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에 쓰는 글이네요
이 카페에서 활동(또는 운영)한지 올해로 딱 20년째인데, 3개월동안 게시판에 글을 안 쓴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길게 글을 쓰지 않은 기간이 기껏해야 일주일 내외였는데, 이번에는 오랫동안 침묵(?)했네요.
1년 3개월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모처럼 재취업해서 개인적으로 바쁘게 지내기도 했고
요즘은 '카페'보다 SNS가 더 핫하다보니까 팬들끼리도 주로 거기 모여서 놀았고
올해 야구가 작년보다 재미가 좀 덜하기도 했고, 뭐 이런저런 여러 이유가 있었네요.
아무튼, 치열한 준플옵 1차전 중계를 보면서
작년 생각도 나고, 또 과거 생각도 나고, '우리는 내년에 어떻게 하나?' 뭐 그런 생각도 드네요.
올 시즌 우리팀의 문제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 외국인 원투펀치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그 둘 말고는 제대로 된 선발이 없었고
둘째, 작년에는 불펜에 역대급으로 <우주의 기운>이 모였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으며
셋째, 김태균-정근우-이성열의 힘이 예전보다 떨어졌는데, <여전히> 그 3명이 라인업에서 제일 잘 칩니다.
센터라인의 계산이 틀어지면서 수비의 중심축이 제대로 안 살았고
코너외야수의 공격 생산력과 수비력 모두 다른팀과 비교하면 부족했으며
외국인 타자는 여전히 우리 마음을 뜨겁게 했지만, 생산력은 타구단 모두와 비교하면 중위권이었죠
포수와 2루수가 기대보다 잘해줬지만, 선수층이 얇으니 144경기를 치르면서 컨디션 조절이 잘 안 됐고
대범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것 처럼 보였던 감독이 어떤 이유인지 자꾸 쫓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문제였지만,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저 위에 언급한 세개인 것 같네요.
외국인 원투펀치 매우 고맙게 던져줬습니다. 로테이션을 비교적 잘 지켜줬고 이닝도 그 정도면 제법 먹어줬죠
그러나 <팀을 이끄는 에이스>로서의 모습까지 보여주지는 못했고, 나머지 3-4-5선발은 뒤를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뒤를 받쳐주기는 커녕, 시즌이 끝난 지금 와서 돌아보면 3-4-5선발이 누구였는지도 가물가물하죠.
'좋은 투수를 키우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어떻게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인 것도 사실인데
그 어려운 숙제를 다른 팀은 어떻게든 한두개씩은 해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직 없다는 게 슬프네요.
류현진이 입단한지 만 14년째가 되어가고, 류현진이 떠난 시점을 기준으로 벌써 7년 가까이 됐는데 말입니다.
작년에 가을야구에 진출한건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불펜 투수 4명이 거의 한꺼번에 터져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사실 그런 일은 잘 안 일어나거든요.
다들 경험해 봤잖아요. 시즌 전에는 <올해 누구 기대된다> 하지만 결국 시즌 시작되면 별 볼일 없는거.
하지만 작년에는 그게 됐습니다. 송은범 안영명은 물론이고 박상원 이태양, 심지어 서균에 김범수까지 터졌죠
엄밀히 말하면 올해는 작년에 놀랍도록 잘 터졌던 긍정적인 변수가 '평균으로 희귀'한 셈인데, 그 격차가 너무 컸네요
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타선에 대해서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타자보다 투수에 더 집중해서 야구를 보고
팀 전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타력보다는 투수력입니다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타선'의 문제가 내년과 내후년 기준으로 투수진보다 더 급할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올해 김태균은 4월에 너무 부진했고, 5월 이후 회복세를 보였으나 전체적인 생산력이 과거보다 떨어졌죠.
정근우는 시즌 마지막에 '역시 베테랑'소리를 들을 만 했지만, 포지션을 완전히 잃었고 부상 한번에 두달을 날렸죠.
이성열은 보름 정도 1군에서 빠진 것을 제외하면 풀시즌을 뛰어주고 장타력도 여전했지만
정확도를 겸비했다는 최근의 평가가 무색하게, 다시 '확률 낮은 뻥야구'로 돌아간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여전히 저 선수들이 팀내에서 가장 잘 친다는겁니다.
올 시즌 150타석 이상 들어선 국내 타자중 wRC+ 100이상을 찍은 선수는 이성열 김태균 (그리고 최재훈) 뿐이죠
129타석에서 wRC+ 100을 찍은 선수가 한명 있는데, 그 선수도 젊은 유망주가 아니라 85년생 최진행입니다.
다행히 기준점을 90이상으로 내리면 정은원과 정근우 이름이 나옵니다.
WAR기준으로 줄 세워봐도
KBO기준이냐 스탯티즈 기준이냐에 따라 변화는 좀 있으나 최상위권 이름은 모두 저 선수들입니다
김태균 정근우는 10년 전에 KBO에서 야구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었고
5년 전에도 우리 팀에서 제일 잘 쳤는데
올해도 젊은 선수 중에서 저들보다 확실하게 치고 나간 후배가 없는겁니다.
그러면 과연 내년에는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08베이징-09WBC에 뛰었던 80년대 초중반 세대들은 각 팀의 주요 베테랑이거나 이미 은퇴세대가 됐죠
다른 팀에는 그 이후 세대 후배들, 그러니까 90년생 전후거나 심지어 90년대 중후반생들이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태균이 2009년 WBC에서 4번 치면서 홈런-타점 1위 먹었는데
김하성-이정후-강백호-박민우-박건우-오지환-채은성-박세혁 이런 선수들은 그때 기준 KBO에 아직 데뷔하지도 않았고
양의지-최정-박병호-전준우-황재균-이천웅-김재환-민병헌 이런 선수들도 이제 서른줄이지만, 82세대보다는 후배죠.
저 선수들은 올해 스탯티즈 기준 WAR 30위권에 이름을 올린, 각 구단 주력 멤버들입니다.
정은원이 '대전아이돌'이 된 이유, 코너 외야에 새 인물 나와서 안타나 도루 한번이라도 하면 팬들이 뒤집어진 이유
감독이 노시환에게 고집스레 기회를 주고, 변우혁도 자꾸 실전에 내보냈던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겠죠.
서울팜에 밀렸고, 2군 투자가 늦었고, 전감독이 퓨쳐스를 방치하다시피 해서 이 문제가 계속 심해졌는데
단기간에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만,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벌써 10년 가까이 하고 있으니 그것도 문제네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프로야구를 깊이 좋아하고, 한화이글스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팬입니다.
팀의 문제점을 들춰내어 그것을 개선시키거나 장기적인 솔루션을 찾아야 할 전문가 또는 관계자가 아니죠
그냥 신나게 응원하고, 재미있게 야구 보고, 이왕이면 자주 이겨서 더 많이 신나고 싶은 그런 보통 팬입니다.
이기면 좀 더 재미있고, 지면 아무래도 좀 덜 재미있는게 프로스포츠의 본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카페 회원들 끼리 조만간 모여 술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약속 잡을때, 단톡방에서 "10월 29일이 우승 20주년 기념일이니까 그날 만나서 놀까?" 하면서 웃픈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왜,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충청도 출신도 아니고 한화 또는 빙그레 그룹과 아무 인연도 없는데
20년 전에 우승 한번 보고 10년째 약팀을 응원해야 합니까.
말이 20년이지, 그때는 삐삐차고 다니던 사람도 많았던 시대란 말입니다.
이제는 구단이 정말로 그 솔루션을 좀 잘 찾아내서
저같은 팬들을 지금보다 더 기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새롭지도 않은 매번 반복되는 얘기
작년에도 했고, 재작년에도 했고, 그 전 시즌에도 했고, 사실 예전에도 계속 했던 그런 얘기를
앞으로는 좀 덜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첫댓글 ㅋㅋㅋㅋㅋ 웃픈내용도 있네요 ㅠㅠ
너무 공감되네요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런지ㅠㅠ
잘읽었습니다
3,4.5 선발은 결국 누구?
다음시즌에도 가을ㅈ야구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 ㅠㅠ 하~~;;;
투수력 부진도 컸지만, 그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타격부진입니다.
꾸역 꾸역 막아도 1점, 2점 지원받기가 힘드니, 안 그래도 버티기 힘든 투수진이 와장창 무너져버렸죠.
1선발님 ..그래도 내년에는 뭔가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지켜보시죠?? 이 또한 도돌이 표 이지만...
동감입니다
충청도 출신도 아니고 한화그룹이랑 관련 1도 없는 사람 여기도 있네요 ㅠㅠ 한 반에 빙그레 팬이 저 말고 1명이라도 있는 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이너였는데.. 정말 뭐에 씌였는지..ㅠㅠ
전 노시환 변우혁 장진혁에게 먹인 시간과 경험이 헛되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이글스 미래가 너무 암울해요.
김이환도 내년엔 10승 투수 될듯.
(제가 왜,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이부분이 참....그 업보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 그래도 제가 제 아들 나이때는 지는 것보다 이기는 날이 훨씬 많았는데...두산 응원해도 괜찮다고 제 아들을 달래보았지만....이젠 소용이 없네요...
한용덕 감독의 평가는 내년 시즌 성적으로 평가 될듯 합니다 -- 준비 잘해서 내년 시즌 다시 도약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 말미의 말씀들은 그냥 무조건 공감이 됩니다
왜 내가 하필 빙그레를 한화를 연고도 다른데 왜?
ㅎㅎ 그냥 공감 되네요
김태균이 한화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했으면 하는 바램인데 ... 분발해주길 빌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