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눈ㅡ퀀텀 점프*
김승필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 대나무가 있었습죠 농부들이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놓고 1년, 2년, 3년, 4년 매일같이 온 정성을 다했습죠 벌겋게 파헤쳐진 산비탈에 4년 동안 고작 3㎝의 작은 싹을 틔워놓고 자라지 않았습죠 이 광경을 들여다보던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아연실색, 넋을 잃고 말았습죠 그런데 5년째 되던 해 드디어 죽순이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하루에 무려 30㎝가 넘도록 말입니다 어제는 다섯 발자국 오늘은 열 발자국 6주가 채 가시기 전에 15m 이상 자라났습죠 순식간에 울울창창한 숲이 되었습죠 새싹을 틔운 이후로 4년간 단 1㎝도 더 자라지 못했는데 어떻게 폭풍 성장할 수 있었냐고요 지상에 죽순을 내기 전 포기하지 않고 땅속 밑으로 깊고 넓게 단단한 뿌리를 삼십 리까지 묵묵히 내리고 있었습죠 밤새 칠흑 같은 뿌리망은 거대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었습죠 더 큰 성장을 위해 작은 성장을 잠시 멈춰 섰습죠 짚을 길 없는 허방 긴 호흡으로 바라보라는 죽비 소리에 화들짝, 새끼발가락에 박힌 띠앗 같은 티눈이 그만 쏙 빠지더란 말입니다 알몸으로 바람을 맞은 것들은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멈춘 것이 아니라 고투 중이었습죠, 악전고투 중이었습죠
*Quantum Jump: 양자 세계에서 양자가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갈 때 계단의 차이만큼 뛰어오르는 현상.
-『문학저널』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