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휘슬러·블랙콤 & 밴프 레이크루이스·선샤인빌리지
30년 전의 꿈,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날다
글 \ 사진 강원구 여행가 blog.naver.com/treewg
아침 일찍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떠나는 여행에 동참할 의사가 있느냐는 전화였다. 여행이 좋아 직업마저 내팽개친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덜커덕 결정을 하고 나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님을 이내 알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는데 무슨 스타일이 있을까마는 사실 기존에 떠났던 나의 모든 여행은 나 홀로 떠나거나 동행한다 해도 아내나 아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전혀 모르는 이들과 그것도 아홉 명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런데다가 스키투어라는 제목이 붙는 여행이라는 점도 사실 좀 곤혹스러웠다. 열 살이 좀 넘으면서부터 탄 스키지만 제대로 배운 스키가 아닌데다가 최근 들어선 안탄지도 제법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결정은 되었고, 순순히 따라 나서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휘슬러와 블랙콤 잇는 세계최고 높이의 곤돌라 공항에서 처음 만난 일행과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에 오른 순간에는 그 모든 걱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더구나 캐나다 밴쿠버공항에 도착했을 땐 걱정했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되었고, 제법 깜깜해진 저녁에 도착한 휘슬러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사실 휘슬러는 꼬박 1년 전에 가을여행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스키가 아닌 휘슬러의 오대호를 둘러보고 그들의 자전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엄청난 규모의 스키장은 과연 이곳이 내가 가을에 보았던 그 곳과 같은 곳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카나나스키스에서 헬기를 타고 바라보는 캐내디언 로키의 장관
스키어들과 보더들에게 왜 천국이라고 하는지 온몸으로 절감했고, 무엇보다 스키나 보드를 전혀 탈 줄 모른다 해도 그 하얀 동화처럼 펼쳐지는 설경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싸매 들고 이 먼 타국까지 스키를 위한 여행을 하는지 아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전부터 점심식사 후까지 스키를 타고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 무엇을 찍더라도 가슴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만족감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리라. 수없이 펼쳐지는 슬로프들은 마치 나에게 나부터 먼저 경험해보라며 손짓을 하는 듯 했고 그 어느 곳을 향해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살가움의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파우더 스노우’, 휘슬러의 눈은 그렇게 불려졌다. 살벌한 아이스가 곳곳에 등장하는 우리네 스키장의 눈과는 사실 많이 달랐다. ‘러브스토리’의 영화 속 장면이 영화를 위한 연출이 아니라 마치 눈이 파우더처럼 포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새삼 놀라게 했다. 하지만 파우더 스노우가 끝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광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2008년에 운행을 시작한 피크 투 피크(Peak 2 Peak)곤돌라가 그것이었다. 휘슬러 스키장 라운드하우스 로지에서 블랙콤 스키장 랑데부 로지까지 무려 4.4km를 10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연결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곤돌라였다. 이 곤돌라가 생기기 전엔 블랙콤이나 휘슬러 둘 중 하나만을 즐겨야 했지만 이젠 단 10여분이면 양쪽 산을 오가며 스키어들은 종횡무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대부분은 빨간색의 곤돌라지만 간간히 들어오는 은색 곤돌라를 운 좋게 타면 곤돌라의 바닥이 투명해 아래를 고스란히 볼 수 있고, 굳이 은색이 아니더라도 잠시 스키를 멈추고 지나는 길에 캐나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으니 말 그대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캐나다의 그 수려한 자연과 과학의 결정체인 곤돌라가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함께했던 일행들의 절반은 프로 스키어부터 스노보드 선수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전문가였다. 몇몇 초보들과 그 중간에 애매한 위치로 끼어있는 나까지 정말 다양한 구성원들이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한 것이다. 많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휘슬러는 여성적이라면 블랙콤은 남성성이 더 돋보이는 스키장이라 한다. 중간에 어정쩡한 위치의 내가 봐도 블랙콤은 좀 실력을 겸비한 후에 도전할 곳이라면 휘슬러는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도 했다. 휘슬러에서의 경험은 스키장이 전부가 아니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여를 이동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바로 스노모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 봄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옐로우나이프를 향했다가 생애 처음으로 경험을 했지만, 그 곳에선 드넓은 호수 위의 눈밭을 달렸다면 이번엔 그와는 정반대로 산속을 달렸다. 007영화 속에서나 간간히 보던 그 장면들을 내가 스노모빌 위에 앉아 경험하는 기분이란 말로 설명하기 조차 어렵다. 스노모빌을 타는 내내 양 옆으론 엄청난 설경들이 펼쳐졌고 끽해야 시속 30km의 속도였지만 산속에서 느끼는 시속 30km는 이미 도로 위의 100km 이상의 스피드 감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 이미 해는 산 너머로 훌쩍 넘어가고 스노모빌의 라이트가 유독 빛나고 있었다.
캐내디언 로키를 발아래로 보는 헬기투어

레이크루이스 스키장
휘슬러에서의 일정은 도무지 발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쉽고 또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 여행지는 바로 ‘캐나다의 강원도’로 불리는 앨버타주의 밴프였다. 레이크루이스, 모레인 호수 등 신비한 빛깔을 뽐내는 그 곳의 겨울풍경과 또 전혀 다른 느낌들의 스키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밴쿠버에서 캘거리 공항까진 1시간 20분이면 다다르는 가까운 거리이다. 물론 차로 간다면 10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첫 경험은 무엇이 될까? 캘거리에서 밴프로 향하는 길에 있는 카나나스키스 주립공원에서 헬기투어가 그 첫 선물로 기다렸다. 차창 밖으로만 봐도 그 흥분을 감추긴 어려운 캐나다 로키산맥을 하늘위로 올라가 발 아래로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또 다시 내 가슴이 뛰는 만큼 카메라도 함께 설레고 있었다. 더구나 헬기투어의 진짜 매력은 인디언지역에 착륙하면서인지도 모르겠다. 난생 처음 신어보는 스노슈즈를 신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평원과 숲길을 걷는 그 쾌적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바로 그 눈밭 위에서 나눠 마시는 한 잔의 샴페인이었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도 몰래 볼을 살짝 꼬집어보았다면 믿겠는가! 헬기투어를 마치고 가장 먼저 도착한 레이크루이스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고, 그 위엔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신고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소녀들과 어른들이 얼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캐나다의 국기나 다름없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이도 적지 않았다. 100년이 넘은 고고한 호텔 앞에 멀리 바라보이는 빙하, 하얗게 변해버린 레이크루이스, 이미 귓가엔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이 들리는 듯 했다. 왜 이곳이 세게 10대 절경에 선정되었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잠시 스키투어임을 잊게 할 정도였지만 그 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스키장 두 곳, 바로 레이크루이스 스키장과 선샤인빌리지 스키장은 휘슬러의 스키장과는 전혀 다른 맛과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두 곳 모두 밴프타운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아주 좋기도 했지만 그 보단 그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먼저 발길을 향한 곳은 레이크루이스 스키장이었다. 잘 정리된 슬로프도 놀라웠지만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나이를 물어보면 두 살에서 세 살이었던 그 아이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때론 아빠와 노끈 하나로 이어져있었고 심지어는 혼자서 신나게 활강하는 모습은 너무나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극성스럽게 아이들 시험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과잉보호와 진짜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교육방식의 차이는 신선하다 못해 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동행한 전문가들도 선샤인빌리지와 레이크루이스 스키장에 대한 느낌은 확연한 차이를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부터 어른은 물론 초보자에서 고급자까지 누구에게나 고른 만족감을 주는 스키장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향한 선샤인빌리지 스키장은 아직은 놀라움을 멈추지 말라고 속삭여주었다. 도대체 캐나다 스키장들의 매력은 어디까지인 걸까? 아기자기한 슬로프가 전문가들에게도 어필할 정도로 그 느낌들이 놀라웠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정상에 보이는 묘한 비석 하나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정상에서 북쪽은 브리티시콜롬비아주였고 그 나머진 앨버타주인 한 스키장이 두 개의 주에 걸쳐져 있던 것이다. 더구나 스키 인앤 아웃(In & Out)이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리프트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은 정말이지 하루쯤 묵어 보고픈 곳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겨울에 결혼하면서 허니문 장소를 추천해달라면 서슴없이 그 곳을 추천할 것 같다. 설퍼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번들산, 캐스캐이드, 그리고 밴프타운까지, 밴프에서의 감동은 아직도 내 심장박동 수를 빠르게 만들고 있다. 그랬다. 혼자가 아닌 단체여행이라 그리고 기존의 스타일이 아닌 스키투어라 고민했던 내 모습은 너무나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30년 전쯤에 스키를 배우면서 꿈꾸던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절대 이룰 수 없고 그냥 꿈으로만 남을 뻔 했던 그 모든 것을 이번 스키투어에서 이룬 것이다. 휘슬러 그리고 밴프는 30년 전 내 서랍장에 고이 담겨있던 그 꿈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어김없이 여행은 늘 나에게 큰 선물이다. ⓜ

밴프 선샤인빌리지 스키장의 전경. 아기자기한 슬로프가 인상적인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