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기 혁
애인을 들어 올린 마술사가 무대 위 장막을 걷는다
어떤 속임수도 없었으므로 여자의 몸은 공중을 공중으로 인정한다
조금 전 숟가락을 휘었던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애인을 솟구치게 할 수 없을까, 궁리 중이다
몸이 뜬다는 사건 앞에서, 영감(靈感)보다 나은 구석을 찾던 눈은 플래시를 터트리고
그림자를 지닌 모든 인과들이 프롤로그를 만든다
오버코트에서 떨어진 푸른 먼지, 화면 밖 붐맨*의 잘린 팔뚝, 미녀의 가슴께에 붙은 나방 한 마리
무엇보다 관객의 손뼉보다 더 많은 박수소리들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는 편견이었지만, 편견으로 내린 결론엔 오답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들뜬 일상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권태’와 ‘자연’ 사이를 오고갔을 뿐
천사를 보기 위해선, 기도보다 침묵이 필요하다는 오랜 논쟁으로부터
우리의 결론은 매번 천사가 받은 중력이 아니라 그녀가 날아든 이유를 향했으므로
반라의 애인을 받치고 있는 마술사의 사랑도 스캔들을 걷고 나면 천박한
밀회(密會)에 불과했으리라, 생각했다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편견을 바라보다 장막이 걷히지 않는 우주를 떠올릴 때
우리는 문득 지구인이 설계한 UFO에 올라탈 수 있다 휘어진 숟가락에 비친 얼굴로 사랑한다 말하던
외계인의 의인법(擬人法)을 이해할 수 있다 부유하는 의미를 붙들기 위해
지상에 없는 추문(醜聞)을 견뎌야 했던 별들은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 대신 공중과 공중을 연결하기도 했지만,
뜬구름을 겨냥한 사소한 대화에도 태양계의 사연들을 덧씌울 수 있었던 용기를 펼치면
우리의 조물주가 여전히 창조를 끝마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일요일 아침 9시, 기적 같은 프로그램들을 시청해온 가족의 예배시간
우리는 편성표에 적힌 글귀처럼 모두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TV에 손을 얹은 나와 내 이웃에게
우리의 자초지종은 모두 감추어둔 채
언제나 그렇듯이, 공중의 문제로 녹화를 중단해야 했던 그런 사정만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안테나를 세우고 서로의 간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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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나 방송 촬영에서 붐마이크를 담당하는 스태프.
—《시인세계》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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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 /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재학 중. 2010년 《시인세계》신인상 당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