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생기를 누리다
- 안창호
향기가 느껴지시나요?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스쳐 가더니, 어느덧 경칩도 지나갔습니다. 땅이 기지개를 켜듯 움츠렸던 생명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계절이지요. 춘분이 다가오면 낮과 밤이 길이를 맞추고, 봄은 우리 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담장 위로 솟은 몇 가지 매화,
추위를 이겨내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눈이 아님을 아는 것은
그윽한 향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네.”
왕안석의 한시처럼 매화는 봄의 전령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는 그윽한 향기와 함께 봄의 소식을 전하지요. 가지 끝에 매달린 봄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움츠렸던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봄이 자연스레 찾아온다 해도, 우리가 그 온기를 온전히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떨까요? 봄을 맞이하는 일은 단순히 따뜻한 날씨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새로움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봄을 맞이하려면 먼저 묵은 것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겨우내 손길이 닿지 않았던 책장을 열어보세요. 한때는 꼭 읽겠다며 사두었지만 펼쳐보지 않은 책들, 읽다 만 채 책장 한편에 묻혀 있던 책들. 그 자체로도 마음에 묵직한 짐이 되지는 않았나요? 이제 필요한 책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거나 깔끔히 정리할 때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이야기를 맞이할 여백이 생깁니다.
다음으로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리더기 없는 카세트테이프와 CD들처럼, 한때는 소중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그저 공간만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의 추억과 작별을 결심하고, 새로운 기억이 자리 잡을 공간을 마련해야겠지요.
컴퓨터 속 데이터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중복된 파일, 오래된 문서,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들. 지워도 무방한 것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필요한 파일은 체계적으로 정리하세요. 그렇게 하면 컴퓨터도 가벼워지고, 마음 또한 한결 정돈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봄은 단순히 환경을 정리하는 것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도 생기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봄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새롭게 개정된 한글 맞춤법을 익히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거예요, 눈곱, 두루뭉술, 떼려야, 생각건대, 설렘…” 하나씩 읽고 적어보며 익히는 과정 속에서 글쓰기 실력이 자라나고, 배움의 기쁨도 얻을 수 있지요. 때로는 헷갈리고 어렵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성장의 일부일 것입니다. 이렇게 배움과 변화의 여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 삶에도 새로운 봄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내가 끓인 냉잇국과 쑥버무리의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봄이 선사한 맛과 향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그 풍미를 음미하며, 삶에 깃든 새로운 생기를 온전히 누려봅시다.
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계절은 진정한 생명력을 가질 수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움을 맞이할 공간을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봄을 품는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