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예수 그리스도 vs 로마 황제
루카복음을 보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말을 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σωτήρ)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이 구절은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 루카가 예수님을 ‘구원자’이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마태오복음은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임마누엘’로 고백하지만, 구원자로는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루카복음이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두 가지를 알아 두어야 합니다. 첫째, 루카에게는 제정 초기의 로마 황제들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그는 황제의 재임 연대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들에 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루카 2,1), “클라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사도 18,2) 등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둘째, 제정 로마 초기의 특징 가운데 ‘황제 숭배 사상’이 중요했다는 점입니다. 황제 숭배 사상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태양신으로 여겼던 것이나 헬레니즘 문화에서 임금을 신격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제정이 시작되기 전, ‘율리우스 시저’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같은 위대한 장군들이 신격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초대 황제에 오르면서 황제 숭배 사상이 본격적으로 국가의 주요 통치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황제의 위대함을 알리는 프로파간다로 사용된 것이지요. 로마 제국 곳곳에 세워진,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진 신전이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본다면, 루카는 황제 숭배 사상에 대해서도 잘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루카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아기 예수님을 구원자로 선포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황제 숭배 사상은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황제 숭배 사상에서 로마 황제가 ‘구원자’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튀르키예 지역인 프리에네(priene)에서 발굴된 비문을 보면, “그녀(여신)가 그(아우구스투스)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구원자로 보내준 것처럼⋯”이라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을 언급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위에서 제시한 물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시대 배경을 알리기 위해 로마 황제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로마 황제는 구원자로 선전되고 있었죠. 따라서 루카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함으로써 누가 진정한 우리의 구원자인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로마 황제를 구원자로 포장하고 현혹하는 이들에 맞서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구원자이심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024년 11월 17일(나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