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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답변 검객 사사키 코지로
고어핀드 추천 0 조회 4,442 06.05.09 00:08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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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5.09 00:14

    첫댓글 흠 카타나와 타치의 차이 중 또 한가지는 만곡의 위치가 다르다는 거죠. 타치는 손잡이 부분부터 급격히 꺽여있고 카타나는 도의 중심부분에서 곡선이 시작되죠. 어쨋든 갑자기 베가본드가 보고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 작성자 06.05.09 00:57

    다크킬러 // 아, 오래된 타치의 경우가 그렇고 카타나가 등장한 이후 후대에 제작된 타치는 만곡이 비슷합니다. 지금 사진에 있는 것은 중간 정도로군요.

  • 06.05.09 09:51

    타치나 카타나나 시대에 때라서 만곡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당시 유행하는 검법의 스타일이나 서양검법의 영향. 전쟁으로 실전지향의 형태 등등 다양하게 변했지요.

  • 06.05.09 10:45

    아 그렇군요. 흠 그런데 대규모 전투에서 일도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 06.05.09 16:12

    대규모 전투에서야말로 일도의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겠죠. 예전에 세칭 '닛또류'의 검술의 시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진정 무사시의 방식 그대로였다면 솔직히 말해 보통 수준의 사람들이 그렇게 검을 다룰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전쟁사의 권위자 스티븐 턴불의 기술을 보면

  • 06.05.09 16:14

    검술연마의 효과는 확실히 어느정도 효과가 있어서 전쟁에 한번 나가보지도 않은 젊은 애송이라고 해도 제대로 검술을 연마한 사람이면 베테랑 병사를 능히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아무리 숙련된 검호라고 할지라도 적들이 훈련된 진을 짜고 창과 같은 장병기로 대응할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 06.05.09 16:16

    죽어나가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아이러니였다고 합니다. 즉, 전쟁은 노련한 엘리트들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훈련된 전법을 통해 집단행동을 하는 수많은 '보통사람'의 싸움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우리가 자주 토론했던 로마군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는 경우이지요. 개인으로써는 훌륭한 무예를 자랑하는

  • 06.05.09 16:17

    거친 용사들의 집단인 켈트나 게르만의 부족들을 상대로 전성기의 로마군이 연전연승을 거둔 것도 결국에는 완벽하게 확립된 집단 전법 및 검술 - "접근한다, 방패로 막는다, 복부를 찌른다" - 의 승리였으니까요. 따라서, 그와 같은 원칙이 일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면, 전장에서 일개 병사가 칼 두자루 휘두르는

  • 06.05.09 16:20

    일은 보기에도 드물뿐더러 효과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검을 든 병사들 자체가 드물고 대부분은 창을 쥔 채로 밀집된 진을 짜고 있었을 테니까요. 무사시가 진정 검성이라면, 그런 상대 앞에서 닛또류를 휘두를리가 없었겠죠. 애초에 싸우지 않고 튀는 것이야말로 그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병법체계에서

  • 06.05.09 16:20

    그런 종류의 상대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제한된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굳이 칼 두 자루를 쓸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06.05.09 16:22

    아,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더 해보자면.. 일본 영화나 사극 같은데에서는 시내에서 누군가가 관병에게 쫓길 때 어설프게 창을 들고 달려오는 웃기는 모자의 관병들을 파바바밧~ 하고 해치우고 유유히 성밖을 빠져나가는데, 실제의 경우에는 어떤 고수라고 해도 집단적인 제압/포획(그리고 필요하다면 척살)

  • 06.05.09 16:23

    훈련을 받은 관병들 4~5명이 일제히 그들의 특수한 장창무기로 포위해오면 왠만해서는 어떤 고수라고 해도 꼼짝없이 항복할 수 없었던 것이 진실이라고 하더군요. ㅋ~

  • 06.05.09 16:43

    ㅎㅎㅎ 드라마 무인시대가 생각나는군요. "장군님! 이의방이 제 군사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래도 해신에서는 좀 나았지요. 주연들이 병사들과 싸워도 부상은 입으니까...

  • 06.05.09 16:39

    "접근한다, 방패로 막는다, 복부를 찌른다" ㅋㅋ

  • 작성자 06.05.09 18:02

    KWEASSA 님께서 제 답변을 대신해 주셨군요. 실제로 저 시기만 해도 검술은 전투무기로서의 효율성은 별로 없습니다만 훈련용으로 많이 사용되게 됩니다. 결국 검술은 검도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 남았죠.

  • 06.05.09 18:52

    무한의 주인이란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사무라이 주제에 옷속에 별의 별 무기들을 다 가지고 다닌다는...

  • 06.05.09 21:27

    무사시의 이도법은 세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는 소지한 무기를 모두 유용하게 구사하는것. 둘째는 한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것. 세번째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함입니다. 무사시는 같은 기량에선 창이 칼보다 낫고 한손으로 칼하나를 쥐는것보다 칼두개를 쥐는것이 이롭다고 했죠.

  • 06.05.09 21:30

    그리고 일본검술과 전쟁은 별개로 봐야 합니다. 검도는 평시의 사무라이의 병법이죠. 그러나 무사시는 평시의 검도를 전쟁과 연관시켜 자류를 만든것이고 무네노리같은 경우 검술을 평시의 검도로 전환한것이죠. 이때문에 야규의 신카게류는 장군가 병법이 되었고 니덴이치류는 사라지게 된겁니다. 시류에 안 맞았던것이죠

  • 06.05.09 21:32

    전국말기 오다에 의한 대규모 총력전으로 전쟁양상이 변한후에 사무라이의 위치는 애매모호해 해졌죠. 그전의 사무라이는 봉건제에 있어 개개인의 무력이 전투에서 중요했었죠. 그런 패러다임이 오다에 의해 바뀐것인데..이것을 도쿠가와 무네노리가 평시의 사무라이즘으로 전환시킵니다.

  • 06.05.09 21:34

    여기에서 다양한 일본검술이 파생됩니다. 전국시대에는 사실 유술이나 검술유파같은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이 도쿠가와 막부체제아래 수백개의 유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검술과 전쟁은 별 연관이 없었죠. 그것이 막부후기 무진전쟁등과 양이정신으로 인해 다시 상무정신이 강조되고.

  • 06.05.09 21:37

    검도와 유도가 통합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 프로복싱을 제외한 프로격투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일본에서 태어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k-1 프라이드같은 격투대회도 이런 일본의 역사의 흐름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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