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참 순수한 친구 -
권다품(영철)
"라이브 카페 캐스타블"?
"색소폰 연주"?
만덕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언제 생겼지?
간판에 다른 글귀들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색소폰을 동경해 오고, 나도 색소폰을 한 번 불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오던 터라 호기심이 생겼다.
간판을 보자마자 올라가 보았다.
자그마한 무대가 있고, 무대 위에서 여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조금 있으려니까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중년 남자가 색소폰도 불었다.
멋졌다.
가게가 자그마하고 무대도 호화롭지 않지만, 가수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는 곳이다 보니, 부쩍 자주 갔다.
'만덕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 카페를 자주 드나들다보니 그 친구 내외 둘 다 친해져서 형 동생 하며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 친구는 "형 밥먹었어? 밥 같이 먹게 내려와." 하며 부르기도 하고, 나는 촌놈이다보니 시골에서 가지고 온 채소나 산나물들을 나눠먹기도 하고 ....
우리는 그렇게 형제같은 정이 들어갔다.
"혀~엉, 한솔이 요즘 뭐 해?"
"군대갈라고 휴학중이지."
"그럼 알바 아줌마 구할 때까지 한솔이 우리 가게에서 알바 좀 하라고 해. 알바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 있다고 그만뒀어."
그래서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하고 집에 쉬고 있던 작은 아들에게 좀 도와주라고 했더니, 녀석이 고맙게도 거부반응도 없이 그러겠다고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낯선 일일텐데도 말없이 열심히 했나 보다.
"형, 한솔이 어디서 알바 많이 해 봤어? 애가 형을 닮아서 일도 잘하고, 손님들한테도 인사도 잘해. 그래서 우리 가게 손님들한테 인기가 좋아서, 팁도 얼마씩 주고 그래."
"그렇더나? 지 태어나고 알바 처음인데 다행이다."
늦게 마치고 오면 "안 피곤하나?"고 물으면 "괜찮다." 고 한다.
다행이다 싶었다.
"아저씨랑 통화해 봤는데, 한솔이 니 일 열심히 잘 한다 카데. 그래, 어차피 할 일이라면 요리 조리 눈치보고 농땡이 부리는 것보다는 조금 힘들어도 열심히 해주는 게 좋다."
"할 일도 별로 없다. 손님들 나가면 테이블 치우고 행주 빨아와서 닦고, 테이블 밑에 쓸고 물걸레로 닦고, 그기 다다."
"오늘은 손님이 좀 많았다며?"
"8테이블밖에 안 됐는데, 규진이 삼촌이 좀 많은 편이었다 카데."
"8테이블인데 많은 편이라고?"
그럼 평소에는 그렇게도 안 됐다는 말 아닌가!
그 매상을 다 수입으로 잡는다고 해도 얼마 안 될 텐데, 월세다, 들어오는 술값, 안주 값이다, 물세, 전기세, 종업원 월급, 이것저것 다 빼고나면, 얼마가 남는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여태 저 친구의 표정이 그렇게도 밝았단 말인가?
마음이 좀 아팠다.
수필가 김소운 선생님의 "가난한 날의 행복" 이란 수필이 생각난다.
"....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두오' 남편의 낯익은 글씨체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저 친구에게 엄청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는 말이 기억난다.
그 힘들었던 때가 있어서 지금의 이 작은 행복이 더 고귀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래도 수입이 그렇게 적다보면 옛날에 잘 나갈 때 생각도 나고,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날텐데, 참 대단한 친구다 싶다.
미안하네!
나는 몰랐네.
언젠가 전화를 해서, "우리는 애들 데리고 회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 형 고마운데, 먹고 와~아. 이 시간에는 손님이 없어도 가게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야 돼. 또, 나 혼자 밖에서 먹고 들어가면 집사람이 혼자 먹어야 되잖아. 말은 안 하겠지마는 하루에 유일하게 저녁 한 끼 같이 먹는데, 혼자 먹으면 짜증나잖어! 다른 땐 몰라도 저녁은 같이 먹기로 약속을 했거든!"
아내에 대한 배려고 사랑이겠다.
자기만 밖에서 맛있는 걸 먹는다는 게, 자기 한 사람만 믿고 사는 아내에게 미안해 할 줄 아는 마음이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좀 부끄러웠다.
나는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난 솔직히, 그 친구의 꾸밈없는 그 웃음을 보고는 '장사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웃어야 할 때도 있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갖추지 못한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내 표현력이 모자라서 그 친구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해 할 줄 아는 가난한 수필가 김소운 선생님의 마음이 저 친구의 마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저 친구의 아내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은 나도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나는 저 친구처럼 맑은 웃음을 웃어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웃음잃은 내가 참 작게 느껴진다.
이 친구야, 자네는 착해서 복받을 걸세.
지금 비록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고렇게 웃음을 띠고 살 수 있다면, 자네는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것 같네!
꼭 돈이 많다고 자네처럼 행복을 담고 살 지는 못할 것 같네!
여태까지도 자네 가게가 잘되기를 바라고는 있었지만, 더 잘 되기를 더 많이 많이 빌겠네!
나이 몇 살 많다고 형이란 소리만 들었지, 자네를 몰라서 미안하네!
어이, 행복은 꼭 돈이 많아야 되는 건 아인갑다.
2010년 8월 23일,
넉넉하지 않아도 요렇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
나는 참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