이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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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위.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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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등등 모든 면에서 진정 "뛰어나다"라는 감정서를 붙여도 손색이 없는 시대의 명작이다. 당시에는 들을 수 없었던
최신조류의 팝/록 음악들이 가요에 접목되어 선보여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뛰어난 음반이다. 이 앨범이 다른 록
명반들과 그 의미를 달리 하는 것은 자극히 '음악적'인 면에서 훌륭했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사회참여적이지 않았고, 가사에 과장된 시적
은유를 표현하려고 않았으며 자신의 음악에 과장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았다. 이들 형제들은 솔직하지만
간결하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자신들의 순순한 음악적 열정을 가사로
표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탐구와 실험에 입각한 수준 높은
연주력을 한 장의 음반에 담아 내었다.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늦어진
것은 그들의 음악에 숨겨져 있는 음악적인 뛰어남을 이해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한 듯한 노랫말에 숨겨진 독특한 코드전개와 연주스타일은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분명 음악적으로는 높게 평가될만한 것이었다. 선구자적인 측면으로나 여러 음악적인 천재성에서 보아도 이를 능가하는 다른 앨범을 찾기 힘든, 명반 중의 명반이다.(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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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위.델리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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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항이다! 아니다!"의 '뻣뻣한 록 담론'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어하는
모든 모던로커들의 고민대로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그냥 팝'이라고
규정하
고 있다. 사실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선입견'을 만들어주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너무나도 이 앨범과 잘 어울리는 주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이디엄으로부터 몇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그들의 음악관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주장에 어울리는 트랙들을 선보이고 있는 점이 바로 그 증거물이 된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트랙중의 하나인 <챠우챠우>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연주력과 과시'도, '상업적인 안배에 의한 곡 구성'도 없는 이러한 앨범이 그렇게도 대중친화적인 용어인 팝'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승리'이다. '통신상의 공간'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니는
그들이지만 앨범의 완성도는 어쩌면 경멸적이거나 핸디캡일 지도 모르는 그런 꼬리표를 어는 곳에 달아야 할 지 궁금하게 만들어버린다.(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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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위.유재하 사랑하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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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발표 직후 사고를 당해 단 한 장의 앨범이자 유고작이 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우리에게 아까운 천재 뮤지션을 잃었다는 깊은 아쉬움을 남긴 앨범이다. 그는 천상에 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지금까지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유재하 추모 앨범에 참여한 명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지금의 '발라드' 진영의 발군의 주자들 모두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유재하가 조용피의 위대한 탄생을 거친 후(조용필 7집 당시 조용필과 흡사한 목소리로 백보컬을 넣던 이가 바로 유재하였다) 원맨 밴드나 다름없는 세션으로 발
표한 이 앨범은 클래시컬한 구성의 곡이 제공하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과 같은 곡에서 보인
차분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맑은 정서가 준 신선함이 준 충격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가 묘하게 엇갈리던 <우울한 편지>가 던져 준 감동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유재하의 곡으로는 <그대와 영원히> (이문세 3집, 문관철 1집), <비애> (한영애 2집)가 있다.)(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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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위.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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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여름·가을·겨울의 등장은 우리 음악의 범위를 넓힌 쾌거이다. 이들은 연주 음악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기교
없이 정직하게 기본을 지키는 연주가 오히려 더 어렵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리를 깨우쳐 주었으며, 보컬이 반드시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아니라도 좋은 멜로디와 진실한 가사만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 증명해 내었다. 그들이 지금 처한 음악적인 정체(停滯)의 위기는 초기의 이 소박하고 욕심 없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알루미늄 케이스와 동영상 CD로 포장한 6집의 호화
재킷보다 첫 앨범의 이 소박한 재킷이 더 정감이 가고, 이현도나 김세황, 이주노, 김현철, 이소라 등이 참여한 6집 보다 오직 이 둘이 만들어
낸 1집의 곡들이 더 많이 애창되는 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당연한 것이다. 모든 스타 음악인들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라는 노래는 그들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그들은 알까?(신승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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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위.작은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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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연 최초의 하드 록 명반이다. 초기 대학가요제 출신의 밴드로서는
활주로, 마그마와 함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과시했던 그(들)는 79년 <일곱 색깔 무지개>, <내일>, <세월> 등이 담긴 데뷔 음반을 발표하였고, 1집의 밴드 체제에서 원 맨 밴드 형식으로 바꾸어 이 역사적인 음반을 녹음하였다. 그는 신중현 이후의 기타 히어로였고, 대중 앞에서는 엔터테이너를 자처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음악계의 판도와 전체적인 수준으로 볼 때 그는 너무 앞선 뮤지션이었고, 그래서 그의 이 음반은 실험적인 앨범으로까지 비추어졌다. 이는 작은거인 1집 수준의 연주와 녹음이 주류였던 당시 우리 음악계의 역량과 90년대에 내 놓았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을 훌륭한 완성도를 가진 이 음반 사이에 존재하는 상당한 간극이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여기에는 후반부 블루지한
패턴으로 선회하는 하드 록 <새야>, 진정한 실험 지향적인 연주곡 <어둠 속에서>, 호쾌한 기타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면서도>, 1집에 비해서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리메이크 곡 <일곱 색깔 무지개>등의 빛나는 트랙들이 실렸다.
이후에도 이런 질감으로 연주하는 뮤지션은 이 당시의 김수철 밖에는
없었다.(박준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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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위.FORCE D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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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그룹 듀스가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는 앨범이자 국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힙합 음악을 제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비로소 작사가로서의 이현도는 제대로 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며, 독특한 그만의 리듬편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류라는 편견을 일순간에 지우게 만든다. <굴레를 벗어나>, <이제 웃으며 일어나> 에서 그들은 이제 그들만의 작곡/편곡 스타일을 확립하면서 비로소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한국어
랩의 창작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각운은 작사가로서의 이현도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보코더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와
편곡스타일을 적극 활용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의 음악적인 성숙과
자신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행으로만 받아들여지던 힙합을 음악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과 그것이 주류의
두 댄스듀오인 이현도와 김성재의 손으로 만들어짐으로 인해 힙합 문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인 것이다.<굴레를 벗어나>의 그루브와 <사랑하는 이에게>의 서정성을 고루 갖춘 이현도의 음악적 감각은 발군이다.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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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위.서태지와아이들 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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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의 모든 앨범은 명반으로 불러도 아깝지 않지만 이 4집이야말로 비로소 서태지의 음악적인 모든 재능이 집결된 명반중의 명반으로
불러 마땅하다. 시대의 반항정신과 젊음의 감수성을 갖춘 음악 장르로서 당대 팝 음악의 최신조류였던 갱스터 랩과 얼터너티브 록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이 앨범에서 서태지는
자신의 창작능력의 극한 점을 귀로 확인시켜 준다 3집 이후 이미 그
영향력을 상실한 두 댄서 양현석과 이주노의 정체성 문제는 팀의 해체로 이어지며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팀이 가지는 한계점을 보여 주게
되지만, 단지 음악적인 면으로만 평가할 때 이 앨범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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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위.H20 오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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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해는 넘어가고 밤과 별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 / 고개 들어 노래해야 만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하지/ 언제부터 우린 이다지도 막연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야 했을까" (<나를 돌아보게 해>)를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80년대 헤비메탈의 시대는 저물었구나"였다. H2O는 맴버 각자가 80년대 말이 각기
시나위(강기영, 김민기), 카리스마(김민기, 박현준)라는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밴드들의 중심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강기영은 베이스 파트에서 김민기
는 드럼 파트에서 최상의 기량을 자랑하던 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재 결성된 H2O는 데뷔 음반의 LA 메틀 스타일에 변신한 당대의 모던한 록을 추수하였다. 음악적인 근간은 롤링 스톤즈와 같이 리듬 위주의 록에 두었고, 멤버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의 음악을 만들어
갔다. (<고백을 하고>에서는 멤버 모드가 돌아가며 노래를 한다.) 멤버
각자가 가진 출중한 곡 쓰기 역량으로 단 한 곡도 버릴 노래가 없는 완벽한 앨범이 된 이 음반에서 강기영의 <고백을 하고>,<나를 돌아보게
해>,<짜증스러워>,박현준의 <착각 속에서>, <방황의 모습은>, <그녀의
모습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명곡들이다. (박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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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위. 서태지와아이들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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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태지야 나와라" 라는 의미의 프롤로그 음악
.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가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 음반에서 음악적인 정수는 손무현의 기타 솔로가 빛을 발하는 유로 댄스
풍의 탁월한 노래 <내 모든 것>이었고, 신대철이 참여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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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위.서태지와아이들3집
>
> 대중음악에서의 '장르' 들은 분명히 물리적으로는 공존하고 있지만
사실 '생성하고 소멸'하는 들이 보이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장르의 생성과 소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한국 대중음악계에선 자연스러운 장르적 이동보다는 소위 인기 아티스트들의 '친위 쿠데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자존심 상하게도 인정해야만 한다.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어느 한 아티스트가 '새로운 장르'를 공급하면 대중은 장르 이동이 너무나 부실했던 이 땅에서,'가장 충격적인' 친위 쿠데타는 바로 이 앨범이었다. 아무리 이전 앨범에서 '변신의 기미'나 '예고편'을 선보였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7번 이상 TV에 출연하는 '최고 인기 아티스트'가
이렇게도 코페르니쿠스 적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아티스트의 '용기'와 '자신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제까지 옐로우 보이스의미소년들이 통기타 반주아래 실연의 아름을 노래하는 것을 즐기던 대중들이 오늘은 육중한 디스토션 기타와 '차가운 랩'에 얹힌 '교육현실에 대한 고민'을 듣게 되다니, 서태지와 아이들의 작품 중
가장 일관성 있는 앨범의 완성도 그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의도'가
상업적인 것
이든 아니든 말이다. (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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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위.윤도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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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은 윤도현의 2집이지만 윤도현 밴드로서는 데뷔 음반이다.
그리고 전투적인 노동가요를 불렀던 록 그룹 메이데이의 프로듀러를
맡았던 유병열과 현재 한상원 밴드로 이적한 강호정의 합작 품이다.
윤도현은 포크 록 그룹인 종이 연 출신이고, 94년에는 <타잔>이 수록된 데뷔 음반을 발표하였다. 김현성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같은 발라드와 자신의 <깨어나라> 같은 비판적인 의식이 담긴 록, 또한 <임진강> 같은 자신 주변의 모습을 담은 노래들이 섞여 있었던 이 데뷔앨범은
개개의 곡은 좋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디렉터 부재로 통일 감이 느껴지지 않은 음반이었다. 하지만 본 음반은 그간 윤도현의 성장도 느껴지지만 강호정의 재능 있는 디렉팅으로 적절한 세션을 이끌어낸 음반이다. 박노해의 시에 윤도현이 곡을 붙인 <이 당에 살기 위하여>가 압권으로 등장하는 이 음반은 그 외 <긴 여행>,<철문을 열어>라는 그들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곡들이 있고, <다시 한번>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슬로우 록이다. (박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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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위.노이즈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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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이즈가든을 논하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그들은 한국 록 음악의
어떠한 계보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섬' 이라는 점이고, 둘째로 그들은
비 인기 종목인 록 음악의 부흥을 위해 대중친화 적인 요소를 집어 넣으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으며, 셋째로는 '사이버 공간'이라고 다른 이들로부터 이름 지어진 공간에서 출발하여 '실재 골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첫 예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목사항'들은 그들의 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 '매우 보 알 것 없는 세일즈 포인트'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주목사항과 합의점들은 이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데 있어
오히려 이들의 중요도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첫 앨범은 '신화'다. 앞으로 계속될 윤병주/노이즈가든의 행보에 대한 '건국신화'라고 생각하면 더욱 안전하다. 이러한 건방진 예언에 대한 검증은? 이 앨범을 들어 보라. 그리고 그 이후를 주목하라.(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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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위.서태지와아이들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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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 개월간 잠적한다
> 2. TV는 돌아온 영웅을 위한 1시간 짜리 컴백쇼를 준비한다.
> 3. 돌아온 그들은 파격적인 복장과 춤을 선보인다.
> 4. 그리고 새 곡을 발표할 때마다 비평가들은 그의 곡에 장르의 잣대를 가졌다 대기 바쁘지만 그 어떤 분석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 신곡은 상업적이 대중서이 없다는 이들의 비관론을 가볍게 일축하고 정상에 오른다.
> 5. 비로소 수십 년간 언제나 음악인들을 길들여왔던TV, 그들의 음악을 규정해 왔던 일반 대중과 가수는 처음으로 그 주종 관계가 역전되어 가수에게TV와 팬이 길들여진 것이다.
> 6. 그리하여, 대중에게 영합하는 '딴따라'는 비로소 자신의 예술로
대중을 움직이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다.(어는 가수는 딴따라라고
스스로 규정하지만...)
> 7. HOT와 서태지의 공통점은 1,2,3이고 그 차이는 4,5,6이다. 그리고 6의 경지에 오른 한국의 대중가수는 둘 뿐이다. 조용필과 서태지.
이것이 그만의 권능이고 용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지만 아무도 그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 (신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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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위.전인권/허성욱 머리에꽃을
>
> 전인권의 대표작은 들국화 1집이 아니다. 들국화 1집에서 그는<행진>등을 부른 단지 뛰어나 보컬리스트였을 뿐이다. 들국화 1집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만든 조덕환이거나
뛰어난 세션을 보여준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피아노)이라고
해야 맞다. 이후 전인권은 86년 어정쩡한 들국화 2집에 참여한 이후
87년에 사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음반을 발표한다. 그리고 허성욱과 같이한 뛰어난 곡 작업으로 그가 이전에 "단지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뿐"이란 인식을 불식 시켰다. 이 음반을 통해서 보여준 그의 작곡 능력은 정말 80년대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는 다음해에 발표한 솔로 1집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70년대
말부터 축적한 노래부르기의 열망이 비로서 제대로 분출된 음반이었고, <북소리>, <사랑
한 후에>, <머리에 꽃을>, <어떤...(가을)>는 그의 여린 rkat성을 느낄
수 있는 베스트 트랙들 이다. 이음반에 참여한 최구희와 함춘호의 연주 또한 '당대의 세션'이었다 (박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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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위.DEUXISM
>
>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미 지나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이미 뽀얀 얼굴을 갔고, 그런걸 같고 고생이라 말하고, 고지식한 생각으로 남을 무시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 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활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얼키고, 설키고, 꼬이고, 막히고,/어렵게 생각하면 힘든 세상이자만 행복은 그리 먼게 아니야.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넌 행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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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위.삐삐밴드 문화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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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삐삐밴드입니다. 그렇지요 저희중 현준이를 빼곤 지조없이 지금 테크노 한다고 설치고 다니죠. 윤정이는 음악도 모르는게
"딸기다 좋아/우리집 강아지는 멍멍멍" 따위 가사로 신성한 록을 모독한다고 어쩌구 저쩌구 하질않나,TV에서 개그한다고 욕하질 않나 또
나중에는 또 저희가 TV가 반항했다고 또 뭐라고 하질 않나... 참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모르겠더라 구요. 한국에서 음악 하려면 한 가지만 들입다 파야 하고,TV는 절대 나오지 말구 보컬은 반드시 보컬 학원
수료한 언더그라운드 출신을 쓰고, 가사는 저항상 넘치게 진지하게 쓰고... 이렇게 해야 욕 안먹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저희가 먼저 몸 담았던 시나위 출신 어느 후배는 하늘을 찌르고 ... 참 알다가도 모를 게 대중이고 매니아예요. 또 이런 말하면 음악 듣는 이들을 얕본다고 욕먹겠죠? 그만 할께요. 잠깐, 그렇지만 이 한 마디는 꼭 해야 될 것 같아서여. 그렇게 엄숙한 표정 하지 말고 그냥 들어요 "딸기가 조오아아~~!"
(신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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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위.봄여름가을겨울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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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만의 색깔을 확고히 지키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운드적 실험을 하는 그룹은 과연 몇 팀이나 될까. 리더 김종진의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보컬,화려한 세션진을 통한 뛰어난 연주력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최고
의 그룹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봄.여름 .가을 .겨울의 최고의
역작인 본 2집은 연주력과 사운드적인 구현에 있어서 아직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기 힘든 앨범이다. 그룹 사랑과 평화와 함께 가장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연주를 해내는 팀으로 기억되는 김종진/전태관은 놀라움을 안겨준 1집에 이어 2집에서 그 창조적인 연주력의 절정을 보인다. (어떤이의 꿈),(못다한 내 마음을 )에서 느껴지는 리더 김종진의 유니크한 기타연주는 카리스마적인 그의 보컬만큼이나 중요도를 가진다.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앨범에 사용되는 하나하나의 테크닉이 정교하게 연구되어지고, 사운드적으로 철저하게 실험되어져 탄생된 듯한 느낌을 던져주는 본 앨범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세션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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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위.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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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New kide on block동네에 나타난 새로운 아이들 그들의
정체는 중산층에서 별 탈없이 잘 자란 요즘 애들이지만 한편으론 '또
하나의 문화'라는 대안문화를 추구하는 진보집단의 2세대로서 사회체제에 대한 분석 비판력을 갖춘 새 세대라는 것이었다.
> 다소 어설픈 라이브로 혹사당해 최초의 신선한 울림을 잃어버리긴
했지만(달팽이)에서 표현된 작고 뭉클하고 꼬물거리는 것에 대한 애정은 새로웠고, 경쾌한 선율위에 획일적인 사회의 항변을 담은 (왼손잡이)사 모든 삐딱한 성향을 가진 이들의 올바른 동조를 모았던 반면. 이들의 지향은 (다시 처음부터 다시)의 걸러지지 않은 독설과 직설적인
공격성에 집약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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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위.갱톨릭 A.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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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건하게 '가요톱텐'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뽕짝의 몰락과 댄스음악의 주류 장악이라는 전광 석화처럼 벌어진 이 사건은 아직도 흑인음악을 제 나름대로 차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아이들이
크루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스스로 창출하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클럽의 밴드들 틈에서 마이크와 턴테이블을 무기로 랩을 지껄이는 랩퍼들과 포터블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댄서들의 시도는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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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위.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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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년 들국화 데뷔 음반은 80년대 말 국내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기를 연 기념비 적인 음반이었고, 들국화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나오기를 꿈꿨던 그룹이었다. 우리말로 된 록 음반으로서 국지적인 느낌에서
탈피한 이 음반은 따로 또 같이 이후에 80년대 초반부터 일부 젊은 뮤지션들이 자신들 음악적 정체성 확보의 일환으로 행했던 '독자적으로
음악하기'의 저변이 확보되었음을 알리는 상징물이었다. 이 들국화의
보컬리스트로서 카리스마적인 보컬을 선보인 전인권은 사실은 들국화
당시보다 자신의 솔로 음반에서 진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뮤지션이었다. 들국화 당시는 한 명의 멤버로
서 조화에 충실했지만 87년 전인권, 허성욱 추억 들국화 앨범과 본 음반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감성은 사실 들국화 당시로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가을비 소리 없이 내리네/ 거리마다 은행잎이 노랗게
/ 약속은 자꾸만 맴돌고/ 비에 젖어 자연스레 진해진 / 걱정없는 저 자주빛이 부러워"(<가을비>)와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곡 만들기 역량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반열에 충분히 올릴 수 정도였다. 자신의
밴드인 파랑새와 같이한 이 음반에는 <가을비>, <아직도->라는 명곡이 있고, 게스트 기타리스트 최구희의 명연도 빛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헛사랑(맴도는 얼굴)>도 실렸다.(박준흠) >,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베이스가 돋보이는 명곡이다. (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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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위.한상원 Funky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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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원은 에 실린 <미련>의 후반부 솔로 연주에서 나타나듯이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훵키한 느낌의 연주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연주자 중에서도 최고수이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진정한 휭크 기타의 마스터이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진정한 휭크 기타의 마스터이다. 비록 전작인 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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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위.H20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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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닝타임 35분 짜리 앨범이지만 그 내용물은 녹룩하지 않다. 시나위
출신의 강기영을 중심으로 당시 TV에 출연해 수많은 여성들을 설레게했던 박현준과(비록 그녀들은 이들의 앨범을 듣지 않았지만)김준원이 모인H2O는 당시 한국 락 음악의 해게모니를 쥐고 있던 헤비메틀이나 LA팝메틀과는 다른, 시대를 앞서나가는 음악을 선보였다. 흔히 에디 베더(Pearl Jam)에 비교되곤 하는 김준원의 개성 있는 보컬 톤이라든가 단순히 드럼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그루브를 만들어 내는 개성
있는 강기영의 베이스, 테크닉 싸움장 같던 당대의 기타사운드와는 동떨어진 배킹 위주의 여유로운 박현준의 기타는 3집에서 만개(滿開)하여 9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를 낳지만 여기서도 이미 그 날카로움은 주머니를 뚫고 솟아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은 삐삐
밴드에서 그 극단을 보여준다. 80년대의 많은 헤비메틀 음악인들이 받은 '테크닉만 출중한 생각 없는 카피 집단'이라는 비판은 이들에게는
전혀 유효하지 않다. 추천트랙은 <너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 뻔한 발라드 곡처럼 보이는 제목과는 딴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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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위.The Return of N.EX.T Part1 The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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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에 이은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으로 이후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도리 문양(이집트 벽화에서 나온 듯한 눈, 혹은 새의 변형)과 장황한 앨범제목, 철학적 거대주제에 대한 도전, 화려한 기타연주와 신세사이저의 웅장한 사운드 스케이프 들을 한 눈에 펼쳐놓았고, 이는 제3부 World로 이어진다. 그들의 열성팬이 결집되기 시작하였고, 그 막대한 쪽수와 열렬한 보위능력을 겸비한 동아리 밖의 일반인에겐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건드려 본 작고 아름다운 발라드<날아라 병아리>를 선사했다. 사후적으로 평가한다면,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단군아래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사운드가 아니었나 싶다. 뭔가 호화롭고 거창하면서 왠지 속은 비어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던진다는 면에서, 마침 (다시한번 역사를
단순화시킨다면) 단군이래 최대의 위기라는IMF 체제하에서 넥스트
역시 구조조정 내지 슬럼화의 과정을 거쳐 좌장 신해철이 펼치는 단촐한 솔로 활동으로 귀결되지 않았는가 말이다.(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