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관 |
강원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은 양구군, 서쪽은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군, 가평군, 남쪽은 춘천시, 북쪽은 철원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26'~127°55', 북위 38°00'~38°40'에 위치하며, 면적 909.45㎢, 인구 2만5916명(1999년)이다.
1읍 4면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화천읍 아리이다. | | |
|
|
연혁 |
화천군은 원래 고구려때는 생천군 또는 야시매로, 통일신라때는 탕천이라 불리웠으며, 고려 종 14년 역방도의관할에 있다가 명종 8년 춘주도가 설치됨에 따라 역방도를 폐하고 이의 관할로 되었다.
그 후 조선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다가 인조 23년에 폐현하고 지금의 금화에 있던 도호부 관할로 되었다가 뒤에 다시 복현되었으며 고종 6년에 화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을사조약 이후인 1910년 하서면과 남면을 하남면으로 상면과 서면을 상서면, 간척면과 원동면을 간동면으로 각각 통.폐합하였고 1941년의 화천댐 건설로 인하여 간동면은 사무소를 구만리에서 유촌리로 옮기게 되었으며 동촌리와 미 수몰된 태산리의 일부가 화천면으로 편입되었다.
한편 1945년까지 춘천군의 관할에 있던 사내면은 광복과 더불어 공산치하의 금화군 관할로 있다가 6.25동란 이후 군정을 거치는 동안 다시 경기도 포천군에 속하였고 1954년 본군 관할로 들어오게 되었다.
수복이후인 1954년 각 면사무소의 위치가 변경되었으니 화천면사무소는 상리에서 아리로, 상서면사무소는 노동리에서 파포리로, 사내면사무소는 광덕리에서 사창리로 이전, 각각 오늘의 위치에 소재하게 되었으며, 1964년 간동면 구만리에 화천면 동촌출장소와 간동면 구만출장소를 설치, 유지해 오다가 1981년 동촌출장소가 폐지되면서 하남면 위라리에 강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화천면은 1979년 대통령령 제 9409호에 의하여 화천읍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리 단위 행정구역은 1954년 용암리에 삼화리가, 논미리에서 안평리, 유촌리에서 용호리, 구만리에서 도송리 신풍리에서 신대리, 구운리에서 장촌리, 노동리에서 부촌리가 각각 분리되어 7개리가 증설 오늘의 40개 법정리로 되었으며 행정리는 1961년 이후 1985년 3월까지 18회에 걸쳐 41개리가 증설되어 현재 화천군은 1개읍, 4개면 2개면출장소에 81개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정신 문화 연구원) | | | |
|
자연환경 |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동쪽은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높고 험준하며, 사명산, 일산, 재안산, 수리봉 등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광덕산, 남쪽에는 오봉산, 용화산, 화악산, 매봉 등이 있고, 북쪽에는 대성산, 적근산, 백암산 등을 연결하는 광주산맥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북동쪽은 높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차차 낮아진다.
하천으로는 군의 동부지역을 남류하여 흐르는 북한강과 그 지류인 마현천, 봉오천 등이 있다. 북한강에 건설된 화천댐으로 인하여 생긴 인공호수인 파로호에 의하여 많은 지역이 수몰되어 평야는 극히 협소하다.
기후는 내륙산간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기온의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9.4°C, 1월평균기온 -7.2°C, 8월평균기온 26.4°C롤 기온의 연교차가 33°C이상이나 된다. 연강수량은 1,037mm이다. | | |
|
|
유물유적 |
선사시대 유적으로 구석기시대의 것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신석기시대 이후에 사람이 거주한 흔적은 들은 발견되어 진다. 하남면 위라리에서 1964년에 간돌도끼와 돌공이가 출토되었고, 용암리에서는 선사주거지가 발견되었으며, 간동면 유촌리에는 고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산성지로는 유촌리 용화산에 산성이 있는데, 부족국가시대에 맥국의 왕이 난을 피하기 위하여 강돌로 축성한 것이라 하며, 그밖에 상서면 산양리의 대성사성과 화천읍 하리의 생산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 하남면 계성리 계성사지의 화천계성리석등과 위라리칠층석탑이 있으며, 절터로 하남면 원천리의 용봉사지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는데, 6.25전까지는 13층석탑이 있었으나 공산치하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그 밖에는 풍산리 보련암지, 동림리 운봉사지, 오음리 오음사지, 유촌리 성불사지 등이 있다.
사적지로는 화천읍 하라의 화천향교가 있으며, 사내면 용담리에는 조선시대에 서원 있었던 터가 있고, 화천읍 신읍리에는 1919년 3월 23일에 화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3.1운동 시위지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열목어와 황쏘가리가 희귀어종이며, 화천읍 동촌리에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와 신읍리에 수령 240년의 물푸레나무, 상서면 봉오리에 300년 된 서낭당 소나무가 있다. | | | | |
|
교육문화 |
고려시대에 기원을 둔 서당이 조선시대를 통하여 화천군의 주교육기관이 되었다. 이 지방의 전근대적 교육기관으로는 한말군내 유생들이 모여 화천읍 하리에 설립한 화천향교가 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사내면에 설립된 사내학교가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1908년 율촌공립보통학교에 이어 1912년 화천공립고통학교가 설립되어 각각 오늘의 율촌초등학교와 화천초등학교로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군내에는 1면1개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53년 간동중학교, 1955년 화천종합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87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화천문화원은 용화축전, 문화논단, 초청강연회 등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하고 자료연구를 통하여 향토문화의 계승, 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군립문화관이 있어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종교상황을 보면, 불교사찰 9개, 천주교성당 4개, 개신교교회 27개, 기타교당 3개가 있다. | | |
|
|
민속 |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거북둔지의 농목장치기, 횃불싸움, 농악놀이 등을 들 수 있다. 거북둔지는 화천군에 있는 지명이고 농목장치기는 이 마을에서 행하던 장치기놀이인데,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최근 군민의 축전인 용화축전을 통하여 재현되었다.
먼저 마을 청년들이 산에 가서 화목을 지게에 한짐씩 져서 경기장에 쌓아두고 두 패로 나뉘어 장을 친다. 장채는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지겟작대기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장을 상대방의 문에 쳐 넣으면 승리를 하게 되어 상대의 화목까지 모두 차지한다. 예전에는 이 놀이가 매우 성행하여 하루종일 걸렸다 하며, 지면 진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고 이기면 며칠분의 화목을 하루에 다 준비하곤 하였다 한다.
횃불싸움은 정월 보름에 동리대항으로 하는 상무적 놀이이다. 홰는 따로 만들지 않고 낡은 마당비에 기름을 부어 만들고, 해가 지면 홰에 불을 붙여 산정에서 망월을 하다가 옆마을과 횃불싸움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상대편을 말호 헐뜯다가 나중에는 횃불을 들고 진격하여 밀리는 편이 지게 된다.
또한, 화천에는 12개의 마을에 농악놀이가 있어 황소를 상으로 걸고 농악경연대회를 열었으나, 현재는 사내면 용담리, 사창리, 광덕리의 3개 마을에서만 하고 있다. | | | | |
설화민요 |
이 고장에는 미륵바위전설, 처녀고개전설등 지명에 얽힌 이야기가 다수 전해온다. 미륵바위는 화천읍 대리리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이다. 옛날 과거를 보려고 이 앞을 지나던 선비가 바위에 음식을 공양하였더니, 갑자기 초립동이 아이가 나타나 서울까지 동행하게 되었다.선비는 초립동이와 같이 주막에서 기거하다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화천현감이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초립동이는 미륵바위의 현신이었다 한다.
화천의 처녀고개 역시 과거에 관계된 유래담이 전하여온다. 언젠가 장래를 약속한 처녀, 총각이 이 고개 밑에 살았는데, 총각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는 바람에 둘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처녀는 고개에 있는 나무에 버선을 지어 걸어놓고 총각이 올 때를 기다렸으나, 총각은 오지 않고 세월이 흘러 버선은 낡아만 갔다. 처녀는 버선을 새것으로 바꾸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그만 떨어져 죽었는데, 바로 그날 총각이 과거에 급제한 뒤 이 고개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약수로 널리 알려진 냉정터전설이나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외지에서 날아왔다는 상서면 구운리의 비래암전설, 유랑민 30여호가 처음 사내면 사창리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였으나 마을 앞산의 호랑이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다가 중의 인도로 마을을 옮겨 호환도 없어지고 군내에서 가장 부자마을이 되었다는 안창마을전설도 이 고장에 전하는 대표적 지명전설들이다.
이밖에도 남자에 대한 그리운 정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서 그 무덤에 보랏빛 꽃을 해마다 피게 하였다는 도라지꽃전설, 상주가 소를 타고 묘자리를 구하려다가 소가 누운 자리에서 명당을 얻었다는 우득소이야기, 머슴이 부지런히 일을 하여 진사가 되고 화천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는 머슴살던 김진사이야기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이 된다. 노동요 중에는 논매기소리가 우세한데, 초벌 논매기에는 상사디어계인 뎅이소리를 부르고 두벌논매기에는 미나리를 부른다. 이밖에도 흥타령, 새타령, 양산도, 산타령 등의 타령류 노래가 불린다. | | |
|
|
산업교통 |
주요산업으로는 농업, 임업, 목축업 등이 있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휴전선에 접하여 있어 그 발달이 미약하다. 산업별 인구구성을 보면 농가가 38%인 데 반하여 비농가가 62%나 되는데, 이는 휴전선에 접하고 있어 군인가족이 많은 데에 기인한다.
경지면적은 총면적의 7.4%에 불과한 71.3㎢로 극히 좁고, 그 중 논은 27.6%인 19.7㎢이고, 밭은 72.4%인 51.6㎢이다.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옥수수, 감자, 콩 등이 주로 생산되며, 목축장려정책에 힘입어 한우, 젖소, 돼지, 닭 등의 사육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부업으로 양잠, 양봉이 행하여지고, 잣, 밤, 버섯, 약초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상서면 부촌리에 규석광산 1개소가 있으나 생산량은 많지 않다. 공업도 부진하여 종업원 5인 이상의 기업체가 6개소 있을 뿐이다.
수로식 수력발전소인 화천발전소는 1940년 착공되어 1944년 1,2호기가 완공되었고, 1957년 3호기, 1966년 4호기가 설치되어 현재 시설용량이 10만8000kW에 이른다
상업활동을 보면, 1930년대까지도 이곳에서 나는 통나무들이 떼로 엮어져 북한강을 따라 서울로 실려갔으며, 서울의 소금배가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와 물물교환을 하였으나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끊어졌다. 현재는 3.8일에 개시되는 화천읍 하리장과 5,10일의 사내면 사창리장이 있어 장날이 되면 각 고을의 주민들이 몰려와 각종 물건을 매매하며, 상점들도 이곳에 밀집되어 있어 상설시장과 같다.
하남면 논미리에서 3.8일에 개시되는 우시장에서는 하루에 수십마리의 소가 거래된다. 옛날에는 이곳의 특산물이 주로 팔려나가고 보부상이나 외부 상인들이 가져오는 것이 소금, 의류 등으로 한정되었으나, 지금은 전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각종 생활필수품이나 공산품들이 차로 실려와 판매된다.
교통은 춘천으로 연결되는 국도를 포함하여 모두 3개 노선의 국도, 3개 노선의 지방도, 14개 노선의 군도가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부지역은 이들 노선에서 벗어나 있어 불편하다. 또한, 북쪽의 군사분계선과 파로호로 인하여 교통상의 제약을 받고 있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