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살갗을 벗겨내는 햇살이 땀구멍을 막아버린 듯 고통스럽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 칠순 잔치 進賀使로 燕京에 간 연암 박지원.
건륭제는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熱河로 피서 갔기에 연암은 거기까지 다녀온다.
만약 건륭제가 열하에 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제목의 여행기를 만났을 것이다.
우리도 더위를 피해 서오릉 숲으로 갔다. 과거와 현재 는 변하지 않고
답습하는 그들만의 잔치 등등 깊은 공부를 하지 않었나 싶다.
권군이 온도계를 보니 33도 라 하니 혀를 내두를지경이였으니 그 덕? 에 연암처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중복과 말복까지는 20일 그런데 올해는 越伏이라 더 길어져 더위와 전쟁은 절정에 닿는다.
중국 화북지방의 날씨 기준으로 24절기가 만들어 우리나라와는 약간의 기후차이가 있다.
입추 8월 7일 을 알리지만 실직적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는시기는 처서 8월 23일이다.
그리고 무한천공 열려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
하늘나라 天帝의 손녀인 직녀, 은하수 건너 河鼓라는 목동 (견우) 사량의 이야기 칠월 칠석도 곧 오리니...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것 또한 지나가리다
유교에서는 타이밍을 時中이라 한다.
폭우와 폭염 당분간 이어질 明若觀火하니
무더위와 간헐적 폭우 속에 "정읍선언" 1948년 냉전시작과 함께
좌우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간신이 대한민국의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결단-
이것도 더위 덕분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얼굴을 처박고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었으니...
내 인생이 지금 봄인지 여름인가 겨울인가 하는 것이 타임이다.
조선의 망국이든 일본의 침략이든 결국에는 그 시대의 지도자들이 저지른 일이다.
20세기 초 상황에서 한국에는 지모와 전략에서 이토히로부미의 적수가 없었다.
오얏 李 도대체 뭐란 말인가? 흔한 성씨인 李의 훈과음이 오얏 리라 하는데...
그리고 그 밑 떨거지들 현금은 어떠한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자기 명예와 잇속만 채우고 있지 아니한가.
앵봉산(해발 235.1 미터) 주산으로 이루어진
서오릉(창릉, 겅릉, 명릉, 익릉, 홍릉은 질척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치고 그곳을 탐사했다.
많은 것을 실기하고 얼굴 빳빳이 들고 할 짓 다하는 인물들
공자의 논어 草偃 <언>風從(바람 따라 풀이 누워버리는 현상) 風靡 <미>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죄다 눕는 현상
嚚傲(은오)<어리석고 오만함> 특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사.
人生草露 한서 소무전에 나오는 말 "人生은 불초 이슬로 풀에 맺힌 이슬과 같다"
인간세상으로 나오니 FOME( fear of missing out)에서 JOMO(, joy of missing out 안 사서 댜행이다)로 야단법석이다.
"탐욕" 다들 그래서 안된다고 고언 했던 사람은 몇이나 되었던가? 어지러운 시국이 안정되었으면....
아~~~ 이 를.... 어쩌란 말인가?
해가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천천히 저녁무대로 사라졌다.
이별을 앞둔 사람의 뒷모습처럼 아련하고 애틋한 노을빛이 산정상에 부드럽게 변 졌다(7/29)
이 더위와 함께
구약 성경 속에 축복받은 식물 7가지 <신명기 7장 8절>
포도, 대추야자, 무화과. 밀, 보리, 석류. 올리브, 잡숴보시 길~
결국 시간이 지나면 광기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다. 그리고 그 숫자가 다시 새로운 군중심리를 만들어낸다.
첫댓글
"사람이나 힘센 동물이 끌던 소형 연자방아"
왕릉 재실이나 소규모 마을에서는 거대한 연자방아를 설치하기 어렵거나, 제향에 쓸 많은 양이 아닌 적당량의 곡식만 빻으면 되었기 때문에 지름 1m~1.5m 안팎의 소형 연자방아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연자방아의 초기/재래식 형태
거대화되기 전의 재래식 연자매는 사람이 직접 틀을 잡고 밀거나 끌 수 있는 작은 크기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맷돌보다는 훨씬 크고 턱이 있으며, 대형 연자방아보다는 아담한 소형 연자방아의 아랫돌"**로 이해하시면 가장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