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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퇴근하자마자 메모리 칩 시술을 받기 위해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소에 도착하고 나는 곧장 연구소의 이정암 박사를 찾아갔다. 이정암 박사는 메모리칩은 아직 샘플 수준이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나 나는 시술을 받았다. 시술이 시작되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이내 정신이 들자 약간 어지러웠다. 시술은 성공적이었다. 시술이 끝나고 일어났을 때 오전 7시였기 때문에 간단히 씻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회의가 있는 날이다. 회의 시작 전 브레인 칩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실에서 브레인 칩 시술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와 회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회의와는 다르게 중대 발표가 있는 듯했다. 발표자는 법무팀 김무준인 것 같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법무 팀 발표하겠습니다. 김무준 씨.」 「네, 이번에 저희 팀에서 브레인 칩과 관련된 법률 중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브레인 칩 개발 후 범죄율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불법 정보 공유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각 나라마다 다른 정보 통신법을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법 문구가 모호하거나 빼먹은 문장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정보 통신법 보충 버전을 판매하기보다는 브레인 칩 사용자들에게 무상으로 업데이트를 해 주려고 합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브레인 칩을 장착한 전부가 반드시 참여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공지를 할 것이며 하루 만에 신속히 모든 일을 완료하려 합니다. 지금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 중이고 앞으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네. 추가로 안건 제시할 사람 있나?」 내가 손을 들었다. 「얼마 전에 운 좋게도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감정이 제거된 문학을 원하셨습니다. 이번에 개발하는 데이터는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단순한 감정으로만 그려 낼 테니까요.」 팀장님이 말했다. 「그래. 샘플을 만들어 와보게. 내가 한번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회의가 끝나고 권은빈에게 긴급 소집을 부탁했다. 퇴근을 하고 바로 워크숍 카페로 갔다. 오랜만에 이정암 박사도 참석했다. 나는 이번 회의 때 나온 이야기를 전달했다. 관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가 짜 놓았던 것보다 상황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어. 우리도 계획을 앞당겨야겠네.」 권은빈이 말했다. 「우리의 계획에 더 필요한 것은 모나크의 중앙 정보 관리실에서 통제하고 있는 정보예요. 그래야만 우리가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보’파일을 만들어 배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배포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이용하는 거예요. 이미 제일 큰 P2P 사이트를 비밀리에 인수했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 왔습니다. 모나크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그들이 불법 정보 공유 통제와 관련된 법률 개정안을 배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올바른 정보’를 뿌리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나크가 정보를 독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정보를 2주일 안에는 갖고 와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일이 잘못되면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머릿속은 온통 정보를 어떻게 빼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정 대리님께 브레인 칩에 들어가는 정보가 어떤 것으로 구성돼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정 대리는 정보를 관리하는 중앙 정보 관리실에 지하 1층에 따로 있고 팀장님 허가를 받아서 전산팀원과 같이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개발자가 전산 팀 감독 하에 슈퍼컴퓨터에 입력을 하면 연구소에서 프로그래밍을 통해 브레인 칩에 들어갈 파일이 출력되고 슈퍼컴퓨터 정보는 일부 허락된 연구원만 인트라넷으로 접속 정도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이다. 전산팀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가 나와 함께 배정되도록 손을 써놓아야겠다. 데이터를 만들 작품을 추리며 이번 주 안에 중앙 정보 관리실 접근을 목표로 작업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 뒤 드디어 작업이 끝났고 바로 팀장님께 보고를 드리러 갔다. 팀장님은 바로 회사 전체에 이 사실을 알린 후 중앙 정보 관리실로 가서 업로드 하라는 허락을 내렸다. 나는 미리 준비한 대용량 USB를 들고 전산팀 동료 조성주에게 합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1층 로비에서 만나 중앙 정보 관리실로 이동했다. 중앙 정보 관리실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무려 다섯 개의 방범 시설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 정보 관리실에 도달했다. 나는 그와 사전에 약속한 매뉴얼대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필요한 시간은 10분 내외. 그때 전산 팀에서 화상 호출이 왔으나 그의 대처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무리 짓고 나올 수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서 권은빈에게 데이터 수집을 완료했다는 연락을 취했다.
퇴근을 하고 워크숍 카페로 갔다. 오늘은 <법의 정신> 토론을 하기로 한 날이다. 먼저 나의 중간보고가 있었다.
「미션 완료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정상 작동되어 모나크 회사 내의 컴퓨터에 분산되어 있던 정보를 수집 완료했습니다. 모나크 내 컴퓨터에는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을 조성주 씨가 최종 확인했습니다.」 권은빈이 말했다. 「고생 많았어요. 이제 저희는 정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잘못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정보를 올바르게 수정해서 P2P사이트에 새롭게 올릴 예정이에요. 전체 정보를 균등하게 나눠 드릴 겁니다. 한 달 안에 잘못된 정보를 뽑아 와서 다 같이 모여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죠. 그럼 모두들 수고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법의 정신>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참, 제가 미처 사전 공지를 못했는데요, 오늘 토론에 참여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마침 올 시간이 다 되었네요.」 그때 담이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담이라고 합니다. 열다섯 살이고요. 한정민 선생님께서 제가 도울 일이 있다고 하셔서 왔어요.」 「이 친구는 저와 평소에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 왔습니다. <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이미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환영해요. 뜻밖의 손님에게서 저희가 도움을 받게 되었네요. 잘 부탁드려요.」 권은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몽테스키외가 군주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모나크가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퍼뜨린 것을 보면 말이죠. 그들은 군주제를 실현하고자 이 책을 읽도록 의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뒤이어 전산팀 조성주가 말했다. 「제 생각에 몽테스키외는 귀족주의자인 듯싶습니다. ‘군주가 집행권을 가지고, 귀족은 입법권을 가지는데, 귀족 단체는 세습적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잖아요.」 「프랑스는 전쟁 후 나라가 어려워졌고 귀족이라고 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사회적 한계 속에서 귀족이었던 몽테스키외는 자기가 속한 귀족 계급의 입법권을 보호하고 군주를 견제하기 위해 삼권 분립을 주장했던 게 아닐까요? !모나크도 <법의 정신>을 널리 퍼뜨려 귀족 정치의 부활을 도모하는 걸 테고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고개가 갸웃거렸다. 논리적으로는 이들의 말이 맞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들의 해석에는 이상한 점이 없지 않다. 몽테스키외가 살았던 당시는 군주제 사회였다. 몽테스키외도 훌륭한 학자였지만 시대의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군주제나 귀족의 세습을 생각했던 것일 테다. 내가 말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이 당시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영국의 국가 구조’에서 말하는 영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과는 다릅니다. 지금은 정치인이나 행정부에 임기가 있고, 사법부도 ‘헌법재판소’와 같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이 보충되었죠. 민주주의를 꽃피게 한 이런 장치의 공통된 원리는 어떤 권력이든 ‘절대 권력’이 되면 ‘절대 부패’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지혜를 모아 부패하지 않는 권력을 만드는 장치가 바로 ‘권력 분립’인 것이지요. 최종적으로 저는, 모나크는 전제 정치를 꿈꾸면 꿈꾸었지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군주제 사회를 꿈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담이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혹시 <법의 정신>의 이번 버전에서 빠뜨린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모두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버전에서는 한정민 선생님이 말씀하신 ‘영국의 국가 구조’라는 장 한 페이지가 누락되어 있어요. 바로 삼권 분립이 왜 필요한가 하는 대목이에요. 삼권 분립이 필요한 이유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때문이고요. ‘정치적 자유란 자기의 안전에서 나오는 정신적 안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이 바로 전제정의 사회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빠져 있어요.」 모두들 생각을 더듬어 나가는 듯했다. 「네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어른들은 이미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법의 정신>의 핵심은 삼권 분립이고 영국은 삼권 분립이 잘된 나라다.’라는 결론을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앞의 내용이 빠져 있어도 삼권 분립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어요. 그러니 그 점을 노린 거예요.」 「그런데 담아. 넌 그걸 어떻게 찾아낸 거니?」 「저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법의 정신이 대체 뭘까 엄청 궁금해서 책을 더 열심히 읽었어요. 그리고 과연 법의 정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고요. 특히 어머니가 ‘모나크 특별법’으로 로보시아로 끌려갔을 때 법은 권력 그 자체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말이 법이지 폭군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었어요.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폭군 아닌가요?」
나도 담이 얘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몽테스키외는 ‘법이란 사물들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 관계이고, 세상 삼라만상의 관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나라, 세계 도처에 당시 존재한 나라마다 저마다의 정치 체제가 있는데, 그런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법은 그 나라의 자연, 풍토, 습속, 가치관, 경제 등과 연관된 관계의 총체이고 그것이 법의 정신이라고. 몽테스키외는 지금까지 정치 체제가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 이 세 개의 정체로 구분된다고 했다. 전제정은 법이 없는 곳이고, 공화정과 군주정은 법이 있는 곳이다. 몽테스키외는 군주정을 옹호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공화정의 장점도 인정하고 있다. 담이가 말했다.
「몽테스키외는 어떤 체제이든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곳이 좋은 정체라고 생각했어요. 법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는 곳이 바로 전제정이고요. 반면 공화정이나 군주정에는 법과 질서가 있어요. 삼권 분립으로 서로가 자신의 자유를 조금씩 제한하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자유로운 사회가 바로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요. 그게 바로 ‘법의 정신’이고요.」 관장님은 모두에게 동의룰 구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네 말에 따르면 모나크는 법이 없는 전제정을 바란다는 건데, 오히려 모나크는 여러 법을 만드는 데 열을 내고 있어. 그건 어떻게 설명하겠니?」 담이가 말했다. 「모나크도 공포를 이용하고 있지 않나요? 모나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브레인 칩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게다가 모나크에 동조하는 법률가들이 특별법을 제정해서 전 세계인에게 브레인 칩을 시술받도록 하는 거죠. 특별법은 일반법보다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겉으로는 법이지만 실제로는 거역할 수 없는 모나크의 명령인 것이나 다름없어요.」 「네 얘기를 듣고 보니 모나크가 만든 법이 말 그대로 법이 아니라 모나크의 명령에 불과하다는 걸 알겠다. 그리고 단지 정보와 지식으로만 생각하며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대목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나도 책 제목이 ‘법의 정신’인데 법의 정신이 정작 뭔지를 생각하지 않아 중요한 대목이 누락되었어도 눈치를 못 챘구나. 네 덕분에 중요한 걸 알게 되었어. 고맙다. 여러분, 오늘 토론 어떠셨습니까?」 권은빈이 토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담이가 우리에게 기계적인 세상을 만들려는 모나크의 의도를 알게 해준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나크에게 거부하기도 어려워요. 안 그러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모나크를 전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저도 죽지 않게 해 줄 기술이 있는데 죽음을 원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로보시아로 강제 이주된 뒤에 전 미칠 것 같았어요. 의학과 생물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엄마가 ‘은하철도 999’를 보며 적은 일기장이 제 생각을 바꿨어요.」 담이 엄마는 만화 영화를 보며 매회 결말을 예상해 적고 있었다. ‘결국 철이가 바란 죽지 않는 기계 몸을 가진 프로메슘 사람들은 삶의 목적도 이유도 갖지 못한 채 무의미한 삶을 살아나갈 터이다. 사람은 삶이 유일하기 때문에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고 있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삶은 살 만한 것이다’ 「제가 찾아보니 실제로 내용이 그렇게 흘렀어요. 저는 엄마가 로봇으로라도 살아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만일 그것이 제 삶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인간으로서 유의미한 삶을 사는 걸 택할 것 같아요.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니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선택의 자유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박탈하는 건 모나크를 비판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요.」
담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고재 회장의 비서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었다
「오늘 독고재 회장의 메신저에 뜬 내용을 제가 엿봤습니다. 얼마 전 모나크가 중동 지역에 비밀 부대를 보냈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많은 중동 지역 원전 시설에 인위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려 하는 비밀 부대에게 작전 개시를 지시하는 메시지였어요.」 「브레인 칩이 필요한 상황을 권력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군요.」
이제 우리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할 시기가 온 듯하다. 팀 사람들의 눈빛이 결연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