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판을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나타난 것으로 17일 전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절실하게 요청했지만, 러시아 본토로의 확전을 우려한 미국이 공급을 계속 거부해왔던 '비장의 무기'다.
에이태큼스 장거리 미사일/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7일 "우크라이나가 처음으로 미국의 ATACMS 장거리 미사일을 실전에서 사용했다"며 "'러시아군 점령지역인 루간스크와 자포로제주(州) 베르댠스크 인근의 군사 기지에 야간 공격을 가해 러시아군 헬기 9대를 파괴했다'는 발표가 우크라이나군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이 공격으로 군 기지 내 특수 장비들과 방공 미사일 발사대, 탄약고, 비행기 활주로 등이 손상됐다고 우크라이나군은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이날 미사일 공격에 ATACMS를 동원했는지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ATACMS 미사일 사용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
러시아 종군 텔레그램 채널들이 ATACMS 미사일에 의한 공격이라며 베르단스크 군 기지로 날아온 로켓의 잔해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MGM-140A Block 1이라는 표시가 보이는데, 최대 사정거리 165㎞에 '카세트 탄두'(클러스터 탄두, 여러 개의 폭발물이 든 집속탄식 탄두/편집자)를 장착한 개량형 ATACMS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이 공개한 에이태큼스 미사일 잔해/사진출처:스트라나.ua
미사일 공격 이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한 일부 파트너들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미국의 주요 매체들도 ATACMS의 우크라이나 제공및 실전 사용을 확인했다.
주요 내용은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소수의 ATACMS 미사일에는 '카세트 탄두'가 장착되어 있고, 사거리는 165㎞로 제한을 뒀다(미 뉴욕 타임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의 여름 반격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 뒤, ATACMS의 우크라이나 이전을 결정했다(미 폴리티코)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의 주요 단계에서 장거리 공격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비밀리에 소수의 ATACMS 미사일을 지원받았다(미 월스트리트저널) 등이다.
미국이 이처럼 고심끝에 ATACMS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결정한 것은, 러시아군의 병력및 군사 장비 증강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러시아는 제 2의 바흐무트로 불리는 '아브디프카'(아우디우카)를 비롯해 거의 전 전선에서 공세로 전환할 태세다. 지난 여름철 우크라이나 반격에 대한 뒤집기 시도다.
조만간 위기 상황에 직면할 우크라이나군에게는 러시아의 병력 및 장비 증강을 저지할 장거리 공격이 필요한데,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인정하고, ATACMS 제공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스트라나.ua는 해석했다. 또 러시아가 지난 달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으로부터 컨테이너 1천개 분량의 탄약 등 무기를 추가로 확보함으로써 전선의 전력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ATACMS 제공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직접 소통하는 미군내 최고 지휘관인 합참의장이 최근 마크 밀리 장군에서 찰스 브라운 장군으로 바뀐 것도 미국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ATACMS 확보로 도네츠크주(州) 남부 마리우폴에서 드네프르 강의 남쪽 동안(東岸), 크림반도 북부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사정거리 안에 두게 됐다. 병력및 장비 운송에 사용될 이 범위내 교량과 도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공격하지 못했던 탄약및 무기고와 연료 창고, 군 비행장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가능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에이태큼스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 가능한 범위. 북쪽으로는 벨라루스, 남쪽으로는 크림반도까지 타격이 가능하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렇다면 ATACMS가 지금까지의 판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매체는 조금 부정적이다. 영국의 장거리 마사일 '스톰 섀도'와 프랑스의 '스칼프' 등이 그동안 전장에 투입됐지만, 최전선 상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ATACMS는 영국의 '스톰 섀도'에 비해 큰 이점을 갖고 있다. 공중에서 발사하는 공대지 미사일이 아니라, 지상 기반의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인 하이마스(HIMARS)에서 날아간다. 어디에서 날아올지 탐지하고, 파괴하기가 '스톰 섀도'보다 훨씬 어렵다. 또 빠르게 날아가오는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보다 격추하기 어렵다.
스트라나.ua는 "탄도미사일은 요격하기 매우 어렵지만, 러시아 첨단 방공 시스템으로는 요격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ATACMS 공격은 러시아 군대가 미리 대비하지 않았을 것으로, 앞으로 방공망이 강화되고, 대처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스톰 섀도'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자, 주요 군용기를 크림반도 남쪽으로 이동 배치했다. 또 '잔코이 기지'에 배치된 공격용 헬기들은 '스톰 섀도' 미사일 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즉각 이륙해 공격 위험이 사라진 뒤 다시 착륙하는 등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적응해 왔다.
가장 부정적인 요인은 ATACMS 미사일의 제공 대수다. 스트라나.ua는 "미국 측은 이전에 ATACMS 미사일의 수량이 제한적이어서,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곤 했다"며 "미국 언론들도 제한된 소량의 미사일 제공 사실을 전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공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사진출처:위키피디아
실제로 영국의 '스톰 섀도' 미사일도 공급 수량의 제한으로, 잦은 공격은 불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매일 발사하기는 커녕, 때로는 일주일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최전선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ATACMS의 제공 대수가 '스톰 새도'를 크게 능가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전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