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심유란 스마트바이오팜 대표
경험 축적 인력 풍부...정밀화학 등엔 글로벌 수준 인재 많아
감염병 치료제는 초기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주도하고
중국 인도 미확보 원료는 니치시장 찾아 품질로 경쟁을
필자=심유란 스마트바이팜 대표
원료의약품은 언제까지 이대로 내버려 둬야 할까? 원료의약품(Activie pharmacetical ingrediant, API)은 의약품의 활성물질로, 2019년 기준 글로벌 API 시장규모는 1688억 달러 규모고 연간 6.82% 성장률을 예상하며 2027년까지 2855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이라 예상된다. 이는 바이오의약품과 합성의약품을 포함한 것인데, 필자는 합성의약품의 원료의약품을 언급하려 한다.
실제 건강보험 테두리 안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제형의 대부분 의약품은 합성의약품이다. 민생과 가장 근접하게 현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의약품은 시장규모의 성장폭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종류가 다양한 합성의약품이다.
정진현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API는 의약품 산업의 양식과도 같고 반도체와 같다"고 했다. 그만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이오 의약품의 열풍에 합성의약품의 API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한 공급원을 가까이 한 덕분에 그동안 중국, 인도, 심지어 유럽 등 타국에서 제조한 중간체와 원료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만 갔다.
코로나19 사태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 더 나아가 중국과 인도의 분쟁 등 원인으로 원료의약품의 중요성을 눈치 챈 나라들에서는 이미 정부차원의 장기전략으로 주요 의약품의 API를 자국생산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연방정부의 필수 의약품과 장비의 미국산 구매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사노피는 유럽에 항생제 제조라인을 증설해 제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노바티스 제네릭 사업부문인 산도스는 10년을 투자해 페니실린 원료의약품의 원가경쟁력과 대량 제조능력을 확보하겠다고 선포했다. 일본은 순차적으로 주요 의약품의 공급라인을 국내로 전향한다고 발표했고, 인도는 최근에 대형 API 제조단지 3개를 허가해 건설에 들어갔다.
각 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건 그만큼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는 민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들에서는 보험과 약가정책 안에서 적당히 싼 가격에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넓은 범위내에서 항생제를 보급하여 세균감염으로 인한 팬데믹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백방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항생제의 제조는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면 또 다른 팬데믹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항생제나 항바이러스 치료제와 같은 감염병 치료제의 문제점만은 아니다. 필수 의약품의 원료의약품은 최종 제품은 국내에서 제조한다 하더라도 주요 중간체는 거의 대부분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 이건 제품자체가 외국에 묶여 있는 것과 다름없다.
국내 API 수급 현황, 외국의존의 심각한 문제
현실은 슬프다. 날이 갈수록 원료와 중간체 구입가격을 인하하려는 노력은 그 원천과 주도권을 외국에 넘겨주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건 중간체의 제조는 해외에 하청을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거다. 그 사이 중국과 인도의 제조능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여, 까다로운 일본과 유럽의 규격에 맞춰 한국의 API를 찾던 고객들은 이제 중국과 인도로 발길을 돌렸다. 불과 4~5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만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 의약품 제조와 유통의 세계화는 API를 비껴가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 유럽, 미국, 일본은 필수 의약품과 장비의 제조를 자국으로 돌리려는 결정과 더불어 이미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건 불과 몇 달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럼 한국의 API는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될까? 언제까지나 이대로 갈 건가?
필자가 API 분야에서 느낀 점은, 국내의 API 공급능력이 탄탄하게 자급자족할 정도 자리 잡는데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원료의약품 산업이 가능성 있는 이유
1) 현재까지 제조와 개발 경험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
2) 아직까지 현장에는 청장년의 인력이 포진 되어있다. 하지만 더 젊은 인력층이 두텁지 않다. 이는 복구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즉 현재의 청장년들이 제조와 개발의 현장에서 퇴진하기전에 젊은 인력 수혈이 필요하다.
3) 글로벌 기준에 익숙하다.
4) 석유화학, 정밀화학, 화공, 기계, 전자 등 분야에 글로벌수준의 인재들이 포진되어 있고, 더 귀한 건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융합 및 협력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5) 허가와 규제사항이 명확하다. 규제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명확한 규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한다.
다음은 방향을 정해야 한다. API 전략이 살아 남는 가장 큰 골자는 바로 원가경쟁력이다. 자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자국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과 인도를 능가하는 원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5가지 방향성
1. 감염병 치료제의 제조는 초기원료부터 최종제품까지 제조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당연히 원가경쟁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고 가야 한다.
2. 중국이나 인도 등 주요 원료의약품의 공급시장에서 확보하고 있지 않지만 글로벌시장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 즉 니치시장부터 품질과 동시에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진출하는 것이다. 즉 이런 제품은 중국, 인도로의 역수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대사성질환이나 퇴행성질환, 암과 같이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 치료제는 그 시장크기가 크고 제품의 가격은 이미 중국과 인도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저가격으로 맞추어 놓았다. 이런 제품은 국내시장에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중국과 인도의 공급라인을 많이 활용한다.
4.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합성의약품의 API개발은 앞으로 2-3년의 시간을 들여 전체 제조공정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로는 대부분 외국에 의존한다. 특히 값싼 의약품 중에 필수인 품목들은 API의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한 품목 중에 중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체나 API조품은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중국은 약가와 조달정책이 전반적인 입찰제도로 바뀌면서 완제사나 API사나 할 것없이 완제와 API를 동시에 확보하여 공급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시장개편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금까지 소량 고부가가치의 API를 생산하던 업체들은 완제 모회사의 물량을 생산하느라 기존에 십여년 유지하던 해외 바이어의 물량을 제때에 생산하지 못 할 가능성이 커진다.
5.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CDMO는 미래의 API 먹거리이다. 신약개발 후보물질 중 소분자 합성물질의 CMC 개발은 대부분 외국에 의존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국내에 300여개의 신약개발회사가 있다. 그 중, 소분자 합성물질을 후보로 하는 업체의 수는 알 수 없지만, CMC 개발수요는 충분하다. 그리고 국내에 CMC 개발여력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분산되어 있다. 단지, 국내에서 적절한 CMC개발업체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작정 외국의 CDMO 회사를 찾는 건, 미래의 API 먹거리를 태초부터 외국에 넘겨 주는 격이다.
CDMO : 의약품위탁개발생산, 의약품 위탁생산 (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과 위탁개발과 (CDO, Contract Development Organization)을 함께 진행함을 말한다.
CMC : Chemistry, Manufacturing, Control의 약어로, 합성물질의 합성과정, 생산공정 및 품질제어 방법을 개발함을 말한다.
국산화를 가능하게 하는 제안 하나
국내업체가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중국과 인도에 비해 취약하다. 이건 유럽,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합성의약품 API 원가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자금, 시간, 인력을 투자하여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API의 원료와 중간체는 기초화학제품이라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공정을 개발하여 제조한다는 것에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길은 항상 있는 법이다.
필자는 연속적인 제조공정이 이 난제를 해결할 한가지 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품질이나 문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때, 공정 방법으로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다.
연속적인 제조공정은 석유화학이나 화공분야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나 의약품 제조공정에서는 이제 막 적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몇 백 년 동안 연속공정 경험을 쌓아 온 다른 분야에서 "연속"에 대한 개념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
그 다음은 품질을 제어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가 되겠다. 품질제어는 의약품의 허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기존의 배치타입 관리방법에서부터 연속으로 제조하였을 때 어떻게 안정하고 안전하게 의약품을 제조할 것인지는 제조업체 혼자서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규제당국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속공정으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공유하고 제품화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밀화학의 한 분야에 속하는 API의 중간체 생산과 그보다 더 정밀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의약품 API의 경우, 연속생산 공정개발에서는 두 가지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첫째, 자국내 수요와 글로벌 기초원료시장을 목표로 한 중국과 인도의 경우, 완제까지의 연속생산은 아니더라도 정밀화학분야에서의 유동화학 생산공정 개발과 적용에 많은 노력을 기하고 있다. 그만큼 시행착오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주도하는 방향은, 유전정보에 기반한 개인화 의료시장에 견주어 소량 다품종 유연생산을 통해 자동화한 연속생산을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API의 연속생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고 이미 연속생산을 정밀화학분야까지 적용하여 실현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인도만큼의 경험치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연속생산 공정개발에 앞서 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고 본다.
바로 정밀화학과 화학공학의 산업발전 정도이다. 이 두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여 글로벌 기준을 이끌어가고 있는 데다가, 두 분야의 밀접하고 원활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API 국산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에 바란다
필자가 본 API시장은 항상 어렵다. 하지만 타개할 방법은 항상 있는 법이다. API분야의 종사자들은 이미 시장의 법칙과 규제사항에 맞게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API는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 계속 위축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는 분야다. 국가와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고, 정부의 물심 양면 지원이 필요하고, 제약산업에서의 중요도와 위치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의약품 완제, 신약개발, 바이오 의약품 등에 묻혀 API에 대해 거의 무관심한 상황이었지만, API분야에서는 이미 빈부격차가 커져가고 있다. 안정하게 모회사에 API를 공급하는 회사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자생하는 회사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가고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산업이 위태롭다. 그러므로 정부차원에서 AP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주도의 투자와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의 API도 지금 이대로 가지 않을 방법이 있는 거다. 단지 모두가 힘을 모아 초 집중하여 이끌어 가야 할 뿐이다.
심유란 스마트바이오팜 대표는
중국 심양약대 제약학과를 졸업했으며, 경희대 약학대학 정진현 교수를 지도교수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연속생산(Continuous Manufacturing) 프로세스를 적용한 친환경 고품질 의약품 원료(API)공정을 개발하고 있는 심 대표는 중국 원료의약품 동향에 대해 밝으며, 중국과 인도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한국 의약품 원료산업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