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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열 여의도 포럼 회원들과 함께 양평군 양수리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양수리는 남한강 북한강을 품고 있는 작은 도시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맛집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양수리에는 양평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세미원(洗美苑)과 두물머리가 있으며,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양수리의 진면목은 수종사에서 바라보았을 때가 진가가 드러난다. 서거정(1420-1488) 선생이 수종사에서 바라본 경치가 해동 제일이라고 할 만큼 양수리 일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양수역에서 약 920m 걸어가면 경기도 지방정원 제1호 세미원이 나온다. 세미원 매표소를 지나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면 실개천이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너가게 된다. 징검다리를 보면 어릴적 생각이 떠오른다. 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 앞에서 한 발로 껑충 뛰면서 건너 다니곤 하였다. 불이문은 사람과 자연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자연철학사상을 담고 있다. 아기자기한 징검다리를 통과하면 장독 분수쇼가 원형으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어서 연꽃이 한강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진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진흙속에서 청정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사바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다고 한다. 연꽃은 7-8월에 연한 분홍색과 흰색꽃을 피운다. 꽃을 보면 마음이 위안이 되고 행복을 느낀다. 연꽃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에 푹 빠졌다. 배다리를 건너면 두물머리에 닿는다. 배다리(丹橋)란 용어는 정조대왕의 명의로 정약용 선생(1762-1836)이 한강대교 부근(노량진)에 설치한 다리를 말한다. 정조대왕은 1795년 화성행차시에 이용했던 다리로 수십척의 배를 엮어서 만들었다. 두물머리에도 연꽃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두물머리는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는 그림속 풍경을 보는 듯하다. 겸재정선(1676-1759)은 이곳을 배경으로 독백탄(獨栢灘)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이곳에는 두물머리 수호신인 수령 440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으며, 옛 나루터에는 나룻배 한 척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두물머리 나룻터는 남한강 수운의 마지막 정박지이자 남한강 물류의 집합지였다. 그러나 팔당댐 조성으로 뱃길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배다리를 다시 건너 마지막으로 세한도(歲寒圖)를 관람하였다. 세한도는 조선 말기에 김정희(1786-1856)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김정희는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추운 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비유하여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제자인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에 답례로 선사하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일본인 교수인 후지츠카가 소장하고 있었다. 1944년 서예가 손재형 선생(1903-1981)은 동경으로 건너가 후지츠카 교수를 만나 두 달여 기간 동안 끈질긴 사정으로 세한도를 찾아 귀국하였다. 그 후 국보(180호)로 지정되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출출한 배를 안고 군침도는 먹거리 가득한 연밭으로 향하였다. 손님들로 가득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미리 예약을 하여 대기하지 않고 바로 식사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연밭정식( 연잎찰밥, 명태찜, 된장국)에 지평막걸리로 즐겁게 식사하면서 말품앗이 하며 웃음꽃들을 피우고 양수역에서 귀가하였다. 마음의 여유를 느끼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 여행은 그 속에 자유가 있고 또 다른 삶이 있고 새로운 느낌이 있다. 일상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듯 기분이 상쾌하였다. 동기생들과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