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7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7:3).
그동안 이 영생에 대하여 대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오해와 오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영생은 마치 이 땅에서 예수 잘 믿은 자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으로만 인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영생은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삶이요 그것은 곧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이었음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을 통하여 그 영생을 알았고 또한 우리 주님과의 사귐을 가지오니 그 은혜가 내게 넘칩니다.
이런 내게 새 영과 새 마음을 두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서길 원합니다.
나의 힘과 의지로는 할 수 없사오니 성령 안에서 온전히 세워 주옵소서.
나는 자주 넘어지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한다고 하면서도 출입을 할 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주의 긍휼이 내게 필요합니다.
내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나를 강하게 붙잡아 주시고 장악하여 주사 주님 안에 연합한 자로 서게 하옵소서.
이제 올 2023년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나를 붙잡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29:15-27
제목 : 주의 심판이 나를 살립니다.
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부리라.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 나의 묵상
(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은 참 매력적이다.
특히 베트남 어린이들의 눈은 정말 깊고 반짝반짝 빛난다.
거기에 한없이 빠져들 것만 같은 깊고 그윽한 눈을 가지고 있으며 선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 천사 같은 아이들은 전혀 악을 모를 것 같아 보이지만, 엄마의 눈을 속여 가며 욕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는 아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죄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처럼 선을 행하는 데는 온 열과 성을 다하여 투혼을 함에도 잘 되지 않고, 때려도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선을 행하는 것은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자기주장의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쁜 짓은 가르치지 않아도 얼마나 그 길로 달려가는 것이 빠른가?
그 이유는 그 길에는 재미가 있고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
종에게 있어서 善은 주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이 한두 번 말을 안 들을 때, 따끔하게 징계를 하지 않고 말로만 하면 그 종은 계속해서 주인의 말에 귀 기울지 않고 지나치다가 급기야 주인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이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한다.
(롬 3:10-1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처럼 죄의 본성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데는 너무 힘이 들고 투혼이 필요하지만, 죄를 짓는 데는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죄의 허물을 벗기는데 가장 탁월한 것이다.
15절에서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준다고 하였다.
그러나 멋대로 내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고 망신시킬 뿐이다.
17절은 네 자식을 징계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할 것이며, 또한 네 영혼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믿는 자들에게 오는 고난은 단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죄로 인하여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다.
따라서 심판은 의를 세우고 의의 결과 하나님은 화평을 주신다.
(사 26:8-9)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무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시 94: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시온이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다.
(시 97:8)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착하다고 인정받고 칭찬받는 그런 나였지만, 다른 친구들이 가게에서 맛있는 과자를 사먹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버지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였지만, 돈을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몇 차례 돈을 훔쳐서 과자나 사탕을 사 먹은 적이 있다.
돈을 훔친 사실이 발각되어 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몸서리를 칠 정도로 끔찍하다.
만약 나의 잘못을 이처럼 따끔하게 징계하지 않았다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됐을지 사뭇 궁금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호된 징계는 나의 손버릇을 고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에게 이유 없는 고난은 없다.
나에게 고난이 왔다면 그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가장 적절한 때에 나를 살리시기 위한 은혜의 선물이다.
물론 고난은 아프다.
하지만 그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 안에서 의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고난은 여러 가지 형태로 올 수 있다.
나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하여 주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주시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의 죄로 인하여 주시는 고난이라면 이 고난은 나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징계요 또한 사랑의 매인 것이다.
그 징계가 나를 살리기 때문이다.
(시 119: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시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나는 고난당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였다.
물론 언약도 모르고 복음도 제대로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나에게 고난이 닥치면 왜 하필 나냐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채웠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지 아니하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새 언약을 선포하시고 그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성취하셨다.
(렘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지 않으셨으나, 그들과 똑같았던 나는 복음을 듣고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나를 살리는 최고의 방편이다.
말씀은 내 심령에 양날의 칼이 되어 나를 심판하신다.
말씀 앞에서 나는 존재적 무덤을 날마다 직면한다.
말씀의 무덤 앞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생각이 나지 않아 심령이 답답하고 죽을 것 같다.
그러나 말씀을 덮지 않고 피하지 않으며 잠잠히 주님 앞에서 머무를 때 주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주의 심판이 아니고서는 제가 하루도 온전히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심판하시며,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다시 삽니다.
주의 심판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로 다시 세우며 그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평화와 기쁨을 누리나이다.
내 안에 만물을 다 가지는 재미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더 원할 것 없는 하늘의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