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기를 보면 지는 이유에 대해
‘내가 경기를 보면 지는 이유’에 대한 글을 읽었다. 어느 칼럼 작가의 글이었는데, 나만 그러는 게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지난 2018년 아시안 게임의 축구결승전에서 한국 팀은 숙적 일본과 맞붙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보면 또 질 것 아닌가 싶어 꾹 눌러 참았다. 거의 끝나갈 시간에 결과만 확인하려고 티브이를 켜보니 연장전 후반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결과는 영 대 영 무승부였다. 내가 관전하지 않았더니 그 정도라도 견디는 것 같아 안도했다. 연장 후반전을 지켜보면 지지 않을까 싶어 망설였지만, 아내가 리모컨을 붙잡고 있는 터에 그냥 멈칫했다. 우리 팀은 순식간에 골을 넣고 2 : 1로 승리했다. 내가 경기를 보았는데, 승리한 경우는 아주 드믄 일이었다.
오래 전 그와 관련된 아픈 경험이 있었다. 전주공설운동장에서 모교 야구부가 K상고와 맞붙었다. K상고는 당시 역전의 명수로 전국대회를 휩쓰는 강팀이었다. 모교 팀은 그 경기만 이기면 전국 무대에서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를 맞은 터였다,
야구 감독 김만두 씨는 ‘이 번만은 틀림없다.’고 시퍼렇게 장담했다. 8회전까지 두 점의 선취점을 지키며 선전했는데, 징크스 같은 9회전을 맞아 에이스 투수가 흔들렸다. 평범한 직구를 상대 팀 4번 타자에게 던졌는데, 왼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연이은 안타와 범실 등을 묶어 대거 다섯 점을 내주고 무릎을 꿇었다.
실력은 분명 모교 팀이 나은 것 같았는데, 작전의 미스였는지 패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부터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기는 관전하지 않는 습성이 생겼다.
그 뒤 모교에서 재직동문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야구부 후원금 모금활동을 할 때였다. 지역에서 동창회 모임이 있다는 날은 야구선수들을 데려가 소개하고 후원을 당부하며 얼마간씩 모금을 해오곤 했다. 봉황기인가 뭔가 전국고교 야구대회에서 모교 팀이 준결승전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재학생들은 응원을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버스 십여 대를 불러 상경했다. 나는 담임이라 학생도 인솔하면서 모금함을 준비했다. 재경 동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대 팀은 경상도 야구 명문교였다. 그 학교 졸업생들도 많이 나왔다. 스탠드는 양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꽉 찼고, 응원가와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야구 관계자들의 전망은 우리에게 유리했다. 그 날의 경기내용에 대하여 자세한 기억은 없다. 경기 종반에 접어들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점차로 아슬아슬하게 패한 것이다. 동문들의 실망과 비난은 하늘을 찔렀다. 야구 지원금을 얼마 정도 내줄 줄 알았는데, 패한 팀에게는 아량을 베풀지 않아, 땡전 한 푼 거두지 못했다.
그 날 무슨 핑계라도 대며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걸 하는 후회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인간은 의미에 목말라 있는 동물이라,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는 일로 끌어내리기 위해 설명과 해석을 찾는다고 한다. 불규칙한 삶에 그럴싸한 규칙을 찾아내면, 이런 이치대로 살면 되겠지 하며 위안을 삼곤 한다.
경기 중에는 지는 경기가 인상에 깊이 남는다. 사람들은 예선경기보다 본선에, 16강 경기보다 8강에, 강한 상대와의 시합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기기 어려운 시합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시합은 대부분 진다. 이기는 경기에 비해 수십 배나 많은 사람이 지는 시합을 본다. 그리곤 투덜댄다. ‘내가 경기를 보면 꼭 진다니까.’ 라며 규칙을 들이 댄다.
나는 이것도 모르고 중요한 시합의 관전을 기피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젠 지는 경기도 즐기면서 보는 성숙된 관전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고만. 하지만 질 때가 많은 건 어쩔 수 없지.’
2019년 6월 폴란드에서 개최된 U-20 대회에서 우리나라 축구팀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결승전까지 올라가 우크라이나와 최종 경기를 치렀다. 선취점을 올렸으나, 결국 3대1로 패했다. 준우승을 했고 이강인 선수는 골든 볼을 수상했다. 나는 8강전 경기만 중계방송을 시청했을 뿐, 나머지 게임은 보지 않았다. 내가 경기를 지켜본다고 지는 일도 없었고, 보지 않았는데도 마지막에는 졌다. 징크스는 완전히 깨졌다.
(2019.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