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영화가 속속 등장하던 80년대 충무로에는 ‘알랭 들롱’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미남 배우 최윤석이 있었다. 예전 풍경이 하나도 남지 않은 영화의 거리 충무로에 다시 선 그가 옛 충무로의 추억, 그리고 동경했던 충무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지금은 한국영화의 대명사 정도로만 인식되는 충무로지만 그곳을 터전 삼아 일하던 옛 영화인들에겐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현재의 충무로는 ‘영화의 거리’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장소로서 의미가 거의 상실되고 말았지만, 옛 충무로인들이 기억하는 충무로 풍경이란 거리 곳곳은 영화사 천지요, 좁은 골목 어딜 가도 촬영장비가 즐비한데다가, 촬영을 끝낸 영화인들이 으레 모이던 막걸리집이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던 추억 가득한 장소였다. 배우 최윤석이 기억하는 충무로 역시 영화를 동경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곳이다. TV 드라마를 박차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로 데뷔해 신상옥 감독의 <증발>로 영화계에서 ‘증발’하기까지 그의 여정은 충무로를 향한 동경과 그대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회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데뷔작 <이어도> 상영과 함께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중앙시네마를 찾은 최윤석. 수년 만에 감상한 <이어도>로 그는 옛 추억에 젖었다. 천남석 역으로 분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그저 부끄럽고 미숙하다"는 말로 짧게 맺지만 “단돈 30만 원 받고 50일 동안 모든 스케줄을 할애했던 데뷔작이지만 지금까지 찍었던 40여 편의 영화 중 가장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촬영과 파격적인 구성을 보여준 <이어도>가 30년 전 영화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라며 충무로 기인 김기영 감독을 회고한다. “당시에는 극장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했지만 많이 배웠던 영화다. 무슨 의미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일단 김기영 감독의 카리스마에 눌려 때로는 그저 시키는 대로 또 때로는 뼈대만 겨우 더듬으며 연기를 해야 했다.”
이후 <이어도> <짝코> <무진 흐린 뒤 안개> 등에 출연했던 최윤석은 주로 강렬하고 고독한 캐릭터를 도맡아 하며 내공을 쌓다 이윽고 배우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앵무새는 몸으로 울었다>로 흥행 스타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이어도> 같이 작품성 있는 영화보다 흥행영화를 많이 찍었다. 영화가 하도 많이 들어와서 들어오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당시 80년대에는 나와 하재영, 이영하 등 대여섯 명 정도가 돌아가며 주연을 독점했었는데 그래서 영화가 다양성을 많이 잃었던 것 같다.”
김기영, 김수용, 임권택, 신상옥 등 당대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작품에 모두 주연으로 출연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는 후회도 미련도 없다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충무로인이다. 지금도 5,60년대 영화를 손에 놓지 않고 특히 친남매처럼 지낸다는 최은희의 영화만큼은 영원한 팬을 자처하며 존경의 언사를 아끼지 않는다. 개인사정으로 영화를 포기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촬영 도중 중단된 정진우 감독의 <여명의 눈동자> 최대치 역만큼은 지금도 아쉽다”며 미소 짓는 최윤석. 그에게 충무로는 흑백사진 속의 빛바랜 역사가 아니라 찬란한 현재이다.
사진 김주영
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