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개체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논할 때 이런 저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칭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을 할 줄 아는 개체이기 때문에, 또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아는 개체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을 믿을 줄 아는 개체이기 때문에 등등 많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부끄러움을 아는 개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야말로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데는 바로 이 부끄러움이 가장 윗선에 존재합니다. 유교 철학에서 인간의 도덕성과 감정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은 바로 사단(四端) 칠정(七情)입니다. 사단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있지만 그가운데서도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용어라고 판단됩니다. 수오지심은 자신의 행동이나 타인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이나 미움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반쯤 이 나라에 내려졌던 비상계엄령 사태속에 가장 뇌리에 남는 단어가 바로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말입니다. 더불어 민주당 안귀령 대변인이 국회의사당앞에서 출입을 가로막는 계엄군앞에서 총기를 잡고 한 말입니다. 계엄령이 발령되고 계엄군들이 총으로 무장을 한 채 국회 출입구를 지키고 있을 때 안 대변인이 자신을 가로막는 계엄군에게 일갈한 것이 바로 부끄럽지 않느냐입니다. 안 대변인은 국회에서 사태가 일단락된 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직 그말만이 생각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부끄러울 때는 부끄럽다는 말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이번 비상계엄령은 시작부터 지금 현재까지도 부끄러움의 연속입니다. 나라의 앞날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지금 자신들에게 처한 위기를 넘기데 급급한 세력을 제외하고 한국의 국민 대부분이 지금 이 한국땅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너무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비상계엄령이 발령될때까지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상황이나 그 이후 일어난 일련의 흐름이 너무도 부끄러움의 연속입니다. 비상계엄을 내린 이유가 드러나면서 더욱 그런 부끄러움의 강도가 깊어집니다.
해당 군 사령관 등 장성들이 국회에 불려나와 국회의원들의 추궁에 그냥 모르쇠 또는 자신은 위에서 지시하는 데로 따랐을 뿐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찌당 소속 이나 독일인 장교들이 재판장에서 자신은 위에서 시키는 데로 했을 뿐이라는 답변과 너무도 흡사했습니다. 위에서 지시한다고 무조건 그리고 죄의식도 없이 행한 것에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군 내부에서도 방송과 신문을 보고 읽을 것이고 나름 공부도 했다는 군인들이 한국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몰랐다면 한국의 군인으로서 너무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했다면 이번에 자신들에게 떨어진 그 지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비상계엄령이 나온지 며칠 뒤 전국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73%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했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유력 언론들이 한국의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고 한국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월 7일 토요일 오후 5시에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투표장에서 벌어진 행위는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모습입니다. 대통령 부인 특검법 투표에는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들이 모두 나와 투표를 한 뒤 대부분 그대로 퇴장하는 모습에서 과연 지금 이 모습이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여당 국회의원들의 현주소이란 것을 느끼는 순간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국회앞에서는 오전부터 역사적인 현장에 참가해서 자신들의 마음을 표하고 싶은 1백만여명의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모인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번 사태 판단 기준에는 보수와 진보 개념이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행위에 대한 판단입니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하려고 했으며 그런 작업을 위해 국가방위를 책임지는 군인을 자신의 사병처럼 마구 부려먹은 것에 대한 판단을 한국의 여당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것 아닙니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나눈 전화내용은 부끄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한국민들은 지금은 탄핵투표에 참석하지않은 것에 흥분하고 난리를 치지만 조금 지나면 잊어먹고 또 찍어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대화입니다. 그야말로 국민들 그리고 유권자들을 아이큐 30이하의 동물취급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자신은 박근혜 탄핵투표에 참가하지 않아 욕을 먹어도 3번이나 연속으로 당선됐다며 마치 무용담을 자랑하듯 하는 그런 모습에서 한국의 앞으로 정치가 너무 암담하고 부끄럽게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번 비상계엄을 고도의 정치행위이자 통치행위라는 주장이 또 다시 국민의 힘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제 부끄러움 정도는 아예 신경도 안쓰는 양상입니다.
현대는 기록의 시대라고 합니다. 정말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정보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이제는 스스로 행동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신과 사람 됨됨이도 판단을 내릴 때 당연히 중요하지만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낱낱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발생해도 이 기록들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역사에 남을 정당하고 훌륭한 기록은 물론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기록들도 빠짐없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2024년 12월 1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