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많은 사리가 나왔다면서요?
8곡 4두의 사리가 나와서 세계 곳곳에 8만 4천탑을 세웠다.
사리(舍利)라는 말은 범어 (梵語)인 sarira의 음역(音譯)이 며, 그 뜻은 유체 (遺體), 유골(遺骨)을 의미한다.
sarira는 단수형(單數形)이나, 그 복수형(複數形) 은 sarirani이다.
본래 단수형의 뜻은 신체, 또는 유체(遺體)이며, 복수형 (複數形)은 유골(遺骨), 영골(靈骨)을 의미한다.
석존(釋尊)이 80세를 一期로 대반열반(大槃涅槃)에 드신 후, 그 유체(遺體)는 다비(茶毘= jhaprti-火葬)후에 유골 을 8등분(마아가다국의 아자세王, 바이샬리의 릿치비族, 카필라의 석가族, 알라캇파의 부리族, 파아바市의 말라族, 베에다 섬의 어느 바라문, 구시나가라의 말라族)되었고, 불사리(佛舍利)를 담았던 병(甁)과 화장 후, 남은 재(灰) 와 함께 각지방에 옮겨져서 열 곳에 塔(병탑과 灰塔을 포함)이 세워졌던 것이다.
1898년 룸비니 부근 피푸라봐(Piprahwa)地方에서 大理石 으로 만든 돌궤(石櫃)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납석(蠟石) 으로 만든 단지(壺)에 <바가범 불타(薄伽梵 佛陀)의 유골을 모신 이 성감(聖龕)은 석가族의 大聖이신 佛陀의 형제자매 와 그 처자들의 소유에 속한다.>라는 뜻의 명문(銘文)이 새 겨저 있었으므로 이것은 위에서 말한 舍利 8分說을 뒷받침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것이다.
원래, 塔(stupa)이란 구체적으로는 분묘(墳墓)와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탑속에는 유골인 舍利를 안치(安置)했기 때문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는 釋尊이 입멸직전(入滅直前)에 시자(侍者)인 "아난다(阿難多)"가 佛舍利의 숭배에 관하여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에 대하여 釋尊은 불탑숭배는 在家信者가 해야 할 일이지, 출가수행자(比丘)가 관여할 일 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佛敎의 요결(要訣)은 무상(無常)을 깨닫는 일, 修行에 부지 런히 노력하는 일의 두 가지라 할 수 있고. 無常의 가르침은 釋尊 자신이 늙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무엇보담 생생 하게 인상지어진다.
그러나 年代의 경과와 더불어 너무나 위대했던 佛陀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부처로서의 신격화(神格化)가 이뤄져서 부처 의 출현은 참으로 희유(稀有)하다던가, 32相 80종호(種好) 와 같은 특수한 상호를 갖추셨다던가 하는 신학적 사변 (神學的思辯)이 여러 이역본 (諸異譯本中)중에 부가(附加)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시의 塔숭배는 원칙적으로 육신이 없어진 佛陀에 대한 예 배로서, 佛陀의 유골(舍利)을 봉안한 탑을 향하여 추모의 정 을 나타내는 성격의 공양이었다.
이 기능은 상좌부(上座部)에서 현재의 남방불교에 이르는 기간동안, 오래도록 전해 내려왔으나, 대승불(大乘佛敎)에 있어서는 불신관(佛身觀)의 변천에 따라 영원한 佛陀의 상징 으로서의 불탑숭배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후한(后漢) 명제(明帝)때 (AD58-75)라 한다.
이 당시에 있어서의 중국은 화장(火葬)을 이민족(異民族)의 풍습으로 보아 혐오하여 법률로서 금했다. 때문에 화장에 의한 유골을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삼는다는 것은 당장에 받아 드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승려이외의 중국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화장을 하지 않음을 보아 과거를 추정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기 247년경 강승회(康僧會)라는 강국인 (康國人)의 승려가 건업(지금의 南京)에 들어와서 오왕(吳王) 인 손권(孫權)에게 舍利의 영험이 현저하다고 말하며, 옛날 인도의 "아쇼카王"이 탑을 많이 세운 공덕으로 印度를 통일 하였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그러자 吳王 孫權은 강승회에게 감복하여 건업(建業)에 최초 의 탑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建初寺).
또한 설명적 문헌에는 佛舍利가 빛을 발한다는 특색이 있고, 매우 견고하며, 심지어는 물에 던지면 물위에 빙글빙글 돈 다는 등의 여러 가지로 기서(奇瑞)를 보인다는 것이 중국인 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기적적 사실을 가장 많이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는 수 나라의 문제(隨 文帝)가 인수년간(仁壽年間- 601-604)에 三회에 걸쳐 백여개의 목조사리탑(木造舍利塔)을 세웠던 인수사리탑(仁壽舍利塔)의 경우가 있다.
이러한 기적이나 영험담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근세에 이 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보이는 바와 같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영험이 많은 佛舍利는 보통의 소골(燒骨) 과는 달리 대소의 입상(粒狀)을 하고 있고, 광채를 내는 특성 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印度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舍利가 骨灰와 같이 대부 분이 粉質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와같이 佛舍利는 현실로 갖가지 기이하고 상서로운 현상을 나타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화장한 유골임에도 불구하 고, 중국인들이 독실히 신앙하고, 불탑을 곳곳에 널리 세울 수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아마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고래로 노장사상(老莊思想) 과 유교(儒敎)가 엄연히 존재해 온 사회에 외래사상으로서의 불교가 어떻게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을 생각 한다면, 佛舍利의 신비화(神秘化)는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며, 불교도로서의 불법홍포(佛法弘布)를 위한 열열한 심정 과 상징적논리의 표현이라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舍利傳來와 그 신앙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리뫙 2년(AD372) 에 진왕(秦王) 부견(符堅)이가 승(僧) 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불경을 전하게 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것으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실제의 전래는 이보다 훨씬 앞섰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헌상에서 佛舍利 전래의 기록을 찾는다면 삼국중 불교 전래가 가장 늦은 신라에서 볼 수 있다.
<三國遺史> 권四, 진흥왕(眞興王) 10年條에 양(梁)나라에서 佛舍利를 전하니, 진흥왕이 나아가 봉영(奉迎)하였다는 기록 이 있고, 다음으로 <삼국유사> 권3, 탑상(塔像) 제四 전후 사리 소장조(前後舍利 所藏條)에는 梁나라의 사신(使臣) 심호 (沈湖)가 진흥왕 대청 3년(AD 549)에 舍利 약간을 보내 왔다 고 했으며, 또 선덕여왕 정관 17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 )가 불두골(佛頭骨), 불아(佛牙)등 佛舍利 백과(百顆)와 배라금점 (徘羅金点) 가사(袈裟) 한 벌을 가져 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舍利는 세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는 태화탑(太和塔)에 또 한 부분은 황룡사 九층탑에, 나머지 한 부분은 통도사 계단 (戒壇)에 두었으나, 그밖에 것은 소재가 불명하다고 했다.
이외에도 문헌에 나타나는 사리관계의 기록은 많으나 이상의 불사리 전래의 대표적인 예로 셋만 들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舍利觀 - 印度에서는 석가의 입멸을 세속적차원 에서 볼 때는 죽음일 뿐이고 탈세속(脫世俗的) 차원에서는 心身을 함께 도멸(都滅)한 영원한 완성(完成=般涅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舍利를 봉안한 塔에 대하여 슬퍼하는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찬미하고 축복해야 할 열반의 완성으로 보는 듯 하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舍利를 봉안할 때, 敎祖의 유골을 매장 한다고 생각하고 호읍(號泣)하여 천지가 진동할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어 퍽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저 있어 서 佛舍利를 求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佛陀의 정신이 깃든 불경(佛經=法身舍利) 같은 것을 납입하고, 금은보화등으로 만든 舍利小塔, 佛像, 옥장식(玉裝), 동경(銅鏡), 장신구 같은 귀중품을 함께 넣어 佛陀를 공양하 고, 불타에 대한 기원(祈願)을 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舍利觀은 인도의 경우나 중국의 경우와도 사리에 대한 관념의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여 인도에서는 교조의 유골을 두고, 마치 부모 를 잃은 자식의 심경같은 교조를 추모하는 심정에서 모셨다 하고, 중국에서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숭앙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도 물론 적지 않았지만, 보다 중 요한 것은 신앙의 상징으로서 舍利를 봉안했으며, 또한 그곳 에는 발원(發願)이 따랐던 것이다.
이러한 佛舍利信仰은 거룩하신 釋尊을 흠모하는 데서 출발 하여 그 깊이를 더해 왔고, 또 일반불교도들의 요청에 의하여 그것이 신앙생활에 한 단면으로써 자리잡게 됨에 따라 불교 가 있는 한 이어져 갈 것임은 분명하다 하겠으나,
불교의 근본정신과 기본적인 입장은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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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_()()()_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성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