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시기 전에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제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39-46참조)
올리브 산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장면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때가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님도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셨을 것 같다. 지금도 예수님이 기도를 하셨다고 추측되는 동산에는 오래된 여덟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다. 물론 나무의 나이는 확실치 않다. 몇몇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이 올리브나무들은 적어도 약 2000년은 됐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학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님께서 고뇌의 밤을 이 나무들 곁에서 기도하며 보내셨을 것이다. 그래서 올리브 산 아래 위치한 겟세마니 동산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을 주는 성지이다. 현재도 이 동산은 예수님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올리브나무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과일나무이다. 올리브나무는 척박한 토양과 소량의 물만으로도 튼튼한 잎을 피운다. 그래서 올리브나무는 영혼을 치유하는 나무로 불리며 지중해의 환경과 문화에 잘 어울려서 수천 년을 산다.
올리브 나무는 줄기에 마디가 많고 잎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올리브나무는 늘 푸른 나무로 5월에 작은 흰색 꽃이 피고 나무의 열매는 가을에 수확해서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됐다.
"비둘기는 저녁때가 되어 돌아왔는데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이파리를 물고 있었다."(창세기 8,11 참조) 그리고 하느님의 귀한 축복은 올리브나무에 비유되기도 하였다.(호세아 14,6-7) 이처럼 올리브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으로 생각했다. 올리브나무는 평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또한 올리브나무의 열매에서 나오는 올리브기름은 여러 용도로 쓰였다. 팔레스티나 지방은 아열대에 속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매우 건조하고 태양과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목욕을 하고 나면 몸에 올리브기름을 발랐다. 또 올리브기름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도 사용했다.(루가 23,56) 특히 올리브기름은 음식에 많이 쓰이고, 등잔기름, 약, 향수, 비누의 재료 등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쓰였다.
성서에 보면 올리브기름을 바르는 것은 기쁨의 표시였다. 주인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마태 26,7; 루가 7,46). 올리브기름에 향료를 넣어서 향유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최고의 환영의 표시로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바르기도 했다.
손님의 발에 기름을 발라 주는 것은 헌신과 존경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루가 7,28-46 ; 요한 12,3) 그러나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은 기름을 바르지 못했다.(2사무 14,2)
또한 올리브기름과 향유는 종교 의식에서도 기름을 바르는 도유에 사용되었다. 성서에 보면 특별한 직무에 축성할 때 올리브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도유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세속의 영역에서 성스러운 영역으로 인도함을 의미했다.
사제, 왕, 예언자 등의 임명식에는 향유를 온몸에 발랐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이제 수행해야 할 소중한 사명의 준비로, 그들의 몸과 마음에 힘을 실어주는 의식이었다. 왕의 즉위식에서도 고위 성직자와 예언자가 기름을 바르는 도유식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 세워지며,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 아래 놓이게 된다고 믿었다. 이처럼 올리브기름은 '하느님 생명의 풍요와 충만'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세례를 받을 때 이마에 도유를 받는다.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올리브나무와 기름처럼 세상 속에 하느님의 축복과 풍요, 그리고 이웃에게 유익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삶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