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통영에 가서 호사를 누렸네
- 부산아동문학인협회 2024 문학 기행
김 문 홍
1.
토요일 오전 7시 30분.
교대 전철역 6번 출구에 있는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참가하는 회원 수가 적어 좌석에 듬성듬성 구명이 생겼다. 충북 제천에서 열리는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가을 세미나와 일정이 겹친 탓이다. 숫자 많다고 여정이 알찬 것은 아니다. 일당백이라고 오히려 더 오순도순 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여행에서는 옆에 앉은 사람, 그리고 앞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둔 옆자리 회원을 잘 살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조금 소원한 사람과 이웃해 있어야, 많은 대화를 통해 서먹서먹한 벽을 허물고 깊은 정을 나누어 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다. 내 옆자리는 박일 시인이고 앞자리는 지금 병마와 싸우고 있는 최 * 혜 선생과 그 옆의 남순 동화작가, 그리고 통로 옆은 박윤덕 작가 혼자다. 그래서 가고 오는 사이에 조금 소원한 남순, 박윤덕 작가와 정 붙이기에 집중 공략할 생각이다.
박윤덕 작가는 남해 출신이라 박 선생이 남해 출신 소설가 정을병, 백시종 두 작가를 거론하고, 나는 고인이 된 김상남 선생과의 생전 에피소드를 대화의 자리에 소재 거리로 내놓고 많은 얘기를 했다.
2.
창원에 들러 첫 방문지는 한국 아동문학 1세대 작가인 이원수 선생의 문학 자료를 전시한 '고향의 봄' 문학관이다. 맨 먼저 선생의 일대기를 축약한 다큐멘터리영화를 감상하고 전시된 자료를 살펴보았다. 고인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76년 중앙일보 어린이 자매지인 《소년 중앙》의 동화 공모에 아동소설이 당선됐는데, 그때 심사위원이 이원수 선생이었다. 2년 뒤인 1978년에 동극 작가 박원돈 선배와 내 첫 동화집인 <움직이는 산>(문성출판사) 공동 출판기념회를 남포동 입구에 있는 신신예식장에서 가졌는데, 동화집에 축하 글을 써 주시고 출판기념회 때 축하 인사까지 해 주신 분도 이원수 선생이다.
또한 이원수 선생님은 자신의 시인 '고향의 봄'을 친필로 써 주어 지금까지 누렇게 바랜 그 액자가 우리 집 벽에 걸려 45년 동안 온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이제는 그 액자를 기념관에 자료로 내놓을 생각이다.
이원수 선생은 양산에서 태어나 창원으로 이사 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타의에 의해 직장인 금융조합 사보에 동시 2편과 수필이 게재되어, 그것이 친일로 낙인찍혀 '이원수 문학상' 대신 '창원 아동문학상'으로 제정되어 수여되고 있다. 언젠가는 바로잡혀, 소외된 어린이를 위한 연민과 사랑의 작품을 빚어 온 선생의 진심이 인정받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으로는 인근에 있는 일제강점기 한국 추상 조각의 혁신에 앞장선 김종영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수령 4백 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온갖 기화요초가 활짝 피어, 선생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정신을 숭모하고 있는 듯 바람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성 <꿩 가든>에서 동동숲 지킴이며 '숲속의 은자'인 동화작가 배익천 선생이 베푼 노란 강황 돌솥밥과 구수한 된장국, 그리고 맛깔스런 만두와 감자전이 우리들의 입맛을 돋구었다. 덤으로 이번에 발간한 새로운 동화집 <숲이 된 물고기> 까지 주어졌다. 표제작인 '숲이 된 물고기>는 판타지 동화로, 고성 '동시 동화 나무의 숲'(동동 숲)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3.
통영에서 도착했다. 언제 봐도 한산도를 비롯한 4백여 개의 유인도와 무인도를 거느린 남해의 반짝이는 바다가 내해 깊숙이 들어와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해 많은 문학자와, 미술과 연극의 걸출한 예술인을 길러냈나 보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은 소설에서 박경리와 김용익을, 시와 시조에서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을, 미술에서는 추상회화의 전혁림, 그리고 음악에서는 세계적인 거장인 윤이상을, 그리고 희곡과 연극에서는 유치진을 배출했다.
일행들이 전혁림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몇몇 사람은 "남해의 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을 둘러봤다. 이번에 "남해의 봄날"이 소설가 김탁환에게 의뢰해 펴낸 묵직한 장편소설 <이중섭의 화양연화>가 출판되어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책방 주인장의 뒷배경 머리 위에는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라는 글귀가, 책을 안 읽는 우리네 영혼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끝사람 가시듯 첫사랑 오시네"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와 길쭉한 2025년 칼렌다와, 발행한 지 몇 달 만에 벌써 5쇄를 찍은 인플루언서 서평가 김미옥이 쓴 <미오기 傳>을 구입했다.
다음 달 하순이면 나올 내 여섯 번째 소설 중단편집 <설야 행>(雪夜 行)을 판매 의뢰하기 위해 명함 하나를 얻었다. 책방을 나오다 의자 위에 누워 가을 삽상한 바람을 쐬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고양이 한 녀석을 발견하고 "이놈 팔자 좋네."하고 중얼거렸다.
동피랑 언덕받이에 위치한 유치환 문학관을 찾았는데, 자료가 너무 허술하고 없어 보는 우리를 더 낯 뜨겁게 해, 이렇게 무성의하게 관람객을 대하는 문학관 관계자에게 욕지기를 퍼붓고 싶었다.
4.
마지막으로 바닷가 언덕에 세워진 통영국제음악당을 찾았다. 대극장을 들어서니 그 웅장한 위용에 숨이 멎는다. 1층의 객석과 5층까지의 객석과 베란다 좌석이 반듯하다. 특이한 점은 무대 위의 후면 객석이다. 그곳은 오페라와 공연에서의 합창 석인데, 합창이 없을 경우에는 객석으로 활용하는 변형된 원형 무대 형식이다. 극장 밖에는 방이 연이어 있는데, 유리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안내하는 담당지는 '바다 view'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마련한 근거로, "당신들을 위해 이렇게 환상적인 뷰를 마련했으니, 당신들은 관객의 아름다움을 위해 멋있 연주로 보답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선의에 의한 압력이라고 대답해 준다.
우리는 민족의 하나됨이라는 순정의 열망이 경직된 이념으로 산산이 부서진 고 윤이상 선생의 파란만장한 유랑의 생을 안타까워하는 묵념을 올리고 기념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집행부의 배려로 멋진 카페에서 바다를 한눈에 담으며 커피를 마시는 호사까지 누렸다.
마지막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윤이상 선생의 평장묘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비문에 적힌 흘림체의 네 한자어는 어느 고전에서 따 온 '處染常淨'(처염상정)은 "어떤 오염된 곳에서도 순수함을 지킨다 "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윤이상 선생의 올곧은 이념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인도의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위 노래에 섬 3연의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과 같이, 어떤 거처와 상황에서도 연꽃처럼 아름답고 고결한 꽃을 피우듯이, 자신은 영혼과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이자 마음일 것이다
5.
비가 흩뿌리자 오후 4시 30분에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오는 길에 최 * 혜 선생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한마디의 글을 적어 그녀의 희망 위에 얹었다.
오 * 량 시인이 <섬집 아기> 1절 노래를 부르다가 그만 실수로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에서 '아기'를 '아빠'로 잘못 읽는 바람에, 엄마가 아빠를 왜, 어떻게 잠을 재웠을까를 야릇하게 생각한 나머지 몇몇 회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한 2년 사이에 통영을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이번의 통영 나들이처럼 재미있기는 처음이다. 또한 이처럼 연이은 웃음과 호사를 누린 적도 없었다. 지금도 반짝이는 윤슬로 충만한 남해의 바다가 눈 속에서 출렁이는 듯하다. (20241020)
첫댓글 참 멋지십니다^^
안 그래도 젊은 김박사가 이번 여행으로 더 젊어졌다니 보기 좋습니다. 또 함께 여행합시다☆
부지런한 김문홍 선생님,
벌써 여행기를 올려놓으셨네요.^^
김문홍 선생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귀하신 분들과 여행하고 사진도 찍어서 제 폰에 역사가 담겨 있답니다.
여행! 거리도 거리지만, 더불어 함께 하는 與行이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래서인지 여행후기가 김문홍 서체로 시원하게 내달리면서 경쾌합니다. 즐거운 여행길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는 글 이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