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22:42
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예수님 사랑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때에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구할 곳이 없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예수님처럼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난 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섬겨야 할지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모르겠던 3주의 시간을 잘 보내게 해주신 은혜도 감사하고 순간순간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주님!
간절함을 쏟는 기도를 드리되 그 간청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성숙한 자녀이고 싶습니다.
베드로의 실수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패임이 되게 해주신 예수님!
저의 모든 실수가 주님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골짜기가 되도록 축복해 주세요.
아멘!!!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하며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 계셨음에도, 그는 예수님을 묵상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더 많이 묵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목표와 비전이 너무 컸던 나머지, 옆에 계신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결국 그분을 놓쳤습니다.
저 또한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계획, 그리고 나만의 목표를 더 많이 묵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함께 계시지만, 내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앙이 될까 두렵습니다.
성찬을 통해 예수님께서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그 말씀을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내 생각과 뜻을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삶, 예수님으로만 충만한 삶을 살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의 결심과 결단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깨닫습니다.
몇 번의 유월절을 보내며 예수님과 음식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을 함께 하였음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또한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다 (33절)
말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전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옆에서 함께 하였던 제자들도 이럴진대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 깨닫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제게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께서 하심이 나와하셔서 저의 결심과 결단이 아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제게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눅22:54]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베드로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랐던 제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할 때는 용감하고 적극적이며 물 위를 걷었을 정도로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가자 굳건했던 믿음이 깨어지고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맙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이 부르시고 성령이 임하시다 그의 설교에 삼천 명이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의 편의에 따라 주님을 멀찍이 따르려 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제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온전히 저의 삶을 내어드리기를 소망합니다
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오늘 닭 울기전 3번을 부인하였습니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부인을 한 베드로는 곧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오늘 닭 울기전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같은 모습 제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니에요. 결코 부인하지 않아요. 그래놓고 뒤돌아 세상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죄송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우리는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움, 불안함 이 모든 것을 예수님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며 의지한다면 우리가 주를 부인할 일은 없겠지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기에 온전리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못하기에 부인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하지 않고 온전히 의지한다면 너무 좋겠지만 이러한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거치며 깨달음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더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이를 부인하지 않는 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하지만 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제목 가운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우리 상황에 맞게 하나님께서 일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실히 몰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족들 모두 이 일로 시험에 빠지지 않고 더 기도하는 자리에 서게 하시고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로 나가는 귀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잎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기에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칭찬도 받았고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제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치명적인 오점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건입니다. 왜 그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베드로는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살다 보면 베드로와 같이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 이겠지만 의의 최후의 승리를 품고 사는 믿음을 가지고 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의 최후의 승리가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