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예언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뱀에 대한 사람의 감정을 정교하게 다듬은 표현이다. 즉, 뱀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감정의 묘사가 있기 전에, 먼저 예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묘사 때문에 이 말씀이 예언된 것으로서, 전형적인 사후 예언(ex-eventus)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독특하고도 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많은 그럴듯한 해석이 가해져 왔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물론 인공적으로 갈빗대에서 줄기 세포를 취하여 인간으로 만들 수 있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하느님을 인간과 같이 사물을 가공하여 만들어 내는 존재로 취급하는 생각에 불과하다. 모든 생물의 진화 과정은 산소와 수소가 자체의 성질로 인하여 결합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누군가 물을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산소와 수소를 결합시킨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한 결합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온의 성질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가 인위적으로 남녀를 결합시켜 2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동물적 성질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작용(effective action)이라는 말로 계속 표현하여 왔으며 표현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인공적으로 가공된 결과ㅡ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ㅡ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간의 과정을 전혀 과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는 작용은 '존재(=하느님)'의 속성 때문이다. 즉, 모든 사물이 작용하는 자체의 성질이 곧 하느님의 존재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성질이 각 사물에 존재한다는 것이 곧 하느님의 존재 방식인 것이다. 하느님을, 사물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사물을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초월자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루어 그분과 대화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속성이 깃들여져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 그리고 시공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다름 없다. 즉, 기도는 우리의 정신과 나를 포함한 사물의 사유 능력에 교감을 일으키는 행위다. 뱀을 보고 미래를 예언한 것은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지만 기록자는 그 예언적 미래가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일으키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예언을 읽는 독자가 그의 풍부한 상상력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해석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곧 정답이고 가장 유익한 것이 가장 정확한 정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한 가지인, 구세주가 나타나 악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