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이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지만, 기업 투자가 촉진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을 풀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지요. 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완화적인 통화정책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입니다.”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은 일반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대증(對症)요법으로 효과가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재정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먼 교수는 세계 각국이 겪는 일자리 위기와 임금 구조, 세계화와 기술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 노동경제학자로,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과학·기술 노동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경제정책 입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프리먼 교수는 “노동시장 유연성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기업이 노동자와 수익을 나누고, 노동자가 회사 오너십(ownership)의 일부분을 구성하며, 노동시장 진입이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도록 하는 유연성은 노동 안정성이나 고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프리먼 교수는 미국 고용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회복이 더디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16년 10월 고용지표가 ‘골디락스(Goldilocks·정책이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상태)’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은 “실업률이 자연 상태에 매우 가까우며 미국 경제가 지난해 완전 고용에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미 연준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프리먼 교수는 “실업률이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고용률은 아직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며 “연준이 너무 성급하게 금리를 인상했다”고 말했다.
―많은 국가에서 충분한 일자리가 공급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우선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수요 부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의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이들은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교육 수준이 높은 다른 노동자들과 과거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하지만 주요국 정부가 쓴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투자붐을 발생시키지 못했습니다. 통화정책은 고용을 회복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합니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각국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해외로 이전한 공장을 자국으로 유턴시키는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리쇼어링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보다 로봇과 기계 발전이 일자리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또 세계화된 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을 고려하면 리쇼어링 정책이 의미 있는 수준의 일자리를 되찾아 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경우 무역적자를 완화하려는 노력이 리쇼어링 정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역적자 개선은 세계경제가 얼마나 살아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요.”
―일부 국가는 고용 촉진을 위해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추고 고용지원금도 지급합니다. 이런 정책이 고용 확대에 효과적인가요.
“물론 세금 감면이나 지원금은 기업 비용을 줄여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쓰면 대부분 기업은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최소한의 수준에서 고용을 확대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줘 고용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저는 정부가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늘어날 고용은 늘어났을 것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고용지원금이나 보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부는 많지 않습니다.”
―프랑스와 일본 등 주요국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는 양면이 있습니다. 유연성이 확대되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됩니다. 독일에서 많이 이뤄지는 단기 노동계약처럼 노동 안정성을 약화시키거나 한국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형성하는 유연성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노동 유연성은 기업과 노동자가 수익을 나누고, 노동자가 회사 오너십의 일부분을 구성하며, 노동자가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하는 상태입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많은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일자리가 생겼지요. 이것이 바람직한 유연성입니다.”
일자리 감소는 무역이 아니라 기계화·자동화 때문
기업 공급망 세계화 돼 리쇼어링으로 일자리 늘리는 데 한계
위기 시 기업의 ‘잡 셰어링’ 고용시장에 긍정적
―모든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고용 유연성의 적정 수준이 있나요.
“앞에서 말했듯이 유연성은 타입에 따라 다릅니다.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유연성 수준이란 것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2008년 당시 미국 은행 시스템을 기억하세요. 유연성이 매우 높았지만 결국 붕괴하지 않았습니까.”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잡 셰어링(job sharing)’에 나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업의 이런 전략은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률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 기업 수익 분배도 이뤄지지요. 고용 위기를 극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미국 고용시장이 개선되는 지표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1년 만에 인상했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졌지만, 임금이 인상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용시장 상황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지표 중에 좋은 지표와 나쁜 지표가 혼재돼 있습니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1년간 미국의 시간당 실질 임금 상승률은 0.8%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승률 대부분은 2016년 초 이야기입니다. 하반기에는 임금 수준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너무 일찍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실업률이 낮지만 취업률은 위기 이전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새로운 행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 프로그램을 공언한 상태입니다. 연준은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