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월...난 오랜 독신주의 고집을 버리고
운명과도 같이... 심야 드라이브 도중 우연히 ,
'꼭 베트남 처녀와 결혼 하세요' 란 현수막을 보고
국내여성을 피해 순박하고 신랑 나이차이 안 따지며,
시부모에게 충실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부지런하다는
베트남 처자를 아내로 맞이 하기 위해...
누구의 조언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업체의 얘기만 믿고,
베트남 결혼을 결심했다.
인천 공항까지 가기위해, 포항의 지사장님과 포항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김포공항까지 가야 했다.
어머님의 기대 반, 걱정 반 얼굴을 뒤로 하고,
여러 필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크기가 작은 국내선 비행기가 활주로 근처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트랩을 올라, 승무원의 미소 띤 친절한 안내로 내 좌석에 앉았다.
내 인생의 새로운 2막을 위해 떠나는 원정길의 시작이어서 인지,
마음은 기대와 걱정으로 복잡했지만, 다른 한편의 마음에서는 알수 없는
어떤 새로운 기운-희망이 번져 나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앞으로 진행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엄청난 힘으로 달리기 시작하여
서서히 하늘로 뜨기 시작했다.
점점 높아지는 비행기의 둥근 창 아래를 내려다 보며,
공항에서 가까운 어머님의 집을 찾기 위해, 어머님의 모습이 혹시 보일 까 해서...
마치 소인국 나라처럼 작게 보이는 동네 이곳 저곳을 내려다 보며 찾았다.
어머니의 모습도, 어머니 집도 확인 못한 채,
비행기는 더 높이 서울을 향해 날아갔다.
비행기는 역시 빨랐다.
크지 않는 우리나라의 산과 들과 마을 그리고 도시들을,
조그맣게 시야에 담아 주고는 사라지게 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서울에 도착할거란 방송이 흘렀다.
그런데, 그 때 나의 눈에 들어오는 곳- 인천 영종도를 보고 가슴이 멎는 듯 했다.
그 곳은 언젠가, 인천 공항건설을 착공할 때 쯤에,
사귀던 그녀와 여행 중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함께 갔던 곳이었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그녀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가,
다른 여자-베트남처자와 결혼하기위해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시었다,
김포공항에 내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시원하게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
말로 만, TV 화면에서만 보았던 세계적인 공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멋진 모습의 건물, 넓은 실내공간 등...
인간의 능력에 가끔 놀라는 것 중에 하나 임에는 틀림 없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지사장과 서울 본사 사장님과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
본사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출국을 위한 여러 절차를 거쳐 출국게이트를 지나
손에 금속 탐지기를 쥔 사람들이 있는 곳을 또한 통과하여,
힘을 많이 들어 준 고마운 두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고 가다,
눈 앞에 나타난 여러가지 물건들을 파는 화려한 면세점들의 행렬에 감탄했다.
면세라, 가격도 싸고 온갖 멋진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눈으로 왔다 갔다 구경만 했다.
나의 짝이 될 베트남 처녀가 무엇을 좋아 할런지 알수도 없었기에...
가이드도 없이(본사 사장은 공항에서 바로 돌아갔고, 포항의 지사장도 인천공항
까지만 바래 다 주고 돌아 갔다) 떠난, 혼자의 먼 나라 여행을 시작한 나의 마음은,
서서히 긴장과 약간의 불안을 넘어, 점 점 커지는 설레임과 기대로 부풀었다.
탑승시간이 되어, 지정된 게이트로 가서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도 있었지만) 사이에 서서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차례를 기다려 마침 내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국내선 비행기보다는 훨씬 큰 비행기...
어딜 가나 창가에 앉는 걸 좋아해서, 창가 좌석을 부탁하여 배정받아 앉게 되었다.
내가 키가 커서 인지는 몰라도,
멀리, 외국까지 가는 비행기의 좌석이 좁은게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물론, 비지니스칸은 넓게 해 놓았지만, 다수의 승객은 몇 안되는 그 넓은
좌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항공회사는 헤아려 생각해 볼까?
여하튼, 시간이 되어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가 태어나 여지 껏 살아온,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둥근 세 바퀴가 땅을 박차고 이륙하면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둠아래, 새마을 운동으로 일궈 낸,
물직적 부의 상징같은 큰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뒤로 한 채...
비행기는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음을
앞에 설치한 화면에 가끔 씩 숫자로 아르켜 주었다.
창 밖으로 뭔가를 보려했던 생각은 빗나갔다. 밤이어서 온통 검었다.
5시간의 비행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어딜 왔다 갔다 할 데도 없이,
가만 앉아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나누어 준 헤드폰을 끼고 클래식 음악 채널에 맞 쳐,
볼륨을 크게 하여 계속 듣고 있는 것이 그래도 제일 나았다.
앞의 화면에 상영되는 영화도 시시했고,
잠도 안 오고 엔진 소리만 소음으로 계속되니...
의자를 뒤로 젖히고 싶었으나 뒷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러지도 못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소꼽 장난 때 쓸 것 같은 조그만 용기에 포장된 음식이 기내식으로 나왔다
(지금도 나는 기내식사 음식을 왜 그렇게 밖에 만들지 못 하는지 궁금하다.
무척 맛나고 특별 할거라 짐작했는데, 맛 없고 속이 거북했다.
차라리 햄버거나 빵 하나에 우유 한 통 주는 것이 나을것 같았다).
그러나 음식은 묘한 힘을 가졌다.
어떤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다, 음식이 몸 안에 들어가면
몸에도 변화가 오듯이, 정신적으로도 지루함을 깨고,
연극의 2막을 시작 하는 것 같은 새 기운과 함께,
시간을 깨트려 남은 시간을 당겨주는 힘이 있다.
어쨌든, 내 인생의 큰 행사를 위해, 그까짓 지루함과 고통은 큰 것은 아니었다.
날고 날아 드디어, 서울과 같은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넓게 자리한 불빛들이, 초여름의 이국적 내음을 풍기며 반짝이는
호치민의 야경이 내려다 보였다.
"아...이 곳이 바로, 베트남 이구나...“
어릴 적 많이도, '대한 늬우스' 에서 보던 월남... 베트남
마치 정겨운 소도시 밤 풍경 같은 비행기 아래를 창 밖으로 내려다 보며,
비행기는 서서히 착륙하여 한참을 버스처럼 낮은 속도로 달리더니 멈쳤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짐을 챙겨 무사히 태워다 준 비행기에서 내렸다. 인천 국제공항 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규모가 작은 호치민의 `턴슨 넛`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 통로를 따라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개의 심사대 앞에 줄을 서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련 덜된 녹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구형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사람씩 서류를 검사하고 이상이 없으면 통과 시켰다. 작은 체구와 굳은 표정은, 베트남이 가난한 공산국가란 사실을 상기 시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의 손놀림은 더디고 세련되지 않았다. 제일 사람이 적은 줄에 운 좋게 서게 되었지만, 하필 그 줄의 검퓨터가 고장이 나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통과 하여 입국 게이트로 갈수 있었다. 가방검사를 하고, 밖이 보이는 출구 쪽을 보니, 입국자를 맞이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사람, 목이 빠져라,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 등... 적당하게 더운 열기의 이국적 밤 공기와 경치를 느끼며, 나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찾았다. 여러번 두리번 거림 끝에, 한 쪽에서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진정으로 환영하는 듯한 미소를 띤 베트남 여자와 한국인을 발견했다. 나도, 마치 오래 헤어졌다 만나는 사람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그 쪽을 향했다. 현지에서, 나의 결혼을 위해 도와 줄 사람 들이었다.
여자는 키가 작았지만, 20대의 앳된 모습과 지적 느낌의 눈빛속에 다정함을 느끼게 했고, 남자는 중년 나이에 살이 좀 쪘었다. 서로 인사하고 준비된 차량에 다 함께 타고 숙소로 향했다.
그곳 시간으로는 밤11시(한국시간은 새벽1시)가 많이 넘은 시간에 호치민 시가지를 창 밖으로 바라보며 피로도 잊은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곳 저 곳을 살폈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주택가 골목 중간 쯤에, 전면은 좁고 길이가 긴(그 곳 건물은 거의 그랬다)3층 건물이 숙소였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2층 방 하나에 안내를 받았다. 허름한 옷장과 장식장, 그리고... 메트가 얇은 나무 침대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사용한지 오래된 듯 한 에어컨이 있었다. 복도 옆의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씻고 잠을 청했다. 긴 여정의 피로를 씻기 위해...
한국에서는 늦잠을 자는 편인데 잘 자고 일찍 잠이 깨어, 칫솔질과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아래 층으로 식사를 하러 내려 오라 해서, 가 보니... 어젯 밤에 보지 못했던 그 곳 아가씨들이 여러 명, 다정한 미소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큰 식탁에 다 같이 둘러 앉아 맛있게 요리한 음식들을 배부르게 먹으며, 지사장과 얘기를 나누며 오늘 일정을 들었다. 아가씨들(신부들)은 처음 본 외국인인 나를 조금도 거리감 없이, 마치, 오래전 부터 잘 아는 사람처럼, 순박한 마음과 맑은 모습으로 대해 주었다. 식사 후에 소파에 앉아 있으니, 한 아가씨가 냉 커피를 갖다 주어 마셔보니, 그 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훌륭한 맛이었다. (세계 3대 커피 생산국 이며 냉커피를 하루에도 여러 잔 마시는 것이 생활화 된 것 같음). 그리고 눈에 띄는 한 가지는, 벽에 걸린 벽시계 틈 새로 도마뱀 같은 하얀 파충류가 여러 마리 살고 있었는데, 나쁜 해충을 잡아먹는 좋은 동물로 여겨, 사람들과 함께 생활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어, 양복으로 갈아 입고, 드디어 그 토록 기대하던 베트남 신부를 선택하기 위한 장소로 향했다. 규모가 제법 큰 식당 위로 올라가니, 중간에 긴 탁자가 놓인 방으로 안내했다. 한쪽 방향에는 나와 지사장, 그리고, 통역을 맡을 베트남 여성 (그녀는 공항에 마중 나왔던, 지사장과 함께 일하는 현지 마담)... 세 명이 앉고, 맞은편 긴 좌석에는 10명 정도 씩 신부 후보들이 들어와 앉도록 준비 되어 있었다. 80명의 아가씨가 왔다고 해서, 어떻게 그 중 한명을 잘 고를수 있을까...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억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안은 적당한 밝기의 전등이 비추고 있었다. 지사장은 한 팀에 한 두명...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고르고 나서, 나중에 다시 그 중에서 몇 명을 고르고, 마지막에 한명을 선택하라고 요령을 말해 주었다. 잠시 후, 열 명 정도의 아가씨들이 한 사람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들어오면서, 나에게 순박한 심성 그대로의 정이 묻어나는 미소 띤 앳된 얼굴로 고개를 조금 숙이며 인사를 보냈다. 그녀들이 어떤 사연으로 어떤 마음으로 머나 먼 이국 만리로 물설고 낯설은 곳의 사람과 결혼하여 떠나려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떠나, 나의 눈 앞에 마주하여 앉아 있는 그녀들은, 예쁜 얼굴 못난 얼굴들... 모두 그대로 하나의 때 묻지 않은, 가녀리면서도 삶에 지지 않는 옛 우리네 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상담할 때 보았던 예술적 기법으로 찍은 그곳 아가씨들의 사진 (물론 예쁜 아가씨를 골라 프로필에 올렸겠지만)을 보고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눈에 선 뜻 들어오는 상대가 없었다. 두 팀, 세 팀이 들어오면서... 나는 괜히 온 것이 아닌가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멀리 와서 그냥 갈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 일단 한 팀에 한 두명씩 대충 선택했다. 물론 통역을 통해, 나이나 가족사항 같은 간단한 질문도 하면서... 그러다 거의 마지막 줄 쯤에 들어오는 아가씨 한명에 눈길이 갔다.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날씬한 체격에...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편하게 받아 들일 것 같은,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쉽게 버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 순박한 느낌을 주는 아가씨 였다. 여하튼, 그 아가씨를 포함해 선택한 여러 명의 아가씨 중에, 마지막 세 명이 남았을 때, 나는 주저없이 지금의 와이프인 그 아가씨를 선택했다.
지금도 나는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삶이란, 운명이란... 한 순간의 무서운 것인 것 같다.
평생의 동반자가 될 상대 아가씨와 제대로 대화도 한번 안 해 보고, 부모형제의 얼굴도 모르고, 혈액형도 취미도,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눈으로 보고 선택했다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예전, 한국은 얼굴도 모르고 중매를 통해, 만나서 살아도, 잘들 살았듯이...남녀가 많이 만나 사귀어 본다고, 상대를 제대로 판단 할수 있는 것도 아니며, 베트남의 시골처녀들 대부분, 정체성은 별 차이가 없는, 순박하고 부지런하기에...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치루는 맞선과 결혼식을 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결혼한 한국신랑들이 대게 별 문제없이 잘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열악한 현실의 두 국가간의 결혼행사 과정에 느껴지는 아쉬움을 달래야 하며, 이나마 좋은 베트남 처녀를 아내로 맞이 할수 있는 현실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먼 길을 불편한 도로와 차량으로 와서 어려운 집안을 위해, 자신 한 몸... 머나 먼 이국땅으로, 모든 정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려 했던 (물론 그녀들은 남편과 열심히 살려는 마음도 못지않게 큼) 순결한 희생의 마음담은. 선택 받지 못한 아가씨들은 또 얼마나 마음 아프고 실망 했겠는가...? (그녀들 대부분은 중간에 예비신부 모집을 하는 사람의 숙소에서 불편한 숙식을 하며 대기한다고 나중에 들었다) 조금은 검은 피부, 안 검은 얼굴, 키가 작은, 키가 큰, 못난 얼굴, 안 못난 얼굴... 그러나 따뜻하게, 자기를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소망의 마음 함께 담아 미소하던 그녀들은 어디론가 다 가 버리고, 들떠 있는 미래의 나의 신부만이 남아, 지사장과 여직원 셋이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남자, 그 것도... 나이 많고 머나 먼 이국에서 온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그녀들은 자신이 선택되어 한국으로 시집가길 바라는 것일까...?
예전에 우리 나라에서도, 지금의 베트남처럼 가난한 시절 때, 우리 처녀들 중에는, 미국이나 일본으로 시집 가는것이 자신이나 집안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듯이, 대체로 자식을 많이 낳는 그 곳(베트남)은 한사람 쯤, 집안을 위해 좋은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나라에 시집가서, 낙후되고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 자신도 새로운 세계에 갈 수 있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집안 살림에도 도움이 될 거란 기대로 그러 하리라 짐작해본다.
어린 나이에, 머나 먼 외국으로 시집가려는 그녀들의 마음은 당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심청이같은 곱고 착한 마음을 가졌다 아니 할수가 없다. 더구나, 그녀들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생김새가 다르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많은 나이 차는 그 곳에선 자연스럽게 여긴다 함)남자를 조금도 거리감이나 이질감을 갖지 않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남편으로 받아들여 함께 열심히 살아 가려는 마음까지 있다고 하니, 가히 최고의 신부감이 아닐까 기대가 되었다. 사랑은 모든 분야에서, 종교에서는 더더욱... 최고의 미덕과 가치임을 말하고 있고, 또 한 사랑 중에 최고는 희생이라 본다. 그 최고의 사랑을 아는, 몸소 실천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를 아내로 맞이 할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며 축복이리라....
내가 선택한 그녀와 두 사람의 얘기가 끝나, 함께 식사하러 갔다. 호치민은 참으로 멋지고 정겨운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넓은 시가지 한 복판에 두 줄로 서 있는 아주 큰 나무들의 행렬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랫부분은 하얀 칠을(교통 안전상, 혹은 벌레를 막기 위한 약품?))한 나무들의 자연스런 모습과, 시내에 군데 군데 자리한 큰 절에서 피워 놓은, 그윽한 향내가 온 도시를 감 싸고 있는 것 같았다.
물결을 이루는 오토바이들- 뒤에 아이와 아내를 태우고 가는 사람들, 베트남을 가장 잘 대변하는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가는 아가씨들, 연인인 듯한 다정한 모습의 여자를 태우고 가는 사람들.... 무슨 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욕심이 만드는 근심과 그늘이 없는,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할줄 아는 겸손의 평안이 있었다.
지사장이, 예비신부와 다 함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식사를 하러 간 곳은, 도심의 큰 도로변의 낡은 4층 건물에 있는 베트남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실내는 그냥 평범했지만, 특유의 향과 맛이 나는, 처음 보는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옆에 앉은 나의 예비신부가 젖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내 입에 먹여주는 다정한 마음씨에, 나의 선택에 대한 안도감과 자신감... 그리고, 그녀가 더 이뻐 보이고, 맘에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로 한국 영사관으로 가서, 서류수속을 하고 병원에 가서, 정신이 온전한가(그냥 얼굴의 눈동자가 제대로 붙어 있는가만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 그리고, 에이즈 검사를 하는데... 여자 의사가 바지를(팬티도)내려 보라고 하고선, 그 곳을 쳐다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혹시 게이가 아닌 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그 곳 의사들은 정말 대단한 실력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건강확인을 할수 있다니... (나중에 지사장이 얼마의 지폐를 뇌물로 바구니에 넣는 것을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를 하고 어느 호텔 라운지로 가서, 고향에서 올라 오신, 장모님이 될 그녀의 어머니와 고모님을 뵙게 되었다. 그 곳에선, 결혼 연령(18세)이 되어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혹시,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시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지만, 옆에 앉은 그녀(예비 신부)가 정말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국에 가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상기된 얼굴로 나를 치켜 세워 주었고, 점괘를 보신다는 고모님이 나의 얼굴을 보시며, 맘에 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시고 장모님도 승락을 하셨다.
장모님과 고모님은 호치민에 살고 계시는 그녀의 삼촌댁으로 가시고, 그녀와 나는, 지사장이 미리 준비해 둔, 호텔의 3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 가라고 했다. (지사장과 마담은 내일 오겠다고 말하고, 함께 가 버렸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정해 준 방으로 갔다. (우리나라 여관 정도의 시설과 규모의 객실이었다) 침대와 작은 옷장과 화장대 하나, TV와 작은 냉장고...그리고 목욕탕이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나, 그녀와 함께 호텔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갑자기, 내가 누구와 어디에 왔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머리속이 혼란 스러웠다. TV를 켜니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어, 한류란 말이 실감났다.
예비 신부는 호텔 객실의 시설이 신기하고 좋은지, 두리 번 거리며 들 떠 있었다. 샤워를 할 때도 더운물이 나오는지도 몰라서 찬물로 그냥 하는 것 같았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건만, 신부는 자신과 함께 오래 산 남편에게 하듯 옷도 챙겨 옷장에 정리해 걸고, 어지럽게 내 놓은 가방안의 물건들도 하나 하나 제 장소에 갖다 놓는 등... 오늘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성을 다 해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대해 주었다. 내일 결혼식을 한다고 했는데, 식도 올리기 전에 이렇게 먼저 같이 잠부터 자게 되었으니... 만리장성을 쌓아도 괜찮은 건지, 아님... 그냥, 손만 잡고 자라는 건지... 아무런 말도 없이, 호텔방으로 들여 놓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정식 부부가 될 결혼식도 올리는데, 오늘 만리장성을 쌓는다 한들, 어떻겠나? 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듯 했다. 남자 여자, 단 둘이서 호텔방에 있다는 야릇하고 색채 요란할 상황인데도, 몸과 마음은 왠지 그런 욕구를 원하지 않았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혼자 내 인생길을 걷기도 달리기도 넘어지기도, 때론 낭떠러지에 떨어 져, 긴 시간의 시련도 있었던 지난 세월...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하늘이 정해 준, 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 갑작스럽게, 짧은 시간 동안에 이루어 지고 있는 엄청난 일들의 현실... 먼 나라에 날아 가, 안 그래도 여러 큰일 앞에서, 멍~ 한 머리 속이... 더욱 정리가 안 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작은 냉장고 안에서 깡통 맥주를 하나 꺼내어 마셨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두 남녀가 호텔방 안에서 나눌 대화는 크게 없었다.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을 뿐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만 자기로 결정하고 침대에 누웠다. 중년의 중국인 남자와 처음 육체적 사랑을 나눈 곳이, 베트남의 어느 시장가 주택 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내가 신부와 함께 누워 있는 이곳, 가까운 곳에도 시장이 있는 걸 보았다. 젊고 참한 처녀가 내 옆에 누워 있다는 것은,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가 아니드래도, 성적 욕망의 의지가, 자제를 추월함이 당연 할 것인데... 이상하게, 그런 욕망의 불길이 피어 오르지 않았다. 예전, 우리네 처녀같이... 성적인 것들을 거의 접해 보지 않은 까닭에, 핑크빛 색채를 풍길 줄을 몰라(베트남 여성은 순박하고 다른 즐길 여유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서, 처음엔 성적으로 맹숭해 보이지만,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엄청난 열정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여성들이다) 분위기가 그냥 밍숭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나의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복잡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일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어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한 몸이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내 몸은... 커텐 사이로 비집고 들어 오는, 이국의 포근한 밤 공기를 따라 온 잠의 여신 품을 선택했다.
다음 날 아침 잠이 깨어보니, 신부는 벌써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방도 깨끗히 청소하고, 내가 잠에서 깨어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조금 있으니, 호텔 조식이 왔다. 길게 생긴 프랑스 빵과 음료를 갖고 왔는데, 맛이 없었지만 억지로 먹었다. 아직은, 혼자 음식을 어디서 어떻게 사 먹어야 하는지 몰랐기에.... 식사가 끝나고 조금 있으니, 지사장과 마담이 왔다. 오늘, 결혼식이 있기에, 준비를 위해 나는 지사장을 따라 나섰고, 예비 신부는 마담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지사장이 데리고 간 곳은, 숙소 주변의 미장원 이었다. 의자에 앉으니, 의자를 뒤로 눕히고, 얼굴 마사지를 했다. 허름한...우리의 60년대 쯤의 모습을 한 그 곳에서 받은 얼굴 마사지의 효과는, 끝나고, 거울을 보았을 때... 별로 였다. 어쨌든, 준비해 간 여름 양복을 입고, 마사지까지 받은 얼굴을 앞 세우고, 결혼식장을 향해 차를 타고 달려 갔다 .
여러명의 예비 신랑들과 같이 왔다면, 서로 어울려 얘기도 하고, 마음을 주고 받으며 긴장되고 복잡한 마음을 덜 수 있을텐데, 달랑 혼자 와서, 혼자 맞선 보고, 결혼식도 혼자 하게 되었으니... 하객도 신부측 집안 사람들만 올 것이고, 신랑측의 사람은 당연히 없을테니, 결혼식이 무사히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결혼식장으로 준비된 큰 식당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 건물 넓은 홀 안의 많은 테이블 위에 음식과 술 등을 차려놓고, 앞에는 단상이 있었으며, 이미 신부측 친척 분들이 도착하여, 테이블마다 둘러 앉아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반겨 주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 앞에...그것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혼자 마주 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평생 혼자 살고저 했던 내가, 결혼식을 올린다는 사실 자체도 낯설고... 그러나, 남자로써 약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기에, 차분히 대처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친척 분들과 미소로 인사하고... 술을 권하면, 받아 조금 씩 마셨다. 신부의 부모님, 오빠들과 동생들과, 삼촌, 이모, 고모... 누가 누구인지 처음엔 어리버리 헤메다, 차츰 그들의 다정한 모습에 긴장이 조금 풀어지긴 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힘을 준 것은 신부였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부 화장을 한 그녀는, 어제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엄청 예쁘고 아름다운 자태였다. 순진한 나의 신부는, 처음 입어보는 천사같은(날개만 없지)흰 웨딩드레스와 하얀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역시 길고 얇은 하얀 망사장갑을 낀 손으로 잡고 있는 예쁜 꽃다발과 함께... 스스로 아름다움에 취하고, 행복에 겨워 들 뜬 모습으로, 미래의 남편인 나에게, 마치 옛 고추친구 두 사람이 투명한 가슴을 하나로 하여 대하 듯... 수 십년을 함께 산 부부처럼, 너무나 진실되고 순박한 모습과 마음으로 혼자인 나를 배려하고 지켜 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나의 신부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하얀 빛깔의 신비롭고 맑은...하늘로 날아 오르려는 흰새 같이, 행복을 향해 나래짓 하며 예식장을 오고 가던 그 순수한 모습...
그 모습을 생각하면, 결코 실망 시켜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하곤 한다. 지금 돌이 켜 기억해 봐도, 생애 처음의 결혼식을 올리면서, 뚜렷히 떠 오르는 장면은 몇 되지 않는다. 그 만큼, 내가 긴장하고 여유롭지 못 했음을 증명한다.
여러 신부측 하객들이 뭐라고 축하해 주며 건네는 술잔을 받아 조금씩 마신 기억... 처남들 중 가장 노래 실력이 좋다는, 둘째 오빠가 마이크를 잡고 내용 모를 노래를 진지하게 부른 기억... 첨엔 하얀 드레스를 입었던 신부가 어디로 가더니, 빨간 드레스로 다시 갈아 입고 와서,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토끼처럼 식장을 오고 가던 기억... 그리고, 사진사의 지시대로 이런 저런 자세와 표정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던 것... 어쨌든, 결혼식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느낌대신... 옅은 안개 속에 초점 흐린 거리를 헤메듯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 가끔,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쉬움이 든다. 신부의 가족과 친척들은 진정 축하해 주기 위해, 그 먼길을 달려와서 나와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왠지 주눅이 들어 생애 단 한번의 소중한 경험을 너무나 허술히 했다는 것... 어제 만나, 오늘 결혼식을 거행한다는 시간적 불충분도 있었지만 신부와의 많은 나이 차이 때문에도(비록 하객들이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도둑넘이란 소릴 듣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우리처럼 전통 혼례식도 있지만, 그렇게 결혼식장에서 음식과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함께 축하하고 즐기는 풍습이었다. 결혼식장 앞에서, 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하객들에게 말은 못했지만, 신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손 짓과 몸 짓, 그리고 얼굴 표정으로 돌아가시는 그 분들에게 일일이 안녕의 인사를 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지사장과 마담, 그리고 신부와 넷이서 호치민 시내의 이곳 저곳을 관광했다. 백화점에 들러서 신부의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물로 사주기도 하고, 호치민에서 제일 높은 건물 스카이 라운지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는 사진도 찍었다. 함께 다니면서, 조금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고, 말은 안 통해도 서로 바라보는 표정으로 신부와의 신뢰와 정이 더 해져 갔다. 저녁식사는, 지사장의 배려로, 시내 중심가의 한국음식이 나오는 식당에 가서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마음 속으로는, 먹어보지 못한 베트남의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가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때 그 지사장과 젊은 아가씨 마담이 생각난다. 두 사람은 지사장과 직원관계에서 발전해 부부처럼 된 것 같았다. 법적 부부는 아니었으나, 함께 자고 함께 일하는... 20대 중반을 넘은 조그마한 그 마담은, 베트남 최고의 대학을 졸업해서 인지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얼굴은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으나, 지적 능력이 엿 보이는 재원이었다. 아직도 어린 그녀가, 외국의 중년 남자와 부부가 되어, 앞장 서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연민과 함께 묘한 정감을 주었다. 지금도, 멀리서 온 나를 위해 (비록 금전적 목적 때문이었겠지만) 애써 준 것에 대한 인간적인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숙소에서 대기하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신부 들에게 그리 잘 대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여러 신부들을 관리하다 보면, 그럴수도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어쨌든, 처가 지참금까지 중간에서 빼돌린 그녀가, 한편으론 괘씸하지만, 머나먼 그 곳에서 나의 평생 반려자를 찾는데, 여러모로 함께 애써준 마음이 고마워 가끔 보고 싶고, 그녀의 앞날이 행복했으면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마담이 자주 간다는, 가수가 키타치며 직접 노래하는 한 작은 레스토랑에, 다 같이 가서 커피와 함께 그곳의 음악을 감상했다. 그곳을 나와, 지사장과 마담은 신부와 나를 호텔에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윗 층으로 올라가면서, 신부는 몇 번째나 타면서도 신기해 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 대충 손발을 씻고 침대에 걸터 앉아, TV를 켜니 한국의 지나간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드라마의 장면에서 비치는 호화스런 주택의 거실과, 좋은 옷을 입은 잘 생긴 젊은 연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예전에 우리가 미국같은 선진국의 드라마를 보며 그랬던 것 처럼, 얼마나 한국을 동경하고 모두 들 잘 산다고(경제적으로) 생각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신부가 한국에 와서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시간도 아직 이른 저녁 때이었고, 넓지 않은 호텔 방에서 그냥 TV만 쳐다 보고 있는 것도 갑갑해서... 처음으로 내 마음대로, 내 발로 주변 시가지를 한번 거닐어 보고 싶어 신부에게 함께 밖에 나가자고 했더니 찬성했다. 반 바지와 짧은 티셔츠 그리고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신부는 오늘 산, 몸에 꽉 붙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는데, 베트남 처녀들이 대개 그렇 듯, 날씬하고 보기 좋았다.
어느 정도의 어둠이 깔린 시가지를 나란히 걸었다. 그곳 최고의 명절인 구정을 앞 둔 탓인지, 구정맞이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가게 외의 상점은 거의 셔트가 내려져 있었고, 밝지 않은 가로등 불빛만이 쓸쓸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인도 안 쪽으로 걸을려고 하니, 신부는 이상하게 나를 인도 바깥 쪽- 차도 쪽으로 걸어가도록 애썼는데... 아마 호치민에도 나쁜 사람들이 있어, 외국인에게 어떤 위해를 가 할수 있어 그랬던 것 같다. 선물을 파는 가게들이 밝은 조명으로 군데 군데 자리했고, 넓은 도로에는, 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오트바이 행렬이 이어졌다. 넓은 거리의 로타리 가운데는, 프랑스 풍의 조각상이 멋있게 서 있었다. 그곳의 인상 깊은 곳 들이 많았지만, 그 중 빼 놓을수 없는 것이 길거리 카페이다. 인도 한 쪽에 작은 탁자 둘레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그만 의자들을 몇 개 놓아두고, 음료수나 커피를 얼음과 함께 유리컵에 넣어 파는 곳인데, 한국의 음료 만큼 맛은 없었지만(냉커피는 훌륭했다) 갈증 해소와 시가지를 바라보며 잠깐의 휴식을 가질수 있는 소박하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호텔 주변에 있는 안동시장 옆의, 한 거리카페에 신부와 함께 앉았다. 나는 환타 음료를 주문했고, 신부는 사이다와 같은 음료를 시켰다. 시가지를 떠나지 못한 약간의 밤 열기로 덥혀있던 몸이, 얼음에 의해 차가워진 음료수로, 일 순간 시원함을 느꼈다. 지금도 나는 베트남을 생각할 때 마다 떠 오르는 것은... 그 때, 신부와 함께 거리를 바라보며 음료수를 마실 때, 옆에 앉아 우리를 번갈아 쳐다 보며, 긴 혀를 헐떡이던 순진한 표정의 검고 큰 개이다. 내가 개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그 곳 사람들의 순박함을 개도 닮아서 인지, 옛날 우리네 토종개 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다시 그 곳에 간다면, 그 검은 개가 있는 길거리 카페에 꼭 찾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간직 했었다.
바깥 바람을 쐬고 호텔로 돌아왔다. TV를 켜고, 냉장고에서 깡통 맥주를 꺼내어 마셨다. 너무 빠르게 진행된 절차들에 의해 왠지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보기 위해... 그야 말로 첫날밤이 아닌가... 그러나, 머나 먼 이국으로 날아 와, 많은 처녀 중에서, 내가 선택한 신부와 다음 날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맞이하는 마음은 솔직히... 조금의 혼란과 촛점이 맞지 않는 돋보기처럼 선명한 느낌이 아니었다. 신부는. 혹시나 하는 염려(내가 다시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때문에, 첫날밤을 가지는 것을 피하는 것 같았으나, 마담이 미리 설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뭔가 나의 신부라는 징표를 해두고 싶었다. 마신 술의 기운이 오르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고 21년 간을 간직해 온 신부의 성스런 몸과 하나가 되고픈 욕망이 번졌다. 아직...성이 뭔지, 남자가 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은 신부에게, 멋진 첫날밤을 기대하진 않았지만...역시 그랬다... 수줍어 하거나, 내숭을 부리거나 하는, 불 필요한 모습 없이... 그냥...자연스럽게, 오랫 동안 간직했던 몸을 내게 맡길 뿐이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동네 누나의 몸에서 맡을수 있었던, 풀 꽃 같은 내음을 풍기는 신부를 안으면서... 인간이 서로 가장 가까울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선물이란 생각을 했다.
순진한 신부는, 아침에 일어 나...내가 자신의 진정한 배우자임을 확인한 듯, 어제 보다 더 깊은 정성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 카페의 메콩 델타 투어 티켓을 구입하여, 큰 버스로, 여러 나라 여행객들과 함께 향했다. 필리핀인 것 같은 가이드의 묘한 발음 영어안내를 들으며, 호치민 시를 서서히 벗어나니, 녹색의 물결의 시골풍경이 펼쳐졌다. 70퍼센트가 산악 지대인 우리 나라와 달리, 그 곳은 산이 거의 없었다. (중부와 북쪽에는 산이 꽤 있지만...) 끝 없이 펼쳐진 연두 빛 논 저 끝에, 높지 않은 산 하나가 겨우 보였다. 연한 녹색 빛 논과, 야자나무와 바나나 나무, 파인애플 나무들이 진한 녹색으로 조화를 이루며,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맘껏 펼쳐 보여 주었다. 그 넓은 평야를 바라 보면서, 나도 모르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내가 어릴 때, 우리 고향이 지금 처럼 복잡하고 오염되지 않았을 때, 외곽지 논과 들판을 노닐던 그 때의 그리운 모습이 그대로 떠 올랐다. 수 십년은 된 듯한 낡은 집들의 모습은, 실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으로 돌아가 마주하는 듯 한, 강한 환상에 사로 잡히게 했다. 나무와 야자수 잎으로 만든 퇴색한 집들과, 소박한 차림새를 한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바라 보노라니, 섬짓 섬짓... 이상한 두려움(?)마저 들었다. 만약, 정말 누군가가 몇 십년 전의 어린시절로 돌아 가, 그 때 그대로의 상황 앞에 서 있게 된다면, 과연 어떤 감정상태가 될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은, 지나간 시절, 특히 순수했던 어린시절이 그리워진다. 무한한 앞 날이 아닌, 삶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지나간 것 들이 아쉬움으로 남고, 삶에 처음 입문한 초기 시절의 맑고 아름다웠던 추억들에 그리움과 깊은 애착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그리운 어린 시절 그 당시, 그대로의 무대 앞에 선다면, 무작정 기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 곳에서 본, 그 낡은 집들은... 주변모습과 함께, 내 어린시절 때, 많이 보았던 집들과 분위기가 너무 흡사하여, 어둑한 그 집안으로 들어가면 어릴 때의 모든 것 들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 그러나 두려움같은 기분이 함께 한 것은 왜 일까? 삶은... 한번 맛보고 경험한 것 들, 지나간 것에는 다시 임하는 것을 싫어하고, 앞으로 향하여 계속 발전하고 어디론가 가야하는 인간운명 탓 때문에...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눈물이 날 만큼 가슴 찡한 정경들을 바라보며 많은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집들은 불륵으로 지은 집인데, 그 파스텔 풍의 색깔과 , 집과 문과 창문의 형태들이,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책에 나올 법한 그런 느낌을 주어서, 그 또한 이상하게 이국적 이면서 신비한 세계로 이끄는 듯 했다. 내부에 별 다른 집안 가재들이 없을 것 인데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 신비한 사막 나라의 한 가운데로 떨어질 것 같은 묘한..... 버스는, 수 많은 오토바이들과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러 저리 잘도 피해, 아무런 사고없이 메콩강 입구에 도착했다.
강은 넓고 시원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여러 생각과 긴장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답답했던 마음을, 일 순간 자유로운 마음으로 해방시켜 주는 듯 했다. 여러나라를 거쳐 이어져 흐르는 메콩강은, 인간사에 초연해 하며, 유유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했다. 황토와 섞여, 맑은 빛깔은 아니었지만, 결코 오염된 물이 아닌, 그냥 떠서 잠시 재웠다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라 했다. 넓은 강 양쪽으론 야자와 열대나무들이 초록빛을 더하며 무성하게 끝 없이 이어져 있었고, 배를 집삼아 생활하는 사람들을 태운 낡은 배들이 군데 군데 자리했다. 도대체 베트남은 왜 그리 사람 마음을 아프도록 설레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메콩강으로 오면서도, 펼쳐지는 풍경들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마음이 찡... 했는데, 메콩강의 모습은 더 더욱 성능 좋은 타임머신으로 나를 태워, 내 깊은 가슴속의 그리운 기억들을 다시 볼수 있게 해 주다니... 제법 큰 배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물쌀을 가르며 차분히 앞으로 나아 갔다. 거대한 강을 향해 앞으로 조금 씩, 마치 현재를 넘어 먼 과거로 찾아 가는 듯, 엄숙함이 함께 했다. 이곳 저곳... 몇 곳을 항해 하다, 어느 선착장에 도착하여 작은배로 갈아 탔다. 정글 사이의 작은 강줄기를 따라 가기 위해서 였다. 마치 영화 '람보'의 무대를 연상 시키는, 밀림 사이를 능숙하게 배는 안 쪽으로 미끌어져 갔다. 그리고,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해 내렸는데, 그 곳은 바나나로 사탕을 만드는 작업 과정을 직접 보여 주며, 손으로 만든 수공예 품과 함께 팔고 있었다. 사탕도 맛 있었지만, 수공예 품의 수준은 대단했다. 다시, 배를 타고 더 안으로 들어가, 역시 조그만 마을에서 내렸는데, 그 곳 주민들은 열대과일을 대접하며, 여자 한 명이 노래하고, 몇 사람의 남자가 전통악기로 연주해 들려주는 음악은 매력적이었다.
난, 잠시 혼자 그 곳 마을을 한 바퀴 구경하고 싶어, 마을 안 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 갔는데, 어느 집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 보고 있을 때, 한 어린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웃으며 자기 집으로 따라 오라고 했다 야자잎으로 만든 집 안에는, 엄마인 듯한 여인이 마루에 앉아 있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옆에 있었다. 나는, 키가 커서, 가끔 좀 싱겁고 사람을 웃기는 버릇이 있기에, 그 집 안으로 들어 가면서, 신부에게 배운 “씬짜우”(안녕 하세요)하고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막 웃었다. 마루 한 쪽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더니, 쟁반에 과일을 담아 와서 먹으라고 했다. 처음 보는 열대 과일이었지만, 맛있게 보여 하나를 집어 얼른 씹었는데, 그 맛이 정말 엄청 시었다. 온통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그들은 막 웃었다, 일부러 외국인인 나에게 장난으로 그랬다는 짐작이 들어, 그들의 악의없는 마음과 하나 되어, 대화는 안 되었지만 싱겁을 떨고 있으니, 저 쪽에서 신부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엠어이~” 하고, 손을 흔드니... 신부도 마을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웃었다. 순박한 그 가족과 헤어져, 다시 관광객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무성한 열대나무 사이에, 야자잎으로 지은 시원한 집 들, 그리고 욕심없이 자연과 운명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메콩강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먼 옛 추억의 앨범 속 사진처럼 가끔 씩 그리운 손짓을 한다.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경제적 수준이 높고 낮든, 교육을 얼마나 받았든... 그러한 것은 인간이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인생이 가치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과는 별 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다는 것은, 결국 한 개체가 스스로 자신이 놓인 세계에서, 그 세계와 자연스레 교감하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통해 자아인지와 만족이 충만할 때 주어지는 가장 바탕의 느낌이 아닐 까 정의해 볼 때...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 되었다.
메콩델타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조그만 체구로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수고하는 마담에게 바나나 사탕 한 봉지를 선물로 주니 무척 고마워 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다시 보낸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러 숙소로 가니, 한국에서 온 예비신랑들이 4명이나 어젯 밤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몸으로 머나먼 이국에서 허전 했는데 무척 반가웠다. 경기도, 인천, 전라도... 각지에서 함께 베트남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온 그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며, 미리 경험한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30대가 한명, 나머진 40대 였는데, 재혼자도 2명이었다. 나 역시 적은 나이가 아니였지만, 한국에서 여러 이유로 결혼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20살 안팎의 순결하고 앳 된... 보석같은 영혼의 소유자를 그 곳 베트남에서 아내로 맞이하여, 한국으로 데려 와 영원히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하고 축복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물질적 풍요 속에, 우리들의 순수했던 영혼은 오염된 것 같은 한국의 현실에서, 예전의 우리네 순박했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녀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와서,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과, 참 된 여성-아내의 모습을 널리 알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4명의 예비신랑 중, 한 사람은 중국여성과 결혼 했는데, 아내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큰 돈만 날리고 다시 베트남으로 희망을 갖고 왔다고 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4명의 신랑 후보들은 맞선 장소로 함께 출발하였고. 신부와 나는 시내 명소를 관광하기 위해 다시 신 카페로 향했다. 역시, 특이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는 필리핀인 듯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여러 나라 여행객들과 함께 탄, 큰 버스 안에서, 넓은 창가를 스치는 시가지의 여러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호치민 시내의 여러 명소들을 보여 주었고, 대통령궁은 직접 걸어 들어 가 이 곳 저 곳을 볼수 있었는데, 역시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거처답게 웅장하고 화려했다. 전쟁 박물관이란 곳에도 갔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의 기록과 증거품 들을 보노라니, 전쟁의 참혹성과 비 인간적 행위의 끔찍함이 실감났다. 그리고, 어느 큰 절 앞에 내려, 안으로 들어 가 보니, 우리의 절과 달리, 그 곳은 주위에 넓고 높은 산과 나무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시내 속에 큰 건물로 자리 해 있었으며, 여러 채의 건물이 아닌 단일 건물이었고 내부 모습도 한국의 절과 달랐다. 기억에 남는 것은... 죽은 사람의 봉분을, 생전의 사진들과 함께 모셔 놓았는데, 삶과 죽음이 함께 자리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한기분이 들게 했다. 마지막에는... 구찌터널이란 곳을 갔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을 물러나게 했던 베트남 인들의 강인하고 비상한 머리를 실감케 했다. 한편으론, 오싹 할 만큼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 여러 살인 장치들과 묘하게 파 놓은 작은 터널들을 보고 감탄했다. 요금을 내고 실탄 사격을 할수 있는 장소에서, 나는 M16소총으로, 옆에서 구경하는 신부가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다. 베트남은 보면 볼수록 뭔 가, 그 느낌이 차갑거나 딱딱하지 않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그리움이 있는... 낯설지 않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는 좋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꿈같은 날들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 갈 시간이 되었다. 먼 나라로 날아와, 운명처럼 만나, 부부가 된 신부와 겨우 며칠을 함께 보내고 생이별 해야 하는 현실을 어쩌지 못했다. 신부는 옷가지와 여러 물건들을 하나 하나. 가방에 가지런히 정리하여 챙겨 주었다. 그곳에는 세탁기가 귀해서, 손으로 직접 빨래를 하는데, 한 번 입은 옷은 바로 빨아서 인지, 매일 나도 모르게 옷을 빨아 줄에 널어 놓는 등의 정성이 떠올라,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 뒤 늦은 감동과 고마움을, 맘 속으로 느꼈다. 지사장과 마담, 신부와 넷이서 공항으로 향했다. 원래, 감정 표현이 느린 탓 인지는 몰라도, 당장 마음이 아프거나 슬픈 느낌이 들지 않고 그냥 무덤덤 했다. 정리 안 된 복잡한 머리와, 적지 않은 큰 일들의 경험으로 인해, 아직도 뭔가...구름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헤어질 때, 울기도 한다는데, 나도... 신부도 별다른 표정을 들어내지 않았고, 공항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신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돌아서서 바로 건물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큰 생각과 마음들을 애써 억눌러, 다음을 기약하자는... 그리움과 아픔을 잠시 묻어 두려는 서로의 말없는 약속이었다.
출국수속을 거치고, 긴 시간을 기다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역시, 창가 좌석에 앉게 되어, 비행기가 이륙하여 서서히 밤하늘 위로 올라갈 때, 창 밖을 보니... 포근한 느낌의 긴 가로등과 집들의 평화롭고 다정한 불빛들이 나에게, 먼...그리움이 될 것 처럼 빛났다.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인지, 아님 사랑하는 나의 신부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불빛들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보석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운명처럼 날아 와, 짧은 시간에 영원한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렇게 이별의 밤하늘 비행기 안에서, 그 곳을 내려 다 보니... 애써 감춰 둔, 이별의 아픔이 서서히 번져났다. 그 때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신부의 여러 고맙고 따뜻한 정성들... 그 곳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들, 정겹고 고향같은 여러 장소들, 길거리 카페의 검은 개... 그 모든 모습들이 나에게 영원한 영상이 되려는 듯... 허전하고 아픈 마음속으로 들어 와, 깊은 곳 한 쪽을 자리 했다. 비행기는 그리움들을 뒤로 하고... 더 높이... 한국을 향해 날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보며, 그저 마주 보고 웃고, 눈짓 손짓으로
그곳은 TV도 빨리 끝났다.
전기를 끄니, 가까운 시가지의 불빛이, 벌어진 커텐 사이로 소음과 함께 들어왔다.
언젠가 본, '연인' 이란 프랑스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여자 주인공은 베트남 사람이 아닌, 프랑스의 소녀였지만...
|
좋은글 감사합니다..잘 읽고갑니다.~
음악과 어루러져서 그러는지 더욱더 님 글이 마음에 다가오네요.. 잘 읽고 갑니다.
사진도 수준급이고 글도 그렇고 프로냄새가 납니다 ^^
좋은글 즐감 함니다.
즐감 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화양연화...
이 말이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말이라고 들었는데...
이 글을 읽노라니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 였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좋은 글 고마워요 ~
참 멋진 글들이네요.ㄱㅅㄱㅅ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