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장자크 상페 별세 1주기 추모 작품집
“상페는 여기는 지우고 저기는 강조하면서
혹은 더하거나 빼면서,
미국의 역사적 순간을 자기 것으로 전유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삽화가로서 따뜻하면서도 위트 있는 그림과 글을 선보였던 장자크 상페의 별세 1주기를 추모하며, 상페가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려 낸 작품과 그를 기리는 칼럼을 엮은 『미국의 상페』가 출간되었다.
상페는 매혹적이고 때로는 억압적이면서도, 항상 활기로 가득 찬 미국의 모습에 감탄하고 압도당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얌전한 부르주아 도시라면, 그에게 미국은 <모든 이가 긍정적이며, 그때마다의 상황이나 삶의 변덕스러운 면모에 맞춰 적응하려 애쓰면서 저마다 나름대로 앞길을 헤쳐 나가는> 대중적인 나라로 비쳤다. 그는 자신이 영어만 잘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매력에 심취해 있었다. 상페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 때로는 슬며시 풍자와 해학을 더한 그림들을 통해 미국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상페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칼럼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상페의 오랜 친구이자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상페를 <짓궂은 숭배자이자 기꺼이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기록자>로 묘사하며, 그의 재즈를 향한 사랑은 물론 그가 삽화가로서 보낸 일상도 소개했다. 한편 또 다른 칼럼들에서는 달 탐사에 성공한 미국의 역사적 순간을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한 상페, 새로운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잡지 『렉스프레스』와 연을 맺은 상페, 센트럴 파크와 그리니치빌리지에서의 상페 등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상페는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우리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아주 미세한 것과 아주 거대한 것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삽화가, 장자크 상페
나로서는 아직까지 상페보다 더욱 빼어난 재치와 은근한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를 만나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허를 찌르는 상상력과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신통한 유머가 느껴지는 상페의 삽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이며 삶의 풍파를 헤쳐 왔을지(얼마 전에 출간된 『계속 버텨!』는 그 제목만으로도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결과만을 향유할 뿐, 그가 묵묵히 걸어온 그 지난했던 과정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 모든 어려움과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 주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야말로 상페의 삽화를 관통하는 두 상수(常數)가 아닐까 싶다. 힘겨운 우리네 세상살이에서 이보다 더욱 절실하고 필요한 요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의 삽화가 발휘하는 재치와 유머에서 이 두 가지가 빠져 있다면, 과연 그 재치와 유머가 상페다운 재치와 유머로 느껴지겠는가? ━ <옮긴이의 글> 중에서
발그스레한 연분홍 피부색과 통통한 볼살 덕분에 <보르도에서 가장 예쁜 아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장자크 상페는 아마도 요람에서부터 미국을 꿈꾸었을 법하다.
P.7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얌전한 부르주아 도시라면, 그에게 미국은 <모든 이가 긍정적이며, 그때마다의 상황이나 삶의 변덕스러운 면모에 맞춰 적응하려 애쓰면서 저마다 나름대로 앞길을 헤쳐 나가는> 대중적인 나라로 비쳤다.
P.8
새턴 5호의 발사와 세 명의 우주인이 벌이게 될 달 탐사를 앞둔 현장에 2천 명 가까운 기자가 몰려들어 열띤 취재 경쟁이 일어난다. 상페는 이 역사적 순간을 보름달이 비치는 몇 개의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달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요약해 표현한다. 거기에 우리 자신의 보잘것없는 인생사를 웃음거리 삼으려는 듯, 발사체를 향해 걸어가며 부부 생활의 애로점을 털어놓는 두 우주인의 대화를 슬쩍 곁들인다.
P.15
나는 여전히 당시의 전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나의 필설로는 당시의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에 불충분하다. 그 점에서는 예술가가 훨씬 유리하다. 자, 상페, 자네의 펜과 붓으로 자네가 경험한 아폴로호를 우리에게 보여 주게나.
P.20
우리가 그랬듯이 프랑수아즈 지루 역시 매주 상페의 만화를 고대했고,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 둘은 촌철살인적이면서도 가벼운 필치로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들면서 생각할 거리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단어 하나로 혹은 인물 한 명으로 시대의 모순상과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운명의 장난 따위를 그려 냈다.
P.38
뉴욕 주민들은 쉽게 감정을 드러내며, 행복에 겨워하고, 흥겨워하고, 살아 있음을 기뻐했다. 그래서 상페가 그린 인물들은 거대한 환경 속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절대 겁먹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