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위령의 날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왕년에’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노인은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내가 왕년에’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하면서라고 자기를 반성하기보다 내세운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도 ‘그렇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반성합니다.
이렇게 ‘왕년에’를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을 불행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계속 과거의 시간에만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그럴까요? 아마 미래의 시간에도 분명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지금을 떠올리며 ‘왕년에’,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지금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습관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을 탐내는 것입니다.
습관은 계속 반복함으로 인해 생기게 됩니다. 제가 새벽형 인간이 된 것도 오랫동안 반복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처음부터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과거를 말하는 것도 계속해서 그 시간만을 바라보려 하기에 습관이 된 것입니다.
습관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고, 나에게 딱 맞는 시간임을 계속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연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지금 힘차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죽은 모든 이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맞이할 죽음을 생각하며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 지금껏 살아온 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그럴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뇌를 측정해 보니, 심장이 멈추기 전 30초 동안 과거를 회상할 때 나타나는 뇌파 활동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과연 그 30초 동안 어떤 과거를 떠올릴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때, 제대 앞에 엎드립니다. 하느님과 교회 앞에 완전히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주마등처럼 저의 삶이 떠올려졌습니다. 어떤 삶일까요? 감사한 일들, 사랑받았던 일들이 마구 떠올려졌습니다.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나인데….’, ‘이렇게 죄 많은 나인데….’ 그런데도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직전에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을 잘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기억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후회하는 삶, 과거에 연연하는 삶, 걱정하는 삶이 아닌,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안주하지도, 안일하지도 않으면서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