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근처
여름 방학 들어 보충수업을 한다고 학교에 열흘 나갔다. 보충수업을 끝내면서 아이들한테 ‘남은 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 7가지’를 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종점에서 종점까지’다. 단순히 종점까지 오가는 것이 아니라 농어촌버스를 환승하여 갯가나 산골까지 가 보라고 권했다. 그곳으로 나가보면 농부의 땀방울 속에 청아한 풀벌레소리가 들려오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곳이라고 했다.
보충수업 마치고 개학까지는 열흘 남짓으로 광복절이 지나면 개학이 코앞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한 내용과 같이 몇 가지를 실천하다보니 개학이 다가온다. 덥다고 호들갑을 피우던 여름도 무더위가 꼬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가 고층이라 그런지 며칠 전부터 밤이면 베란다 창문을 닿고 자야할 만큼 날씨가 서늘해졌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절기에 계절이 순환함은 어쩔 수가 없다.
팔월 중순 수요일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미니버스는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둘렀다. 주남저수지 들머리 마을에 피어난 연꽃들은 시들어 그 자리 연밥을 달고 나왔다. 가술로 향하는 차창 밖 들녘에는 벼 포기에서 이삭이 패는 즈음이었다. 1번 마을버스는 수산다리를 지나 신전마을까지 가는데 나는 수산다리에서 내려 강둑 따라 걸어 올랐다.
강 둔치는 달맞이꽃이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저 멀리 강변여과수를 뽑아 올리는 취수정 부근에는 물억새가 무성했다. 낙동강 강둑에는 4대강사업으로 자전거 길이 시원스레 뚫렸다. 낙동강하구언에서 출발한 자전거 길은 내가 선 둑에서 본포 다리를 건너면 창녕 학포다. 창녕함안보를 건너 칠서에서 남지로 건너 안동까지 이르는 길이다. 나는 언젠가 본포에서 걸어서 남지까지 가보았다.
대산 일동 강변여과수취수장 건너편 밀양 초동 곡강은 예전 강의 범람이 잦던 시절 피수대 역할을 하던 벼랑에 생겨난 강마을이었다. 근래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돋이와 저녁놀 풍광이 아름다워 그림 같은 전원택지가 들어섰다. 본포에서 흘러내린 강줄기가 수산 근처에서 휘돌아가면서 야트막한 산이 깎여 바위절벽이 드러난 지형이다. 집들은 처마 밑에 지어 놓은 제비집 같은 형상이다.
수산다리 근처 강 둔치는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핀 평원 같았다. 조금 더 위로 거슬러 오르니 창원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강변여과수취수공이 있는 자리였다. 둔치 모래밭 자하에다 취수정을 뚫어 강변 지하수를 퍼 올려 수돗물로 정수해 공급하는 곳이다. 낙동강 하류 원수를 그대로 정수해 수돗물로 보내는 부산보다는 창원이 훨씬 깨끗한 물을 먹는 듯했다. 물은 뭇 생명의 근원이렷다.
일동의 강변여과수정수장 뒤편 낙동강 둔치는 광활한 면적이 물억새밭이다. 4대강 정비사업 때도 그곳은 손을 대지 못한 곳이다. 그 이유는 창원시민들에게 보낼 수돗물을 뽑아 올리는 취수공이 있기 때문이었다. 넓디넓은 둔치엔 물억새와 갈대가 뒤덮여 무성했다. 가을이 오는 길목 물억새와 갈대가 피어나면 장관을 이룬다. 지금은 갈래갈래 물억새와 갈대가 한창 몸집을 불리어갔다.
강둑 자전거 길에는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친구나 부부처럼 보이는 어른도 있었다만 중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청소년들도 힘차게 페달을 밟고 지났다. 그 중 얼굴 표정이 밝은 한 녀석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만 ‘반갑습니다!’라고 상냥하게 인사하고 지나 나도 답례를 했다. 컴퓨터게임에 몰입하거나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릴 녀석보다 훨씬 듬직했다.
작년 여름 내가 들렸을 때는 강둑에 무성한 풀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올해는 행정 당국에서 강둑의 풀을 예초기로 말끔히 잘라 정비를 잘 해두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강둑에는 비수리가 많았는데 예초기 칼날에 대부분 잘려 나가고 말았다. 비수리는 ‘야관문’으로도 불리는 천연비아그라로 통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친구가 채집하거들랑 택배로 보내라는 야관문이었는데…. 1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