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브랜드에는 엔트리 모델이 있다. 보통 엔트리 모델의 시승은 기대감이 높지 않다. 하지만 브랜드가 페라리라면 생각이 바뀐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엔트리라라는 포지션이 무색할 만큼 많은 걸 갖췄다.
포르토피노는 전작 캘리포니아 T의 후속 모델이다. 디자인 변화와 더불어 엔진 출력을 다듬었다. 최고 600마력 엔진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주행성능을 뽐낸다. 전작 캘리포니아의 디자인이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줬다면 포르토피노는 모든 아쉬움을 씻어낸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캘리포니아 후속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 이름까지 바꿔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보닛과 전면 범퍼는 공력 성능을 위해 여기저기 구멍을 뚫었다. 날카로운 라인은 과격함을 더한다. 그럼에도 놓치지 않은 것이 바로 섹시함이다. ‘와..예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측면으로 돌아서면 뒤로 갈수록 솟구치는 캐릭터라인이 눈을 사로잡는다. 과감하게 부풀린 리어 펜더가 뒷바퀴 굴림방식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리게 한다. 뚜껑이 열리는 오픈카지만 유려한 라인을 해치지 않는다. 페라리가 정말 잘하는 부분이다. 후면은 페라리의 상징인 원형 테일램프가 자리잡는다. 좌우에 각각 2개씩 총 4개의 테일파이프는 고성능임을 암시한다.
작디작은 도어 손잡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가면 페라리가 맞나 싶을 만큼 편의장비가 가득이다. 내비게이션이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스마트폰 거치대를 챙겨간 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포르토피노는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 10.2인치의 큼지막한 센터 디스플레이에는 정보가 표시된다. 페라리 관계자는 “GT 콘셉의 차엔 항상 센터 디스플레이를 마련한다”고 첨언한다. 계기반은 동그란 RPM게이지를 중심으로 양편에 자그마한 디스플레이를 마련했다. 주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 있다.
포르토피노는 엔진이 앞에 위치하고 후륜으도 구동하는 FR 방식이다. 이런 구조 덕분에 엔진이 차체 중앙에 위치하는 미드십과 달리 2+2 구조의 실내를 갖췄다. 2열은 사실상 성인이 앉긴 어려워 보인다. 대신 가방을 두는 정도의 수납 공간으로서 활용도는 높다. 카시트를 설치해 어린아이 탑승도 가능해 보인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V8 가솔린 터보 엔진이 ‘부앙’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을 내뱉는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메고 오른쪽 패들시프트를 ‘까딱’하면 곧바로 ‘D’에 기어가 맞물린다. 포르토피노에는 3가지의 주행모드가 있다. 컴포트, 스포츠, ESC OFF로 나뉜 주행모드는 GT 모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슈퍼스포츠 성향의 페라리 모델은 WET, 스포츠, 레이스, CT 오프, ESC 오프로 구성돼 있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컴포트에 맞추고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가속페달의 반응이 부드럽다. 최대한 빠르게 다음 단수로 넘기는 변속기의 역할이 크다. 저속에서의 효율까지 챙긴 똑똑한 세팅이다. 시속 60km에서 7단이 들어간다. 고단을 사용해도 출력의 부족함은 없다. 노면 상태가 고르지 못한 곳에서도 포르토피노는 거친 노면 진동을 잡아낸다. 그야말로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세팅이다. 특히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주행에서 피로도가 굉장히 낮다.
서울 시내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고 힘을 줬다. 순식간에 속도계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 최고출력 600마력, 최대토크 77.5kg.m를 발휘하는 V8 3855cc 터보 가솔린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조합이다. 일반적인 터보 차량과 달리 한 번에 힘을 내뿜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출력을 점진적으로 늘려간다. 마치 자연흡기 엔진과 흡사한 느낌이다.
프로토피노의 최고속도는 320km/h,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딱 3.5초다. 포르토피노는 우악스럽게 달리는 콘셉이 아니다. 넉넉한 출력을 즐기며 시원스럽게 달려나갈 때 진가가 발휘되는 GT카다. 콘셉에 딱 맞는 주행 스타일을 갖췄다. 고속으로 크루징 할 땐 엔진 소음도 크지 않다. 특히 부드러운 엔진 반응이 운전자의 기분을 절로 좋게 한다. GT 콘셉이라고 코너링 성능이 부족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 차의 한계를 알기 위해선 따로 드라이빙 교육을 받아야 할 만큼 넘치는 성능을 갖췄다. 단순히 직선 주파뿐 아니라 코너링도 재밌다. 특히 뒷바퀴 좌우의 구동을 제어하는 전자식 차동제한장치가 부족한 운전 실력을 보완해 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강을 끼고 달리는 와인딩 국도에 도착했다. 40km/h의 속도에서 14초만에 열리는 하드톱을 열기 위해 속도를 낮췄다. 오픈을 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강을 끼고 달리니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거기에 V8기통 엔진의 환상적인 연주가 더해지니 귀까지 즐겁다. 왼쪽 패들시프트를 ‘까딱’하니 엔진 회전수가 치솟는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가로수가 순식간에 저 뒤로 날아간다. 급한 코너에서도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다. 브레이킹 포인트를 늦게 가져가도 여유롭게 제동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페라리 전 모델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탑을 닫고 주행모드는 다시 컴포트로 바꿨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포르토피노는 발톱을 숨긴다.
차는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에 가깝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페라리 포르토피노는 속도와 상관없이 항상 즐거운 펀카다. 엔진을 쥐어짜며 달리지 않아도 된다. 운전이 미숙해도 코너를 잘 돌아나갈 뿐 아니라 오픈까지 가능하다. 가격은 2억8800만원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