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특파원이 본 7일간의 우크라이나]
크림 뺏기는 순간에도 '우크라이나 잔다르크(티모셴코 前총리)'는 없었다
푸틴이 크림 합병 서명할 때 티모셴코, 디스크라며 병상…
장교 피격엔 대응사격도 안해
지도자들, 西方에 손 내밀기만… 분열된 國論 단합도 못 시켜
이성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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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크림공화국과의 합병을 선언한 직후, 크림반도에서 경계를 서던 우크라이나 초급 장교 한 명이 공격을 받아 숨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군부대에 무력 사용을 승인했지만, 대응사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일에는 친(親)러시아 자경단(自警團) 200여명이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부를 급습하고 러시아 국기를 내걸었는데도 이를 무력으로 제지하지 못했다. 지금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죄수처럼 군부대 안에 갇혀 있다.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거대한 자국 땅덩어리가 러시아 손에 넘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한때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자원과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갖춘 동유럽의 강국으로 평가받았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무능하고 분열된 지도자들이 국가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잔 다르크'라고 칭송받던 야권 지도자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푸틴이 크림반도 합병 조약에 서명하는 순간, 허리 디스크를 이유로 독일의 한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임시정부 총리는 러시아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요구에 "내 아내도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쓴다"며 맞장구치듯 말했다. 법무장관은 크림반도 침략에 대항하지 않고 "탈출하는 우크라이나 시민을 위한 수용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말로만 일전(一戰)을 외칠 뿐, 러시아에 맞서기 위한 방법을 내놓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지도자는 없다. 대신 이들은 미국과 유럽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정작 우크라이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티모셴코(위 사진). 우크라이나 2010년 대선 득표율. 우크라이나 인구 구성. 크림반도 내 인구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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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우방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강대국에 불과하다. 미국은 1983년 카리브 해의 소국 그레나다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전격적으로 침공해 친미 정권을 세웠다. 그곳 미국 대학생 1000명의 안전이 위험하다는 명분이었다.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크림반도에 파병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자력으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큰 무력감에 빠져 있다. 러시아 정규군이 78만명인 데 비해 우크라이나는 14만명이다. 러시아의 국방비는 780억달러(약 83조5000억원)로 우크라이나(16억달러)의 49배에 달한다. 더구나 2010년 모병제를 추진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전력은 더 약해졌다. 미국의 국제 문제 평론가 그렉 마이어 등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계 3위 핵 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을 포기한 것이 결정적 실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러시아의 힘에 부서져나가는 우크라이나 海軍사령부 - 친(親)러시아 자경단(自警團)이라고 주장하는 무장세력이 19일 크림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부를 급습해 사무실의 벽을 부수고 난입하고 있다. 이들은 기지 출입문을 용접기로 절단한 뒤 진입해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벽에 걸린 사진은 우크라이나 역대 해군 사령관들로 보인다. 그 뒤로 러시아군이 도착해 사령부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이들에게 총 한 발 쏘지 못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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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장악한 지난 1일부터 일주일간 크림반도에 머물면서 본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약점은 분열이었다. 경제적 격차와 인종 구성에 따라 동서(東西)가 갈렸고, 친서방이냐, 친러시아냐를 두고 싸웠다. 더 암울한 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강력한 국가 건설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크림반도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속수무책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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