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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경부선/매화가 어우러진 풍경
양산 원동 순매원 매화
낙동강에 봄이 오면 양산 원동마을에 매화바람이 분다. 이파리도 피우기 전 메마르고 가녀린 나뭇가지를 뚫고 버선목처럼 희게 피어나는 매화. 육지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매화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3월 중순 무렵. 강변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가 산등성이까지 흰 구름 두른 백색 꽃대궐을 차린다. 영랑 시인의 시처럼 “오메, 매화물 들것네”라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봄을 시각이 아니라 심장으로 느끼려면 가슴에 매화를 담아야 한다. 부산역을 목전에 둔 경부선 원동역. 무궁화호가 정차한 조용한 시골역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
원동역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이내 무리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운다. 순간 순매원에 도착했다고 착각한다. 매화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니 곧 길이 사라져버린다. 순매원이 아닌 것이다. 다시 길을 따라 걷는다. 5분이나 걸었을까.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이란 팻말과 함께 전망대가 나온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이 여럿이다.
전망대 아래로 순매원이 펼쳐진다. 농원 옆으로 기찻길과 낙동강이 나란히 달린다. 그제야 사진작가들이 왜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지 알게 된다. 매화, 강, 기차가 어우러진 특별한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낙동강 유장한 물길과 하얗게 핀 매화, 그리고 그 사이를 질주하는 기차의 역동적인 모습을 한 앵글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순매원밖에 없다. 기찻길 옆에서 봄을 피우는 매화는 훨씬 서정적이다. 낙동강과 붙어 있어 강의 서정성이 더욱 강하게 와 닿고, 철로를 따라 기차가 지날 때마다 봄소식을 전해주는 듯하다.
농원으로 들어가 매화나무 아래로 걸음을 옮긴다. 백매화, 홍매화가 천상의 화원인 양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볼 때도 매력 있지만 천천히 걸으며 매화 송이를 곁에 두니 더욱 매혹적이다. 몸 구석구석 그윽한 향기가 퍼진다. 꽃구름처럼 황홀한 자태도,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향이 더해지니 비로소 빛이 난다. 강바람이 실어다준 매화향이 코끝에 와 닿으니 고혹적인 향기에 온몸이 아찔해진다.
카메라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여기다 싶어 사진을 찍고 나서 한 걸음 옮기니 예쁜 꽃이 유혹한다. 때로는 여러 그루를 앵글에 담고, 때로는 탐스런 꽃을 클로즈업해서 담는다. 그렇게 매화나무 아래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순매원을 한 바퀴 돌았다고 여행이 끝나지 않는다. 매화 아래서 국수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 한 조각으로 봄날의 정취를 즐겨야 한다. 즉석에서 구워낸 노릇노릇한 파전, 고명과 함께 양푼에 말아 내는 국수는 순매원에 들르면 꼭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메뉴다. 옛 선비들은 매화를 보고 시를 읊으며 풍경을 즐겼지만, 상춘객은 매화나무 아래서 국수로 출출한 뱃속을 달래며 매화를 즐긴다. 방식이야 어떻든 매화를 즐기기는 매한가지다.
매화나무 아래 앉아 국수를 먹는데 꽃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꽃비가 내린다. 순간적으로 꽃잎 외의 모든 세상은 정지한다. 오로지 바람에 날리는 꽃잎과 그 속의 나만 있을 뿐이다. 기막힌 광경이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온 “우리들을 비참한 일상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이 알 수 없는 열병”이 여행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매화가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은 보름 남짓. 부지런히 움직여야 매화를 탐할 수 있다. 봄이 매화를 만들고, 매화가 다시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현장으로 내달리는 게 눈도 코도 만족하는 후회 없는 봄마중이다.
심 산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