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광석 노래에 푹 빠져 있다. 기타를 치며 하모니카를 불고, 호소력 깊게 노래하는 시인 같은 모습이 좋다. 그중에서도 "이등병의 편지"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남자도 아닌 내가, 게다가 군대도 안다녀온 내개 마치 노래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따라 부르며 울곤 했다. 아, 이등병의 편지! 그때가 언제였던가? 서로가 이상형이었던 터라 미치도록 사랑하던 남자친구가 사귄지 6개월 만에 군대에 갔다. "저...저기....염치 없는 건 아는데, 나 기다려 줄래? "흑, 알았어. 나 고무신 거꾸로 안 신고 기다릴 테니까 자기나 군화 거꾸로 신지 마. 약속이다!" " 그래 고마워! 난 영원히 변하지 않을거야. 제대하면 너만을 지키는 영원한 군인이 될게!" "나도! 해 보고 달 보며 꽃 보며 자기만 생각할게."
그렇게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다. 매일 만났던 남자친구가 떠나고 연락조차 안 되고 보니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불안정했다. 노심초사! 학수고대! 남자친구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바보야. 너 좋다고 쫒이다니는 남자들 다 뺑뻥 차버리더니, 너보다 세 살이나 어린 애를 만나서 군대까지 기다리겠다니, 너, 제정신이니?" " 그러게 말이야. 군대만 갔다 와도 3녀인데, 언제 제대해서 기반을 잡겠니? 게다가 집도 무지하게 가난하다면서!" 직장 동료들은 어린 남자친구의 고무신이 되길 자처한 나를 도시락 싸 들고 쫒아다니며 말렸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라. 그렇게 안 해도 이미 나 힘들어! 난 3년 동안 꼭 기다릴 꺼야. 이 콩깍지 떼지 않을 거라고..."
바로 그 시점에 남자친구의 동생이 회사 기숙사로 나를 찾아왔다. 남자친구가 훈련소에서 훈련이 종료되면 자대배치 받기 전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고 그때 나를 꼭 오라고 했다고 전해주러 온 것이었다. 메모 된 시간과 정보를 받고, 남자친구 주려고 음식도 만들고, 편지도 쓰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너무도 보고 싶어서 말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런는지 밖은 캄캄하고 어슴푸레한 새벽녘이었는데, 기숙사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서 하늘하늘하고 여성스러운 꽃무늬 원피스와 하이힐까지 빌려 신었다.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ㅣ대한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도 공들여서 했다.
간밤에 싸놓은 치킨과 음료수, 초코파이, 김밥까지 들고 버스를 탔다. 논산은 태어나서 처음가는 초행길이었다. 혹시나 늦을까 봐 미리 준비해서 나왔는데 멀미가 심했던 터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가는 길에 내렸다가 다른 버스를 다시 타기도 하고 여러모로 시간을 지체해서 남자친구와 약소괸 시간이 다 되어갔다. 아직 남자친구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내 상태는 기진맥진! 온몸에 진땀이 흘렀고, 간신히 10분 정도남았을 때 논산훈련소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훈련소 입구에 있던 군인들은 내 사연을 듣더니만 안타가워했다.
" 지금 가면 남자친구 얼굴이라도 볼 수나 있을지 싶지만, 내가 안내해 줄테니 빨리 뜁시다. 군인의 도움을 받아 뛰려니, 내가 왜 하이힐을 신었을까? 하늘하늘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을까? 후회되었다. 남자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로 남자친구를 주려고 싸 온 음식들은 그 군인에게 건네주고, 꽃무늬 원피스를 무릎 위로 묶고, 힐을 벗어 두 손에 들고 뛰었다. 뽀족뽀조간 자갈들이 밟혀서무척이나 아팠다.
우여곡절 끝에 훈련소 연병장에 도착했다. 연병장엔 까까머리 군인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이 가득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훈련병들은 이미 가족들과 만난 후 이동하려던 것 같았다. 맘이 몹시도 급했다. 눈을 이리저리 돌려 남자친구를 찾으려 했으나, 똑같은 까까머리 사이에서 아무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날 에스코트해준 군인에게 남자친구의 이름과 편지봉투를 건넸다. 그것을 들고 그 군인이 연병장에 들어가더니 맨 앞 소대장인 듯한 분께 사정 말씀을 드리는 듯 보였다. 그 소대장은 몇몇 군인과 함께 남자친구를 찾아주었다. 저 멀리서 남자친구가 소식을 듣고 나를 향해 뛰어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울어버렸다.
그때 연병장에서 "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몇몇 군인들은 자기 여자친구가 생각나는지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정말 고맙고 고마워, 또 고마워. 일찍 오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해. 오는 도중에멀미해서..," 괜찮아. 이렇게라도 너 얼굴 봤잖아. 얼굴 보니까 너무 반갑고 좋다. 힘 난다. 이제!"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꿈 같은 시간이었다. 남자친구와의 짧은 만남은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짧은 포옹 후, 소대장의 부름으로 남자친구는 대열로 복귀했고, 이내 뒤로 돌아 한 줄씩 빠져나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눈으로만 남자친구를 쫒았는데, 까까머리 남자친구의 머리가 자꾸만 아래로 숙여지는 것이 나와 같이 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 시야에서 남자친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제야 난 룸메이트가 공들여 만들어 준 긴 머리가 서로 엉겨 붙어 사자 갈기처럼 변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맨발이었고, 자갈밭을 뛰어와 발에는 피까지 나고 있었다. 온종일 준비한 음식들은 주인에게 가지 못했고, 나는 대신 나를 도와준 군인들에게 주고 돌아와야 했다.
멀미 때문에 예쁘게 치장하고 공들여 준비한 음식들이 빛을 못 봐서 속상했다. 글서 돌아오는 내내 버스안에서 통곡에 가깝게 울었는데, 사정을 모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옆자리에서 나를 살포시 안아주며 "괜찮아, 괜찮아. 어느 나쁜 놈한테 차인 모양이네. 이별은 누구나 하는 거야. 나도 5번이나 차였어. 괜찮아." 그 후에 난 3년을 꼬박 기다렸고, 남자친구는 군화를, 난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고 제대 후 다시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지 " 이등병의 편지" 만 들으면 그때 그 시절 논산훈련소 연병장의 꿈 같은 영화 같은 장면이 떠오르고 어김없이 눈물마저 흐른다.
첫댓글 어성의 글인데,
감동의 소설 같은 글입니다.
설날 명절 연휴
가족들이 모여 음식 만드며 대화 나누는 저녁시간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괜히 슬퍼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