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어느 인도의 시인은 이렇게 시작하는 시 한 편을 남겼습니다.
“물속의 고기가 목마르다는 말에 나는 웃었네.”
이 시를 상상해 보세요. 물고기가 물속에서 목마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목말라하는 물고기와 같지 않을까요?
행복 자체를 이 세상의 감각적인 쾌락, 재미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행복을 얻지 못하자 좌절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식의 타협점을 찾습니다.
“일을 바꾸면 행복할거야. 누구와 결혼을 하면 행복할거야.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거야.”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타협점에 이르렀을 때 정말로 행복했습니까? 사실 오히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행복이란 새로운 것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바로 하느님의 일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기본 정신은 바로 사랑이지요. 따라서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이라도 소홀하지 않는 사람, 매순간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늘나라의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옷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당신 옷이 타고 있어요.”하고 소리를 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나도 알아요. 당신들 눈에는 내가 지금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안 보입니까?”
이 사람 옷의 불은 과연 비가 내려서 꺼질까요? 우연히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님께 해달라고 하면서 성가시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의 실천은 바로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먼 미래에 여유가 되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야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지금의 나를 보는 듯, 반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