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시 연재 칼럼 20 (2025년 4월)
괴로움에 대하여
요즘은 거의 매일 글을 쓴다. 그러니 별 신통하거나 신선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 밀린 숙제를 풀어내는 마음으로 쓴다. 그렇다고 밀린 인생을 돌아보고 싶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쓴다. 사정이 이러니 깊은 사색에서 솟아난 글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쓴다. 아직 자판을 칠 수 있고, 별 재미는 없지만, 자꾸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쓴다. 그렇다고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서 쓰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남들처럼 직장에 매어있고 직업 상 자투리 시간마다 억지로라도 교재를 읽어내야 하고, 명색이 시인이니 시도 써야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연주하러 카페에도 가야 하고, 별로 연습은 안 하지만, 그래도 아주 연습을 안 할 수는 없다. 자꾸 가사와 코드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잘 만나지 못한다.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도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도 필자가 술을 마시지 못하니 불러주는 친구도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내가 노래하러 가는 카페에서 사람 들을 만나는 일이 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요즘 필자가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참 난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왜 난 이렇게 할 말이 많을까? 되짚어 생각해 보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별로 사람들이 들어주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글들을 수다 떨듯이 지껄이는 나 자신이 싫어지곤 한다. 어떤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의 경지에는 근처에도 못 가고, 늘 사는 일이 괴로웠다는 것밖에 내겐 별 저장된 에너지도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쉽게 ‘괴로움은 욕심이 많아 생기는 것’이라고 충고를 하지만 난 동의하기 싫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처럼 내가 욕심이 많다면 그 욕심을 포기할 만큼 다듬어진 사람이 못되니 더 힘들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욕심을 버리는 수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포기한 것들을 스스로 욕심을 버린 어떤 정신적 경지로 치장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면 욕심 덩어리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렇게 자신에게 타이르곤 한다. 괴로움을 두려워 말자. 괴로움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은 비겁이다. 혹자는 내가 괴로움을 즐기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괴로움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다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괴로움을 즐길 만큼 나는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욕심의 양만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욕심이 현실적인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 사람을 그리워하는 욕심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이들은 입에 늘 ‘외롭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고 나를 놀리기도 하지만, 난 정말 외롭고, 그 외로움이 너무 싫다. 아마 이것도 성격과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사람들은 고통과 욕망과 사랑, 외로움조차도 외부로 보이는 평균치의 기준을 세우고 재단하고 싶어 한다. 당신은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직업도 있는데 뭐가 그렇게 외롭냐고 질타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코 외로움의 유무에 대한 절대적 판단의 기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속에도 비겁이 살고 있다. 적막과 외로움을 가능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젠 세상을 좀 우회하며 살고 싶지만, 성격이 편안하지 못해 늘 직설적이고 정면 돌파가 아닌 경우에는 답답해서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바둑이나 고스톱이나 카드처럼 인생을 철저하게 닮은 게임을 잘하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어떻게 인생과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겠는가? 이런 결론이 열등감처럼 밀려오지만 노력해도 잘 극복되지 않을 듯하고, 또 극복하고 싶은 강렬한 의지도 없다.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이런 필자가 나도 너무 싫다. 그러니 남들은 오죽하겠는가!
공갈 협박
끝내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백범의 암살 배후도 심증 만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종종 티브이에서 방영해주는 군사 독재 시절, 달리는 기차에 떠밀려 살해된 생떼 같은 젊은 대학생들의 의문사도 아직 심증만 있을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학생 위장 취업 노동자. 지금부터 삼십 여 년 전이니 그때의 나보다 훨씬 젊은이들의 황당한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온 셈이다. 심증만 있고 진상 규명은 묘연하기만 한 시대의 뻔뻔함에 동승해 건너왔고 지금도 건너는 중이다. 그리고 불현듯 젊은 나이에 생을 접은 그 또래의 시인 기형도의 시편들과 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 노래> (황현산 번역 문학동네. 2018)를 다시 꺼내 읽는 중이다. 대체 나는 무얼 규명하고 싶은 것일까!
이 글은 수년 전 대학생 위장 취업 노동자에 대한 다큐를 보다가 쓴 글이다. 처음엔 시로 쓰고 싶었지만 잘 다듬어지지 않아 묵혀 두었던 초고이다. 여전히 필자는 심증만 확실하고 진상 규명은 늘 흐지부지 애매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꺼내 보는 것이다.
작년 10월, 필자는 이 초고가 생각나 다시 정리해 두었다. 그러니까 계엄 사태가 터지기 몇 달 전이다. 요즘 계엄에 대한 위헌 여부를 따지는 진상 규명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리고 있다. 혹시 예전의 백범 암살이나 대학생들의 의문사처럼 심증 만으로 얼렁뚱땅 넘어 가지야 않겠지. 하지만 이해 타산에 따라 되풀이되는 상식 밖의 일들로 점철되는 것이 역사의 본질은 아닐까 하는 일종의 암담함이 내 속을 드나들며 깊은 우울증으로 쳐들어오고 있다. 디지털화된 시대에 이미 온 국민에게 영상으로 생중계된 위헌의 진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무슨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걸까? 법적 절차라는 미명 아래 간교한 법꾸라지들의 혀가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절대 권력을 쥐었다 해도 국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계엄군을 동원했다는것만으로도 필자는 용서할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경고한단 말인가? 국민에 의해 피선된 권력이 어떻게 그들의 주인인 국민에게 군인을 동원해 경고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들은 자꾸 부정선거라는 실체 없는 이슈로 그들의 불법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지지층을 가스라이팅하듯 선동하는 걸까? 백 번 양보해 그들 말대로 경고라 해도 국민을 향한 계엄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확실하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공갈 협박이기 때문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노래 가사처럼 담담하게 내가 밟아온 길을 노래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지만, 필자는 요즘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 마다 민망하다. 무수한 생의 질곡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외출할 때는 썬 크림으로 어두운 구석을 가리는 버릇이 들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화장인 셈이다. 이는 종종 노래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필자의 스케줄과도 관계가 있다. 반추해 보면 부끄럽고 모욕스러운 일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욕의 순간을 참아내지 못한 것이 더 모욕스러웠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감추고 잊으려 노력한 것이 더 부끄러웠다. 그러고보니 필자는 분명 뒷끝이 있는 성격인 것도 같다. 생업인 학교 수업 시간에 인생은 실수의 연속이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그럴듯 하게 말하면서 필자는 실수 혹은 실패를 두려워했다.
곧 퇴직을 앞에 두고 있다. 35년이나 교사로 살았다는 게 꿈결 같다. 아니, 만 8살에 학교 교문에 들어 선 이래. 한 번도 교문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 더 믿겨지지 않는다. 분명 남은 여생에도 실수나 실패가 실눈 뜨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 하거나 감추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심을 내려놓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 <2010년 10월 27일 일기에서>
이 일기를 쓰던 날 어떤 모욕감이 필자를 휩쓸고 지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이후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필자 공연의 주된 레파토리 속에 넣었다.
전대미문
별 할 말이 없다. 다만, 충격적인 것은 사람들이 인파에 밀리고 눌려 비명 지르며 쓰러지고 죽어 나가는데 그 근처에서 여전히 할로인 복장으로 가면을 쓰고 춤을 추며 발광하는 듯한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들이 찍힌 동영상! 그리고 인파에 밀리고 눌려 많은 사람들이 질식해 죽은 참사 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 그때도 필자는 할 말을 잃었었다. 전쟁도 아닌데 생떼 같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아직 더 죽을 것이고, 짐작조차 어려운 그들의 가족의 비통한 슬픔이 자꾸 내 속으로 전이되고, 티브이 켜기도 힘들었다는 것 뿐!
이 메모를 쓴 2년 후, 대통령을 비롯해서 이태원 참사에 전혀 책임지지 않은 정부 고위층 인사들이 내란 사태에 연루되어 탄핵되거나 구속되었고 재판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법원을 때려 부셨고, 체포 구속되었고, 그들이 때려 부순 법원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세상에! 제 나라의 법 체계 마지막 보루인 법원을 때려 부수다니! 악법도 법이라며 사형을 받아들인 소크라테스는 고대의 인물이다. 물론 이들이 소크라테스가 아니고 될 수도 없겠지. 하지만 천여 년을 퇴보한 정신적 절망감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리고 아직 이 세력들을 선동하는 인물들이 버젓이 티브이에 등장하고, 이들의 대형 집회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도 모두 필자와 얼굴 색이 같고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음에도 사용하는 문법 체계가 왜 이리 다른 걸까? 그래서 그런 걸까? 연이어 공항 참사, 여객선 참사, 심지어는 이제 겨우 8살 먹은 초등학생이 정신병에 시달리는 교사에게 그것도 학교에서 살해되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암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