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성으로 이름난 미야모토 무사시. 1584년 오카야마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그는 당대 최고의 검술가, 혹은 검술의 모짜르트라고 불립니다. 그가 이러한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29살까지 66번의 진검 승부에서 전승했다는( = 결투 상태를 전부 베어죽였다는) 점이 컸습니다. 지금에도 쓰이는 양손칼 한 자루로 싸우는 방식( = 일도류)을 확립한 이토 이토사이와 같은 유명한 검객이 33번의 승부(그 중 진검승부는 7번)에 불과하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무사시의 결투상대, 타치(太刀)의 달인 사사키 코지로의 정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리송한 점이 많습니다. 무사시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전해진 이야기들이거든요. 역사적 사료의 부재는 이 당시 검객들을 관통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 이토사이 역시 알려진 바가 없어 출생지 하나만 해도 네 가지의 설이 대립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카타나는 칼날이 위로 가게 차는 반면 타치는 칼날이 아래로 가게 찬다. 그리고 길이가 길다.
한 미국인이 일본 시오가와에서 찍은 타치는 이러한 타치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이 칼의 길이는 83.6cm, 14세기 라이쿠니미츠라는 도공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점은 코지로나 무사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연히 코지로에 대해서는 알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무사시와 호적수로서의 코지로에 대해 기술한 이천기(二天記)에서는 사사키 코지로는 도미타 고로자에몬의 제자로서 1612년 무사시와의 간류지마 결투 때 18세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위 고로자에몬의 전성기는 1558년에서 1570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설에 갖다 맞추면 코지로의 나이는 최대 70세도 가능하게 되지요. 심지어 오륜서에는 사사키 코지로의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사실 이천기 자체가 1730년대 이후에 기술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걸 보면 사료로서의 신뢰성은 (좀 과장해서) 빵점입니다.
이쯤 가다보니 여러 의견이 분분하게 되는데, 대략 다음 세 가지 설입니다.
1. 실존 인물이며,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무사시가 코지로를 멋지게 베어버렸다.
-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에서 채택한 설이죠?
2. 실존 인물이나, 무사시가 넘어뜨렸더니 무사시 제자들이 달려와서 쓰러진 코지로를 다구리쳤-_-다.
- 무려 학설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 P 형도 이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참고로 이 형 검도 고수입니다 -_-;
3. 가상 인물이다. 무사시를 영웅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람일 뿐이다.
- 이 설은 그냥 무시하도록 합시다.
그 외에 코지로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그가 휘두른 칼 이름이 모노호시자오라는 것 정도입니다. 빨래 너는 장대-_-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꽤 긴 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칼잡이들은 타치보다 작아서 다루거나 뽑기 쉬운 카타나를 사용했다는 것으로 아려져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확실히 이상한 칼입니다.

<만화 <배가본드>의 한 장면>
이 칼은 유명한 철 산지, 비젠에서 만들어진 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젠은 질 좋은 칼이라는 비젠모노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많은 명도를 쏟아낸 지역으로 유명하여 정조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의 왜도편에서도 "왜놈의 칼은 비젠 등에서 나온 것을 상품으로 친다."는 기술이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은 딱 이 정도까지라고밖에 말 못하겠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역시 빈약한 형편입니다.
첫댓글 흠 카타나와 타치의 차이 중 또 한가지는 만곡의 위치가 다르다는 거죠. 타치는 손잡이 부분부터 급격히 꺽여있고 카타나는 도의 중심부분에서 곡선이 시작되죠. 어쨋든 갑자기 베가본드가 보고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다크킬러 // 아, 오래된 타치의 경우가 그렇고 카타나가 등장한 이후 후대에 제작된 타치는 만곡이 비슷합니다. 지금 사진에 있는 것은 중간 정도로군요.
타치나 카타나나 시대에 때라서 만곡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당시 유행하는 검법의 스타일이나 서양검법의 영향. 전쟁으로 실전지향의 형태 등등 다양하게 변했지요.
아 그렇군요. 흠 그런데 대규모 전투에서 일도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대규모 전투에서야말로 일도의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겠죠. 예전에 세칭 '닛또류'의 검술의 시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진정 무사시의 방식 그대로였다면 솔직히 말해 보통 수준의 사람들이 그렇게 검을 다룰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전쟁사의 권위자 스티븐 턴불의 기술을 보면
검술연마의 효과는 확실히 어느정도 효과가 있어서 전쟁에 한번 나가보지도 않은 젊은 애송이라고 해도 제대로 검술을 연마한 사람이면 베테랑 병사를 능히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아무리 숙련된 검호라고 할지라도 적들이 훈련된 진을 짜고 창과 같은 장병기로 대응할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아이러니였다고 합니다. 즉, 전쟁은 노련한 엘리트들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훈련된 전법을 통해 집단행동을 하는 수많은 '보통사람'의 싸움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우리가 자주 토론했던 로마군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는 경우이지요. 개인으로써는 훌륭한 무예를 자랑하는
거친 용사들의 집단인 켈트나 게르만의 부족들을 상대로 전성기의 로마군이 연전연승을 거둔 것도 결국에는 완벽하게 확립된 집단 전법 및 검술 - "접근한다, 방패로 막는다, 복부를 찌른다" - 의 승리였으니까요. 따라서, 그와 같은 원칙이 일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면, 전장에서 일개 병사가 칼 두자루 휘두르는
일은 보기에도 드물뿐더러 효과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검을 든 병사들 자체가 드물고 대부분은 창을 쥔 채로 밀집된 진을 짜고 있었을 테니까요. 무사시가 진정 검성이라면, 그런 상대 앞에서 닛또류를 휘두를리가 없었겠죠. 애초에 싸우지 않고 튀는 것이야말로 그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병법체계에서
그런 종류의 상대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제한된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굳이 칼 두 자루를 쓸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더 해보자면.. 일본 영화나 사극 같은데에서는 시내에서 누군가가 관병에게 쫓길 때 어설프게 창을 들고 달려오는 웃기는 모자의 관병들을 파바바밧~ 하고 해치우고 유유히 성밖을 빠져나가는데, 실제의 경우에는 어떤 고수라고 해도 집단적인 제압/포획(그리고 필요하다면 척살)
훈련을 받은 관병들 4~5명이 일제히 그들의 특수한 장창무기로 포위해오면 왠만해서는 어떤 고수라고 해도 꼼짝없이 항복할 수 없었던 것이 진실이라고 하더군요. ㅋ~
ㅎㅎㅎ 드라마 무인시대가 생각나는군요. "장군님! 이의방이 제 군사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래도 해신에서는 좀 나았지요. 주연들이 병사들과 싸워도 부상은 입으니까...
"접근한다, 방패로 막는다, 복부를 찌른다" ㅋㅋ
KWEASSA 님께서 제 답변을 대신해 주셨군요. 실제로 저 시기만 해도 검술은 전투무기로서의 효율성은 별로 없습니다만 훈련용으로 많이 사용되게 됩니다. 결국 검술은 검도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남았죠.
무한의 주인이란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사무라이 주제에 옷속에 별의 별 무기들을 다 가지고 다닌다는...
무사시의 이도법은 세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는 소지한 무기를 모두 유용하게 구사하는것. 둘째는 한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것. 세번째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함입니다. 무사시는 같은 기량에선 창이 칼보다 낫고 한손으로 칼하나를 쥐는것보다 칼두개를 쥐는것이 이롭다고 했죠.
그리고 일본검술과 전쟁은 별개로 봐야 합니다. 검도는 평시의 사무라이의 병법이죠. 그러나 무사시는 평시의 검도를 전쟁과 연관시켜 자류를 만든것이고 무네노리같은 경우 검술을 평시의 검도로 전환한것이죠. 이때문에 야규의 신카게류는 장군가 병법이 되었고 니덴이치류는 사라지게 된겁니다. 시류에 안 맞았던것이죠
전국말기 오다에 의한 대규모 총력전으로 전쟁양상이 변한후에 사무라이의 위치는 애매모호해 해졌죠. 그전의 사무라이는 봉건제에 있어 개개인의 무력이 전투에서 중요했었죠. 그런 패러다임이 오다에 의해 바뀐것인데..이것을 도쿠가와 무네노리가 평시의 사무라이즘으로 전환시킵니다.
여기에서 다양한 일본검술이 파생됩니다. 전국시대에는 사실 유술이나 검술유파같은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이 도쿠가와 막부체제아래 수백개의 유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검술과 전쟁은 별 연관이 없었죠. 그것이 막부후기 무진전쟁등과 양이정신으로 인해 다시 상무정신이 강조되고.
검도와 유도가 통합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 프로복싱을 제외한 프로격투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일본에서 태어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k-1 프라이드같은 격투대회도 이런 일본의 역사의 흐름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