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방황은 주님과 동행할 때 끝난다
오늘부터 예수동행 목회자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간절한 사모함으로 모이신 목회자 부부들이기에 시작부터 너무나 은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힘들어하고 방황합니다.
그것은 말 못할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못하거나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도 힘듭니다.
그러나 ‘목사님, 사모님들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세요?’ 할 일들이 더 심각합니다.
돈 문제, 부부 싸움, 빗나가는 자녀, 다른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시기심, 음란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일 등입니다.
교인들은 목회자라면 능히 그런 문제를 잘 극복하고 살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니 ‘나도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작게 여기면 안됩니다.
작은 문제가 극복이 되지 않으니 복음의 능력,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좌절과 낙심으로 쓰러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선교 현장의 어려움도 컸고 건강 상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큰 좌절은 중국 동역자들에 대하여 자꾸 화를 내고 불평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인가?’. ‘이렇게 되라고 중국 사람드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인가?’ 이런 좌절감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도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왜 방황하고 좌절하는 것입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 마음이 묶여 꼼짝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낙망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요 15:5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자신이 이미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주님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정말 믿었습니다.
더 이상 염려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또한 부활하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에 복음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 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예수께서 모든 영역의 주인이 아니라면 어느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중요하고 커 보이는 일은 주님과 동행하고 일상의 평범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보고도 온 몸이 경직되어 버립니다.
두려움과 염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벽돌 하나 무게는 크지 않지만 항상 벽돌을 들고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삶의 질은 형편없이 망가지고, 몸도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두려워해야 할 일에 대하여는 무모할 정도로 무감각합니다.
운전할 줄 모르면서 차를 운전하여 대로로 나간다면 어떻겠습니까?
반드시 사고가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대는 누가 붙잡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르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왜 사는지 하는지 모릅니다. 왜 힘든지, 왜 슬픈지, 왜 답답한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마음을 자신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면 그 삶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인생에 문제도, 갈등도, 시험도 좌절도 많은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이 안 보이는데 운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이 보입니까?
눈으로 볼 수는 있으면 미래가 보입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아십니까?
내일 어떤 일이 있을지 아십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일을 너무나 쉽게 계획하고 결정하고 살아갑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천하 태평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하여 ‘안된다’, ‘못하겠다’ 말할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방황은 주 예수님과 동행할 때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