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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자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어 비쳐졌다. 며칠간 제대로 면도를 하지 못해 수염이 거뭇거뭇 하고 머리도 감 지않아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모습. 눈은 창밖을 향해 있지만, 깜깜한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는 건 드문드문 점처럼 이어진 주황색 가로등. 민재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한시간 반째, 버스는 계속 달려가고 있다. 속초행 버스를 무작정 잡아 탔지만, 속초는 아는 이 하나 없고 연고도 없는 곳이다. 민재는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다시 잠을 깼을 때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다 꿈이 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이루마의 피아노 음율이 마음 구석구석 짠하게 울려 펴졌다. 한 곡 한 곡마다 추억이 묻어나지 않는 곡이 없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굳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버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는 민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 평일이라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고작 다섯, 중년의 여자 둘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연인들. 그 연인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민재 자신의 심장이 아려왔다.
"십분 쉴게요"
깜박 잠이 든 민재는, 버스기사의 말에 잠에서 깼다. 아마 속초로 가는 동안 들르는 처음이자 마지막 휴게소 일 것이다. 민재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다, 버스에서 내렸다. 11월의 강원도 공기는 역시 서울의 그것과는 달랐다. 코끝이 짠하게 아려오는 밤공기, 그리고 잠시후 얼굴 전체를 그 차가운 기운이 감싸자 민재는 완전히 잠에서 깨 현실로 돌아왔다. "휴.."
깊은 한숨과 함께,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담배갑을 꺼내 들었다. 결혼 하면서 끊기를 약속했던 그 담배인데, 민재는 주저없이 한 대 꺼내 물었다. 담배의 탁한 연기가 식도를 넘어 폐로 들어가자 가슴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바깥의 찬공기가 섞여 들어가 기침을 내 뿜었다. 민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일밤이라 그런지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 한모금을 깊숙이 빨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크게 한 번 내 뿜었다. 하늘에 별이 너무 촘촘해서 곧 민재의 얼굴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민재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건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건지를 잠시 잊고 싶었다. 차가운 공기를 힘껏 들이 마셨다.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그녀와 함께 했었던 서울만 아니라면 어디든 잠시 떠나있고 싶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머리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담배를 털어내고 두 손으로 얼굴을 세 수하듯 아래 위로 문질러 보았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 가슴이 또 먹먹해져 왔다. 바뀌지 않는 현실, 그리고 민재의 의지로 바꿀 수도 없는 그 현실에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아파왔다. 너무 아린 가슴을 오른쪽 손으로 움켜 쥐어 짰지만.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은 이제 어쩔 수 없는 과거일 뿐이라는 스스로의 변명과 위로도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살아가는 힘을 줄 수는 없었다. 쓰라린 자신의 마음과 싸우고 있는 동안 버스는 속초에 도착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무작정 속초터미널을 나왔다. 졸고 있는 안내원에게 가까운 바다가 어딘지 물어 보았다. 터미널을 왼쪽으로 돌아 5분만 더 가면 바다가 보인다는 그의 말대로 길을 따라 걸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왔던 연인들도 밤바다를 보러 가는 건지 30미터쯤 앞서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둘이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조금 걷다 보니 바다의 짠 내음이 콧속 가득 느껴졌다. 그리고 잔잔한 파도소리.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들어 불을 붙였다. 같이 왔던 연인들은 벌써 함께 손을 잡고 모래사장으로 뛰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민재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라도 웃어 보는게 얼마만이던가. 웃는 것 조차도 미안할 만큼 아파하고 자책하지 않았던가. 모래사장으로 발을 내딛었다. 푹신한 모래의 느낌이 발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조금씩 바다 가까이로 걸어 나갔다. 훤히 트인 바다를 보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서울에 있을때나 지금이나 아린 마음은 똑같았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는 외딴 곳으로 오니 더욱 더 많은 생각들로 가슴이 더 먹먹 해졌다.'이제 내 가슴에게 미안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 멀었나 보다.'
까만 밤바다를 보니 저기로 빨려들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용기도 없는 민재 자신이 아니던가.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11월 밖에 안되었지만 밤바다 주변의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민재 자신도 모르게 이미 손끝은 빨갛게 되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추위를 느끼는 것 조차도 자신에게는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나약했다. 술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횟집이라고 쓰인 몇몇 간판들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오징어회 일인분하구요, 소주 한병 주세요"
이야기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는 다시 되물었다.
"오징어회요?"
촌스럽게 여기까지와서 오징어회를 먹느냐라는 그녀의 표정에 민재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민재는 회를 못 먹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회는 오징어회가 전부인데, 사실 횟집에 온 것도 회를 먹으려고 온 게 아니지 않은가. 소주의 뚜껑을 열었다. 잔이 입술에 와닿자 온몸이 짜릿하게 그 차가움이 전해졌다. 금방 담배를 태운 탓인지 식도를 넘어가는 소주의 그 맛이 쓰다 못해 따가웠다. 아무려면 어떤가. 세 잔째 연거푸 마시자 아까 주문을 받던 그녀가 다가와서 혀를 끌끌 차며 이야기했다.
"천천히 마셔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막 마시면 탈나"
그러나 탁 풀어져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민재의 눈을 보고는 말없이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다섯잔째, 따뜻함을 느꼈다. 그냥 알 수 없는 슬픈 기운이 배속부터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잔을 들고 있는 왼손 손가락의 결혼반지가 더욱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결국 소주만 한 병 반을 비우고 오징어회는 입도 대지 않은채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술기운으로 열이 오르던 얼굴이 더 화끈했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방하나 주세요"
가까운 모텔로 무작정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섰다. 카운터 너머의 여주인이 카운터에 나 있는 두손이 겨우 교차할 수 있는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민재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혼자에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우린 혼자 오는 손님은 안 받는데, 워낙 흉흉한 일들이 많아서 말이야"
그러다가 민재가 말없이 오만원짜리 두 장을 카운터 너머로 내밀자 아무 대꾸없이 방 키를 내밀었다. 모텔이라고 하기에는 지저분한 그렇다고 여인숙이라고 하기에는 깔끔한 오래되 보이는 모텔의 복도를 지나 건네받은 키로 방문을 열었다. 옷도 벗지 않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방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해인아..."
나즈막히 불러보는 그 이름에 민재는 또다시 가슴 먹먹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솟구쳤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한 번 눈물이 나기 시작하자 숨이 가빠올만큼 슬픔이 복받쳐 올라왔다.
"미안해..내가 미안해..아직 미안하다는 말도 못해줬는데..해인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소리가 새어나갈까 이불을 입에 꽉 물고 흐느끼던 민재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민재의 지난 이야기]
"오빠! 우와 우와 우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우와'를 외쳐대는 해인을 보면서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뉴스를 보면서 물었다.
"왜? 변비가 이제 좀 나아져?"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몸뒤에 감추고 있던 작고 길다란 무언가를 내 눈앞에 갖다 대었다. 갑작스럽게 얼굴 앞에 다가온 뭔가를 움찔 피하며 물었다.
"뭐야 이게"
그녀는 들뜬 기분을 얼굴에 감추지 못하고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축하해 오빠, 아니 이제 아빠야. 하하"
내 눈앞에 보이는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보라색 두줄.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결혼하고 2년이 넘도록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결혼 후 처음 1년은 곧 아기가 생기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지내 왔지만, 1년 반이 넘어가면서 평소 아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해인이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두달 전에는 산부인과에서 검사도 했지만 둘 다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나는 진짜 한동안 임신이 안된다면 해인이를 위해서라도 입양을 하는게 어떨까 생각했다. 나와는 반대로 성격이 급하고 적극적인 해인이는 그동안 애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한약도 먹고, 시술도 받았으며, 심지어 강원도의 절에 찾아가서 백팔배까지 하고 왔다. 나는 해인이의 그 노력을 모르지 않는 터라, 지금의 이 임신 소식이 가슴이 벅차 오를만큼 감격스러웠다. 나는 내 기분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 기쁜 소식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외쳤다.
"이야! 만세다 만세"
둘이 부둥켜 안고 거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2011년 가을은 그렇게 하늘이 선물로 주신 아기천사로 인해 우리 부부에게 축복이 내 린 듯했다.
“크기로 봐서는 7주네요. 심장소리가 양호하네요. 아니 요때 다른 애들보다 심장소리가 강한 걸 보니 건강한 아이네요. 축하합니다.”
의사에게 임신사실을 듣고, 내 눈으로 초음파 화면을 통해 조그마한 점으로 해인이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를 보니 해인이가 임신이라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진료대에 누워있는 해인이가 행복한 얼굴로 우측편의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진료대 위의 해인이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렇게 좋아?”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계속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는 해인이를 보고 내가 물었다.
“응, 너무너무, 진짜 너무 좋아. 태명은 뭘로 할까? 까꿍이? 금동이? 복둥이?”
“하하, 천천히 하자, 천천히”
“오빤 안좋아?”
“아니 나도 엄청 좋아. 특히 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깐 더 좋아”
사귄지 4년, 결혼한 지 2년, 햇수로 6년이나 해인이를 알고 지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3년 전에 본인의 임용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도 이 정도로 기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너무 행복했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낳아서 기른 아이가 아니라도 입양해서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했던 해인이였지만, 지금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해인이도 그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는 현실에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망하는 티 한번 내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나만 있어주면 된다고 해 준 해인이에게 고마웠다.
그 이후로 반년 동안은 정신 없이 바빴다. 새로운 생명이 생긴다는 것이 축복이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는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아기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던 설계사무소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후배와 둘이 꾸려가는 소규모 설계사무소이다 보니, 수주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 일거리를 줄 수 있는 관계자들하고 술자리가 잦아졌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일하고 있는 시간외에는 만삭이 되어가는 해인이를 위해서, 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그녀를 기쁘게 만들었다.
"짠! 어때?”
두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봉골레 파스타를 앞에 두고, 그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한 입 크게 면발을 넣었다.
“웩, 너무 느끼해”
역시 해인이는 너무 솔직했다. 내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머지 파스타를 내 입에 우겨 넣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이렇게 복둥이 아빠가 복둥이 엄마를 위해서 요리를 해 줬다는 사실만은 칭찬해 줘야 해”
“그럼 뭐해 맛이 없는 걸, 결과가 중요한 거야”
“그건 너무 심하다”
“그럼 맛있게 해봐, 아참 빨래는 돌렸어?”
해인이가 임신하고 나서부터 모든 집안일을 내 차지였다. 낮에는 회사에서 그리고 밤에는 집안일로 너무나 고된 하루였지만, 우리에게 와 준 아기천사를 생각하면 그 고단함이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느껴졌다.
2012년 5월 19일, 모처럼 쉬는 토요일 우리는 강원도로 바람을 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실 그 전날 접대를 위한 지나친 회식으로 새벽녘에 집에 들어와 해인이를 화나게 한 걸 만회하기 위해서 다음날 부랴부랴 준비한 여행이기도 했다. 차에 타며 아직도 어제의 일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뾰루퉁한 해인이를 달래기 위해 슬쩍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마”
“미안해, 진짜 나 술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 이번 건이 금액이 커서 너무나 탐이 나는 프로젝트 였거든. 근데
이놈의 발주자가 술고래 인거야. 결국 우리한테 일거리를 주는 걸로 마무리를 했는데, 혹시나 일거리를 못 받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 하던지..”
말이 많지 않은 내 성격이지만, 그녀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따라 해인이의 화는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내가 삼십분만 쉴새 없이 이야기를 하면 “으이그 됐어” 라는 말로 풀어버리는 성격이었는데, 그동안 늦게 귀가를 했던 것들이 쌓여서 터져버렸던 것 같았다. 나도 그 동안 집안일과 회사일, 그리고 해인이를 속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꾹꾹 눌러오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터져 버렸다.
“야, 나도 진짜 말을 다 안해서 그렇지 너무 힘들어. 이런 남편 좀 이해해 주면 안되냐. 어제 술까지 먹고 아직 머리가 아픈데도,
이렇게 너 기분 풀어주려고 운전하고 있는 거 보면 좀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줘야 되는거 아니냐“
“........”
아무말이 없는 해인이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나는 그녀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나 좀 봐봐”
순간적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 때 앞만 쳐다보고 있던 해인이의 찢어질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조심해! 앞에!”
나는 다시 정면을 향해 갑작스레 고개를 돌렸고, 도로위로 올라오려던 사슴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핸들을 틀었
고, 강원도의 2차선 국도변에서 맞은편에 달려오던 8톤 트럭이 순식간에 우리 차를 덮쳤다.
“쾅”
차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쿵쿵 몇번의 충격을 차안에서 느끼며 몸을 이리저리 부딪혔던 것 같다. 굉음과 함께 시작
된 그 몇 분의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큰 충격에 코마 상태였던 것 같기도 했다. 나
중에 우리차를 덮친 트럭의 블랙박스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제한속도를 초과하여 무섭게 달려오던 트럭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버린 우리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우측 전면부를 받아버렸고, 그 충격에 우리차는 20미터나 굴러 나가 떨어졌다. 차량의
구름이 멈추고,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옆에 타고 있었던 해인이의 상태부터 살폈다. 해인이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가느다란 정
신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해인이를 불렀다.
“해인아, 괜찮아?”
그러자 가는 실눈을 뜨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해인이가 대답했다.
“응..오빠는..?”
해인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큰 충돌로 차량의 전면부가 뒤로 밀리면서 해인이는 앉은채로 무릎아래가 조수석의 대쉬보드와
시트에 끼여 버렸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채로 조수석의 문을 열고 해인이를 빼내고자 했지만, 조수석의 문은 강한 충격으로 찌그
러져 열리지 않았다. 일단 직접 충격이 없었던 운전석의 문을 열고 끼여있던 그녀의 몸을 두팔로 감싸안아 당겨 운전석을 통해 빼
내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했다.
“아.....”
몸이 끼여있는 그녀를 힘으로 빼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입고있던 재킷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의 충격으로 오른팔을 다친 것인지 팔꿈치가 끊어질 듯이 아파와 핸드폰 조차 들 수 없었다. 왼쪽 손으로 다시 핸드폰을 들어 버튼을 눌렀다. ‘1111......111’ 손이 너무 떨려 119를 한번에 누를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119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기 사고가 났어요.. 차사고,,사람이 많이 다쳤어요...여기요? 여기가 어디냐면요”
눈물이 섞인 울부짖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며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와 보는 강원도의 국도변의
위치를 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사고 트럭의 운전수가 멀쩡히 트럭에서 내려 우리차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달려오
는 그에게 다급하게 소리치며 핸드폰을 건넸다.
“여기 위치좀 ....119에요”
그리고 나는 다시 운전석 문을 통해 몸을 구부리고 그녀를 살폈다. 자꾸 눈을 감으려는 해인이의 모습에 다급하게 그녀를 흔들며
소리쳤다.
“해인아 정신차려 눈감으면 안돼. 해인아. 해인아”
그녀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왼쪽손을 가느다랗게 떨며 겨우 들어 나의 왼쪽 볼에 갖다 대었다.
“오빠....나....너무 아파...”
“그래 해인아 이제 곧 구급차가 올 거야..해인아...조금만 참아.흐흑...”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흥건한 피를 보며 울부짖으며 해인이를 끌어 안았다. 해인이는 나에게 안긴채로 작고 약한 목소리로 나를 바
라보며 이야기 했다.
“오빠.....미안해.....”
“뭐가 미안해. 해인아...정신차려...눈감지마..해인아..제발...해인아..해인아...”
[다시 가슴아픈 현실로]
민재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동안 여기가 어딜까 생각하다가 어제 늦은 밤 횟집에 들렀다가
모텔로 들어왔던 것을 기억해 냈다. 오늘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절대 잊지 못하는 그 날 사고의 기억은 매일 밤 꿈으로 다시 재생
되어 민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민재는 오히려 이렇게 매일 매일의 괴로움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당연한 댓가라고 생각
했다. 혼자 살았다는 자책감, 그리고 사고를 일으킨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는 동
안 흘린 눈물을 오른손등으로 쓰윽 훔쳤다.
“휴”
크게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지 오른쪽 주머니의 담배갑을 꺼냈다.
‘라이터가 어디있지’
주머니를 뒤적이다, 어제 횟집에 라이터를 두고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담배를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던져버렸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고 바로 방을 빠져나왓다. 어차피 옷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잠이 들었던 터라, 방안에서 더 챙기거나 할 무언가도 없었다. 모텔 출입문을 열고 나오니 겨울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어제의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머리보다 가슴이 더 아파왔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왔었던 속초행은 결국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자’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는 민재와 중년의 남자 둘 뿐이었다. 잠을 깬 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민재는 속에서 올라오는 술 내음에 역
겨움을 느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화창한 겨울날의 강원도 산자락의 나무들은 잎이 완전히 다 떨어져 버려 더욱 쓸쓸해 보였다.
주머니를 뒤적여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루마의 연주곡이 몸속 깊이 울려퍼졌다. ‘Love Me' 해인이가 참으로 좋아하던 곡이었
다. 해인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곡은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던 아이였다.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지칠만도 할텐데 해인이는 매일 아
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 연주곡이 집안 가득 울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지겹지도 않냐고 핀잔도 주지 말 걸‘
후회가 밀려 들었다. 지나고 나니 후회와 미련투성이 추억이 가득했다. 민재는 다시 눈을 감으며 해인이를 마지막으로 떠나 보냈
던 2012년 6월의 그 때를 떠올렸다.
해인이를 보내기 위한 장례를 치루는 3일 중 첫째날은 이제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웃는 모습의 해인이의 영정 앞에서 아무것
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눈물도 나오지도 않았고, 그녀가 이 세상에 없
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 때의 민재는 그저 그녀가 떠나버린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첫째날이 지나고 둘째
날 새벽 민재는 장례식장 한쪽 구석에서 지쳐 잠을 청한 양쪽 부모님을 바라 보았다. 민재와 해인이의 부모님은 그날 사고 이후
민재에게 어떤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딸과 며느리를 잃어버린 아픔에 움직이시는 것조차 고통일텐데도 말없이 장례식 손님을 맞고, 지쳐 곯아 떨어지신 모습을 보며 민재는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이의 마지막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고 잘 챙겨서 보내 주고싶다는 생각으로 둘째 날은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민재가 직접 손님들을 맞았다. 장례식장을 찾은 손님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해인이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그들을 민재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자신의 책임인 것만 같았다. 혼자 살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밤이 가까워지자 민재는 사고 후로 그동안 생각하고 있었던 마음을 조금씩 굳혀갔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해인아..너 외롭지 않도록...나도 따라 갈게..’
부모님, 가족, 친구들의 존재는 더 이상 민재가 살아가야 하는 동기가 되지 못했다. 해인이의 발인을 앞둔 둘째날 새벽 손님들이
거의 빠져나간 장례식장 안 작은 가족방에 지쳐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민재는 옥상을 향했다. 옥상문을 열자 흰색가운
을 입은 앳되보이는 남자 2명이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2년 이상 끊었던 담배가 다시 피우고 싶어졌다. 해인이가 담배연기를 너무
싫어해서 결혼하자마자 끊었던 그 담배가 그 순간 만큼은 너무 간절했다. 민재는 그들에게로 터벅터벅 다가갔다.
“저기 담배 한 대만....”
그들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말없이 담배갑을 건네줬다
“불도 좀..”
담배 한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꽤 오랜시간 금연을 해왔던 탓일까 연기 한모금을 삼키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민재는 팔꿈치 뼈 골절로 인해 오른팔 전체에 하고 있던 깁스의 삼각대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가지고 올라왔던 소주 한 병의 뚜껑을 열고 병주둥이를 입에 댄 채로 벌컥벌컥 마셨다. 이상했다. 목은 따가웠지만 쓰지 않았다. 마지막 한 모금을 일에 털어 넣고 병에 입을 떼자 코로 독한 알코올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멀리서 아까 담배를 건네주었던 무리가 옥상을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옥상에서 사라지자 민재는 천천히 옥상 난간대로 올라갔다. 숨을 깊게 한 번 들이 마셨다.
‘하느님 이번만큼은 저의 이기적인 선택을 용서해 주세요’
난간대에 올라 아래쪽을 바라보자 주차하기 위해 기다리는 많은 차들, 그리고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까만옷들의 수많은 인파가 보
였다.
‘어차피 내가 없어진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거야’
민재가 만약 죽는다면 항상 바로 따라 죽겠다던 해인이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고 난간대 앞
쪽으로 조금 더 몸을 내밀었다.
‘해인아 너의 그 약속을 내가 지켜줄게, 니가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오빠가 함께 할게’
난간대에 올라 아래를 쳐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해인이를 따라 가겠다는 결심을 해 놓고 이제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모든게 끝날텐데 두려운 마음이 드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이런 나약한 마음을 이기기 위해서 반발자국을 난간
앞으로 더 나아갔다. 아래를 보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쏟아졌다.
‘결국 나는 마음대로 죽을 용기조차 없는 놈이구나’
자살을 할 용기도, 그렇다고 담담히 해인이를 보낼 용기도 더더욱 못내는 스스로가 더욱 싫어졌다. 난간에서 내려와서 털썩 주저
앉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린 아이처럼 주저 앉은 채로 엉엉 소리내 울었다. 간간히 옥상에 올라온 사람들이 소리내어 울고
있는 민재를 힐끗 쳐다 봤지만 상주 완장을 차고 울고 있는 민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왜 그런거냐 물어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이
들은 한명도 없었다.
장례식 마지막날, 해인이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직까지 분향소 옆의 작은 방에 잠들어 있는 부모님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민재는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며칠동안 하지 못했던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으로
보게 될 해인이에게 최대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면도를 하며 자꾸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몇 번이나 손등으로 눈
물을 훔쳐야 했다. 아침 10시, 화장터로 가기 위해 해인이의 관이 분향소를 빠져 나왔다. 영구차에 옮겨싣는 그 모습을 보며 해인
이의 친구들이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제 진짜 해인이가 이 세상이 없음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분당의 화장터로 가는 영구차
안에서 민재와 해인이의 부모님 그리고 민재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화장터로 영구차가 도착하고 해인이의 관이 차에서 내려졌
다. 민재는 이를 악 물었다. 해인이에게 마지막 모습만큼은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민재가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해인이는 너무 슬퍼 여기를 편히 떠나지를 못할 것 같았다. 화장장으로 옮겨지는 운구 도중, 해인이의 어머니가 관을 향해 뛰어들
었다.
“해인아 엄마야, 눈 좀 떠봐, 해인아 엄마를 두고 어디가,... 일어나봐. 나쁜 기집애야, 제발 눈 좀 떠봐”
운구를 하던 민재의 친구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해인의 어머니의 오열하던 모습에 또다시 훌쩍대며 울음을
터뜨렸다. 민재는 이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해인이를 위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꽉
깨문 입술에 피맛이 났다. 너무 꽉 깨물어 입술에 피가 나고 있음에도 턱에 힘을 빼지 않았다.
‘화장중’ 이라는 전광판을 보며 민재와 해인의 가족, 친구들은 화장장 옆의 분향소에 지쳐 앉아 있었다. 민재는 일어서서 해인의
영정 앞에서 여전히 입술을 깨문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눈에 눈물을 그득한 채로 그녀의 사진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 민재는 그녀의 영정사진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 놓았다. 핸드폰과 앙증
맞은 분홍색 아기신발. 잠시후 핸드폰에서는 해인이가 좋아하는 그 곡 'Love Me'가 흘러나와 분향소 가득 울려퍼졌다.
“흐흑”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과 친구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해인이의 영정사진을 오른손으로 아래위로 쓰다듬으며 이야기
했다.
“자유로워지는 거야 해인아. 거기가면 고통도 없을 거야. 너가 그렇게 싫어하던 이른 아침 출근도, 두려워 하던 출산의 고통도 이
제는 없을 거야. 우리아가야. 아빠는 비록 못봤지만 엄마랑 함께 가는 길. 꼭 엄마 지켜줘? 알았지? 아빠가 너무 미안해..”
민재는 반복해서 계속 이야기하며 끝까지 울음을 삼켰다.
첫댓글 연재중이었던 제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스토리 수정 및 보강을 통해 '사랑哀' 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긴시간 공백없이 완결까지 주욱 가보려 하오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기대하고 잘 볼께요~
문단이 조금 더 나누어져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ㅎㅎ;; 그냥 저 혼자의 생각이에요 ㅎㅎ;; ㅜㅜ
네 감사합니다 내용을 스토리상 전환이있을때마다 나누려고는 했는데.....조금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른행복을주었으면좋겠네요
담편 기대되요 빨랑 읽어볼께요^^
네 감사합니다 얼른 읽어주시고 감상평 남겨주세요~~^^
잘 보겠습니다.
새드는아니죠??ㅜㅜ
다음회 감상하시면서 천천히 스토리를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