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었다. 딸 아이가 명동에술극장에서 공연하는 '1945' 라는 연극을 예매해 놓았으니 그리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1945년생, 즉 해방둥이인 점을 고려하여 특별히 이 연극을 보여주고 싶
었던 모양이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나가 미리 근처의 을지로 거리를 걸어보았다.
비가 내렸다. 폭염속 습도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진다. 서울의 을지로 거리는 옛거리가 아니다. 최소
한 을지로 1가 쯤 주변은 완전히 새로운 신도시다. 현대의 메카니즘 속 마천루 같은 빌당으로 가득 채
워져 있다. 필자는 이곳이 과거에 있었던 그러니까 종전부터 존재했던 거리가 아니라고 여기고 만다.
그리고 미국의 시카코 중심가라고 이내 착각이 들어온다. 너무나 서구화 된 , 그리고 도시화 된 장면
속에서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그 더위 속을 아무 생각없이 그저 걸었다.
1945년이라는 시점은 어느 사학자가 언급했듯이 이른바 "영점지대(零點地帶)', 과거와 인위적으로
단절된 상태에서 새로운 시기를 배태해 냈던 전환이 시작된 시기로 볼 수있다.
우리역사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한 해지만, 한 문에평론가가 1945년을 떠올리면 늘 일제로 부터의 해방,
독립 이런 추상적인 개념어 몇개로만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증폭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의 내용은, 해방되던 해 출생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1945년 격변의 그 전후시대를
조명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1945년 , 만주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가디 위해 귀국열차를 기다린다. 그 속에는 젊은 여성 조선인과 일본
인 위안부가 포함되어있다. 이들의 갈등과 뜨거운 휴매니즘이 무대를 사로잡으며 극은 진행된다.
시대적 피해로 가슴들이 그대로 휑하니 뚫려버린 조선인들 속에는 전부를 약탈당해 한없이 무력해지고
그러면서도 끊없이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대화한다.
아니 소리친다. " 진 짜 살고 싶다" 고 그리고 " 원래의 집 조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 고 말이
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험하게 삶의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어왔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
리워진다.
일제 식민지시대가 끝나는 1945년에 이 땅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까? 일제때 우리 전 세대들이 일본 식민 정부에 대한 부정의식과 암울하게 겪어왔던 삶 자체의 모순속
에 가슴속 깊이 응어리로 남아있는 그 슬픔을 이해할 수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다.
그리고 민족상쟁인 한국동란과 관련 당시 5,6세의 나이에 그 참화를 부모세대와 같이 겪었던, 현장을 기억
하고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 할 수있는 격변기세대에서도 그 표류를 진정 체험한 해방둥이의 의미는 중요할
것이다.
또한 해방둥이는 20세 전반에 이르러 월남전에 파병되는 첫세대가 되기도 한다. 필자 주변에 파병을 다녀왔
거나 거기서 산화했던 같은 나이층을 적지않게 알고있다. 그 당시 골목길 허술한 집 대문에 붙어있던 < 월남
출정 용사의 집>이라는 표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인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는 흘러갔지만 그 시대는 엄연히 현재 속에서는 존재하게 마련이다.역사는 과거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
는 것이려, 앞으로는 과거의 암울한 그림자들을 벗어나 우리 앞에 정녕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대
한다.
을지로 3가에 있는 70년이 넘은 '안동장' 이라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그야말로 청요리도 즐겼다.
그래도 오늘 밤 초생달이 왠지 그립다.
-양강문화 산책, 2017. 12 제3호 ( 양평역사문화연구회 : 강건너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