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밤마다 벗는 것은 - 서순옥
뱀은 허물을 벗어야만 길이가 길어지고 애벌레는 허물을 벗어야만 굵기가 굵어지고 독수리는 알껍데기를 벗어야만 저 창공을 가르는 날개를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밤마다 한 겹씩 한 겹씩 벗는다 온몸을 감싸던 두툼한 두루마기도 벗고 젖가슴을 감싸고 있었던 저고리도 벗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렸던 치마도 벗는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단지, 잠옷을 갈아입기 위해 벗을 뿐 내가 밤마다 진짜 벗는 것은 오직 신과 나만이 알 수 있는 것만 벗는다 근심의 껍질을 쑥쑥 벗어내고 양심의 껍질을 훌러덩 벗어내고 고심의 껍질을 발가벗어내는 것이다
어제의 허물을 벗어내야만 내일은 좀 더 성숙할 수 있기에 지나간 삶의 허물을 한 겹씩 한 겹씩 조심스럽게 벗어 새로이 거듭나려 함이다
[시작노트]
며칠 전 어두운 밤 택시를 타고 아파트 앞에 내리면서 천원을 주고 칠천오백을 거슬러 받은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뚜벅뚜벅 걸어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호주머니에 무심코 손을 넣어보니 요금 주려고 미리 준비해둔 만원은 그대로 있고, 함께 넣어둔 천 원짜리 새 지폐 한 장만 사라지고 더 많은 돈으로 불어 있었다. 요술 호주머니가 된 것이다. 천 원을 주고 많은 잔액을 거슬러 받았음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얼른 되돌아갔어야 했는데 아파트 택시 승강장에 내가 타고 온 그 택시는 또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줄 뻔히 짐작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냥 집으로 올라와 버렸다. 시의 제목을 “양심 선언문” 또는 “기도”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양심의 가책은 며칠이 지나도 벗겨지지 않는다. 오직 한 분 앞에서만 몰래 벗었던 고해를 이렇게 공개하고 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려는지.
[작가프로필]
서순옥 sosunok@hanmal.net 포항 출생. 「시인과 육필시」 신인상. 제53회 「아동문학세상」신인상. 「사계문학」인터넷문학상 수상. 「두레문학」회원, 시집 「묻어야 할 그리움」 (2004. 씨알소리). 울산문인협회, 서라벌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회원, 울산아동문학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