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순교자
성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로마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철학도 연구했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어는 은수자에게서 가톨릭에 관한 것을 듣고 이것이야말로 모든 세상 학문을 초월한 천상의 진리임을 깨닫고 즉시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모든 재산, 장식품까지 전부 팔고 검소한 수도 생활의 길을 밟았다.
그 당시 갈릴레오 황제와 같이 로마 제국을 다스리던 막시미아노는 가톨릭을 전멸시키려 온갖 잔인한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박해는 3년간 계속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성녀 가타리나 역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게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가타리나의 재판은 막시미아노 황제가 직접 담당했고 한다.
본래 이탈리아의 농부의 아들로 군대에 들어가 병졸부터 차츰 출세해 황제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가타리나의 미모와 심원한 학식에 감탄하며 여러 대학자를 불러 성녀와 토론을 시켰던 즉, 성녀의 명쾌한 답변과 날카로운 질문에는 모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어 오히려 가톨릭의 도리가 진리임을 인정하게 되었으므로 황제는 크게 노하여 그들까지 모두 사형에 처했다
막시미아노는 거듭 가타리나를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갖은 감언 이설로 배교를 강요했다.그러나 처음부터 완강히 거절하므로 결국 가타리나는 사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사용한 사형 방법은 둘도 없는 참혹한 것으로 많은 쇠갈퀴가 달린 바퀴를 돌리면서 몸을 잘라 죽이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도우심인지 사형집행이 시작되는 찰나 바퀴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칼로 목을 베어 형을 끝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성녀 가타리나의 유해가 무슨 이유로 시나이산에 매장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같은 박해에서 추방, 유형 당한 사람들이 그 시신을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