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시도… 10월 19일 이상배 대장 등 4명 등정
재도전 끝에
오른
값진 정상
글 이상배 원정대장 \ 사진 원정대
안나푸르나 성역 뒤편에 숨어있는 얼음산 히무룽(7126m)은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이 만만찮다. 전체 9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하면 거쳐야 하는 작은 마을 고토(Koto·2600m)에서 나흘을 더올라가야 하는데, 계곡이 깊고 험한 오지라 그야말로 탐험이라 할 만하다.
3캠프에서 텐트 사이로 히무룽 정상이 바라보인다.
9월 28일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도로는 오고가는 차들이 막혀 가다서기를 반복한다. 카트만두 고개를 넘어서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있는 긴 차량 행렬이 보인다. 언제 풀릴지 답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짜증내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할 정도다. 네팔 히말라야 전역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민속음악은 ‘레쌈삐리리’(바람에 나부끼는 실크처럼 내 마음이 흔들린다는 뜻)인데 그 노래처럼 오늘도 출발부터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요즈음 네팔은 무정부상태다. 왕정이 무너지고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오 공산당이 38%나 차지하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부정적이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네팔 사람들은 항상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하루에 차량들이 수십 대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물가도 많이 올라 옛날 생각하고 가면 착각이다.
베시샤르를 지나 불부레로 올라가는데 몬순이 지난 뒤라 분노의 강이라고 불리는 마르샹디 강은 불어나는 수량으로 분노하듯이 요동을 치며 거칠게 흐르고 있다. 봄 시즌에 머물렀던 불부레 초롱라 게스트 하우스에 들르니 주인장이 나를 알아본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체크포스트에 들러 입산신고를 마쳤다. 우린 여기서부터 노새를 이용하여 짐을 수송해야한다. 그래서 로지 마당에다가 짐을 풀어헤쳐놓고 베이스캠프로 바로가는 짐과 카라반 중에 필요한 짐을 분리하여 재포장을 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봄 시즌에 왔을 때는 수시로 비를 만나 커버를 덮었다가 벗겼다가를 반복해야하는 번거로움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며칠 동안은 트레킹하는 기분이 든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로지마다 세계각처에서 온 트레커들로 붐빈다. 상게(Sange)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나 싶더니 산사태로 보수중이라 바운단다(Bahundanda)로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상행 카라반 4일째 다네큐(Danakyu) 히말라얀 게스트하우스에 들르니 이곳 여주인도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시즌인데도 방값이나 부엌사용료를 저렴하게 받는다. 안다는 것이 이래서 좋은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상행카라반도 봄 시즌과 거의 같은 코스로 운행하고 숙소도 달(Tal)만 빼고는 거의 같은 숙소를 이용하였다. 다네큐에서 휴식 같은 하루를 보내고 500m 고도를 가파르게 치고 올라서니 티망(Timang)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뒤쪽으로는 하얀 설산 마나슬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다. 전통마을인 탄초크(Thanchok)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나르푸 계곡으로 갈라지는 고토(Koto)가 나타났다. 마낭 지역에서 큰 마을이라는 차메는 이곳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차메에는 약국이 있고 시장이 있어 들렀는데 산간지역 치고는 제법 큰 동네이다. 우린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고토로 내려와 슈퍼뷰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탐험 같은 상행카라반이 이어져
10월 3일 탐험을 하는 것 같은 나르푸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몇 개월 전 이곳에 왔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는 느낌밖에 없다. 히말라야를 처음 찾은 오행선 대원은 바위 실력이 온사이트로 5.11급이지만 히말라야는 모른다고 겸손해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준비는 많이 해온 모양이다. 그에게 히말라얀 스타일을 얘기해 주며 “천천히 먹고, 천천히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라”고 일러주었다.
봄 시즌에 울산을 축으로 대구와 광주 그리고 제주와 경남에서 선발된 14명의 대원들과 한국 초등을 목표로 히무룽에 도전했지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고독과 힘을 겨루다가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야만 했다. 아픔을 가지고 버티기에는 힘든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팀을 추슬러 가을 시즌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원정대원이 다소 줄어들어 6명의 대원으로 오게 되었지만 협찬이나 후원방송은 똑같다. 나에겐 히무룽 원정이 재도전이라 마음의 부담이 많이 되었다.
베이스캠프에서 한자리에 모인 대원들과 라마제를 함께 지낸 스님, 고용인들
다람살라(Dharamshala)는 고도가 3230m로 여기서부터는 텐트를 이용해 야영을 하며 베이스캠프까지 가야한다. 캠프사이트는 잘 만들어져 있는 편이다. 식사는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으로 먹었다. 고토에서 이곳 다람살라로 오는 길은 숲길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너무나 자연적이다. 그러나 길 위에 널브러진 짐승들의 배설물이 가끔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우린 다시 고도를 올려 해발 3820m의 컁(Kyang)에 도착했다. 이곳은 돌로 만든 야크 움막들이 장난감처럼 포개져 있는 곳이다. 우린 캠프사이트를 약간 벗어난 곳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다른 지역하고는 다르게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짐승을 방목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 같았다. 이 첩첩산중에 짐승들이 마구 뛰놀 수 있으니 자연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스친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살벌한 흙길을 지나가는데 한번은 우측 돌무더기가 무너져내릴까봐 시선이 가고 한번은 왼쪽의 낭떠러지 쪽으로 시선이 간다. 푸 가온(Phu Gaon) 지역 푸벨리 게이트를 들어서니 정면에 아름다운 설산 포카르캉(6372m)이 여인의 속살처럼 뽀얗게 가물거리듯이 보인다. 푸(Phu·4000m)의 캠프사이트에 야영 준비를 해놓고 오른편에 보이는 절벽마을 푸 가온(오지마을이란 뜻)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수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섰더니 온 동네가 가을추수를 하느라 한창이다. 주로 밀(고루라고 부름)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곳 밀로 술을 담그면 알아준다며 한 청년이 자랑삼아 이야기를 한다. 푸 가온은 대부분 흙담집으로 만들어진 움막들로 요새같이 보인다. 마을 오른쪽엔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된 가옥도 몇 채가 보인다. 어찌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10월 6일 베이스캠프 입성, 10월 19일 정상공격
10월 6일 푸(Phu)를 출발한 원정대는 히무룽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려 버프를 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들다. 야크 움막을 조금 지나 행동식으로 가지고온 주먹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흙모래 언덕을 올라서니 고소가 찾아온다. 걸음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베이스캠프로 들어서니 주변 산들이 봄 시즌 때와는 다르게 눈으로 많이 덮여 있다. 우린 지난 봄에 설치했던 위치보다 100m정도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게 되었다. 셰르파 사다인 앙 삼두가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인다. 베이스캠프 도착 이틀 후인 10월 8일 푸 가온에서 올라온 고승을 모시고 라마제를 지내는데 날씨도 화창하고 길조들이 모여들어 좋은 징조로 보였다. 그런가 하면 라마고승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염원까지 담아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초를 타고 히무룽으로 향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기(氣)와 운(運)을 받는 것 같다. 옆에 있던 앙삼두마저 나에게 다가와 이번 등반은 성공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여주며 예언을 해준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쿡인 마일라는 음식과 음료수를 가져와 권한다.
오늘 라마제를 아주 잘 지낸 것 같다. 분위기가 상승한 가운데 라마승들은 내려가고 셰르파들은 오후에 곧바로 1캠프 구축에 나섰다. 순조로운 출발이다. 푸석돌들과 며칠 전에 내린 신설로 인해 1캠프로 가는 길은 믹스구간이 되어 조심스럽게 올라야했다. 우린 설상등반이 시작되는 5200m 부근에 데포 장소를 만들어 놓고 등반을 계속했다. 봄 시즌보다는 100m 정도 낮은 지대다. 세락이 무너져 변형된 해발 5500m에 1캠프를 구축하고 대원들이 식량과 장비를 수송하며 고소등반에 나서면서 등반이 다소 활력을 찾는듯하다. 이쯤 되니 난 네팔 대행사인 아시안트레킹에서 위성폰으로 들어오는 일기예보에 신경을 써야했다. 히말라야 등반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정확한 일기예보다.
고정로프를 설치하지 않은 구간에는 표지기를 꽂아 루트를 표시해야 했다.
10월 12일 해발 6100m에 2캠프가 어렵게 구축되었다. 2캠프가 만들어지면서 등반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대원들도 정상에 갈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모습이다. 봄 시즌에 크레바스가 많아 이 구간을 넘어서지 못해 며칠 동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가는 잔인한 감정의 변화를 겪어야 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이 구간이 많은 눈으로 덮여있어 넘어 갈수 있었다. 고정로프 500m정도를 설치해 통과한 2캠프구간은 히무룽 전체 등반구간에서 제법 힘든 곳이었다. 고소적응차 2캠프에서 전 대원 하룻밤을 자고 베이스캠프로 내려가 정상등정에 관한 논의를 하기로 했다. 3캠프 구축은 만약의 기상악화를 고려해 텐트를 데포만 시켜놓은 상태다. 정상에 도전하는 날 설치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대원 모두 정상에 선 후 무사히 하산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일정에 관한 토의를 하는데 의견이 분분하다. 2캠프로 바로 올라가자고하는 대원들의 의견이 있어 정상적으로 하자는 나의 의견은 말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한참을 의논하다가 결론에 도달했다. 정상적으로 1캠프를 거쳐 천천히 등반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10월 16일 주사위는 던져졌다. 히무룽 여신도 정상을 쉽게 허락하질 않을 모양이다. 1캠프에서 2캠프로 올라가는 길은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시계가 거의 없다. 거기에다 온도가 영상으로 뛰어올랐다가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진다. 기상악화가 등반을 어렵게 만든다. 대원들도 힘들어 한다. 위험한 크레바스 지대를 통과하고 2캠프에 도착해 식사를 하는데 고소식량으로 철원군에서 지원받은 폭포면이 간편해 안성맞춤이다. 2캠프에서 자고나니 기상이 아주 좋아졌다. 셰르파인 앙삼두와 삼텐이 차를 한잔 건넨다. 그리고는 우리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히무룽을 향해 설릉을 타고 올라 다시 설산 허리를 돌아서 3캠프에 도착하니 그제야 히무룽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히무룽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에 아직도 신비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에 넋을 잃고 텐트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히무룽은 히말라야에 숨어있는 얼음산이다
10월 19일 새벽 1시 나는 앙삼두와 함께 정상을 향해 3캠프를 출발했다.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은 삼텐과 함께 새벽 2시에 출발했다. 착시현상으로 정상이 멀지않게 보이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날이 밝아오면서 가파른 설사면을 만났다. 뒤에 따라오던 대원들과 거리가 좁혀지고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없이 멈추면서 내게 남아있는 기력을 다 동원해본다. 히무룽 정상으로 가까워질수록 등반루트가 위험천만해 보인다. 이번 원정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삼텐이 앞장서서 루트파인딩을 해가며 지그재그로 길을 만든다. 그 뒤를 정수열 대원 그리고 김성상 대원 오행선 대원 순으로 힘들게 올라간다. 오후 2시가 넘어서기에 사다인 앙삼두에게 정상에 다녀오는데 무리가 없느냐고 물으니 곧바로 “노 프러블럼”이라고 대답한다. 정상 못 미쳐 로프를 설치하고 주마링으로 힘겹게 올라갔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우린 모두 정상에 오르는 큰 기쁨을 얻었다. 최선을 다한 등반으로 재도전 끝에 한국초등이란 선물을 히무룽 여신으로부터 받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사방에 펼쳐지는 설산풍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다. 히무룽 원정을 두 번이나 도와주신 (주)콜핑 박만영 사장과 부산경남대표방송 KNN 이만수 사장, 그리고 나동연 양산시장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정상등정을 마치고 안자일렌으로 하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