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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삼팔선을 넘지 않은 MIG-15기는 소련산이어서 혹시 전장의 남쪽에서 추락을 하면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을 했다는 증거가 되어서 미국으로 부터 발목을 잡힐[binding]염려가
있고 3차대전으로 불이붙을것을 우려하여 항상 북한에서 대기를 했지 남한의 상공으로 내려온적은 없
고 압록강 주위애서만 활약했다.
오른쪽 날개위에 붉은 별 마크가 간신히 보인다.
혼자서 엔진위에 타는 셈인데 저쟁 때 성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엠아이지
제트기는 드럼통을 굴리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독일에서 발명을 한 후퇴익 설계와 후익이 높은것을 현제 모든 여객기에 사용한다.
앞바퀴는 디자인이 잘되어 좋은 쿠션을 가질것 같다.
비행기는 랜딩을 할적에 바람을 안고 내려야하는데 그가 김포비행장에 내릴때는
바람을 뒤로하고 내리니 다른사람이 보고는 어떤 미친놈일거라는 생각을
했다는데 속도가 빨랐지만 운이좋아서 안착을 했단다.
어쩌면 이 미그기는 미국으로 귀화를 한 북한의 공군 노금석대위가 가져온
것과 동종같은데 덜레서 공항옆 항공기백여대를 보여주는 달레스 박물관에 전시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건 10만달러의 현상금을 받았고 미국으로건너갔는데
아무도 상금에대해선 모르고 있었단다.
작은 비행기는 천정에 매달기위해서 돔형건물로 되어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주차장사용료는 내야한다.
1951년 내가 어릴때 '호주기'또는 '쌕쌕이'라고 불렀던 미국산 남한의 제트기는 날개가 몸통보다도
더 긴데 록히드회사에서 만들어 1948년부터 투임이 되는데 이름은 '슈팅 스타'이다.
날개는 직선인데 양 끝에는 고구마 같이 생긴 예비 휘발유 통이 달려있으며 한개가 떨어지면
한쪽이 무거우니 45도각도를 유지하면서 기울어서 비스 틈이 날아가는것을 내가 목격했다)
도약의 계기-1
이글은 이미 쓰여 진 것을 제가 모아서 3번에 걸쳐 펴 보려 합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3개국이 동맹을 맺어서 연합국을 상대로 싸운 2차대전도
한국전쟁도 미국이 앞장을 서는데 1950년 11월 미군들은 압록강 혜산진까지
북진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땅을 바라보며 웨이크 섬 회담에서
맥아더(Macarthur)가 트루먼에게 한말을 상기하며 성탄절은 가족들과
고향의 집에서 보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꿈도 잠시뿐 중공군이 압록강 철교를 건너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철교 폭파를 목적으로 오키나와에서 여러 대의 B29 폭격기들이
출격을 목적으로 발진을 했다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폭격을 하기 바로 직전 저 멀리서 육안으로 파리만
한 물체가 날아오는 것이 목격 되었으며 가까이에서 보니
꼭 제비처럼 생겼는데 굉장히 날렵했단다.
직선으로 나는 b-29폭격기와 공중곡예를 벌이는 전투기는
상대가 아니되니 추락을 하고 만다.
미국의 한 항공기 설계사가 자기가 한번 이 전투기를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여 그를 태운 비행기를 사방에서 엄호를 하면서 압록강
부근에 들어갔을 때 똑같은 적기가 다시 나타나 아군기들을 격추했는데
이 과학자의 비행기도 추락하고 말았다고 그 당시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기밀이어서 신문에는 발표가 없었다고 초등학교 4학년 선생님은 첨가 했다.
가끔 미공군기가 만주쪽으로 가보면 평지에 중공군이 많이보여서 상부에다가
보고를 했다는데 전쟁을 더 확대를 하므로서 멬아더는 정부로부터 만주원폭을
사용하는 허가를 얻어서 북한을 없애고 더 큰 전과를 생각했는지도 모를거라는 내생각이다.
그 당시 트루멘이 승낙을 했더라면 한국이 통일이 되었을것인데 오히려 맼아더는
자기가 스스로 묘혈을 파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어에는 포도당, 맥아당[麥芽糖]이 있어서 맥아더라고 하는데 'Macarthur'에서
'c'를 'k'로 발음하니 맼아더가 맞는 말이고 원주민 발음도 '맼아더'라고 발음한다.
B29는 몸집이 크고 또한 직선으로만 날게끔 고안되었으며 아래, 위, 옆, 뒤 등
사방을 커버할 수 있는 두정씩 뭉쳐진 기관총들이 장착되어 있지만 피스톤
엔진이 제트엔진을 못 당하듯 이 조그만 미그전투기한테는 꼼짝 못했으니
그때의 참패는 실로 충격적이었는데 미그기는 속도가 너무 빨라 금방 조그만 점으로 보인단다.
그당시 설사 살아남아서 동해를 건너던 비행기들도 바다에 추락했으며
혹시 오키나와 본대(本隊)에 돌아 왔을 지라도 구멍이 너무 많이 뚫린
것은 수리불능이니 바다 속으로 수장 폐기(廢棄)된 것들도 많았고 랜딩기어 파손으로
바퀴 없이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가 불 타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기록영화에 보면 중공군은 한 줄로 서서 행군을 하는데 항공촬영에는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꾸불꾸불하게 보였고 전쟁터에서는 아군이 계속
총을 쏘아도 제 1진이 무너지면 제2진이 죽은 자의 총을 집어 다시
공격하고 3진이 시체를 넘어서 횡대로 계속 들어오니 중과부적이 되어
아군의 한정된 화력과 군인으로는 버틸 재간이 없으니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단다.
내가 어릴 때 국군들은 조중군(朝中軍)을 똥되놈(두만강 부근에 살던 미개민족)또는
괴뢰군(소련의 꼭두각시)이라 불렀는데 인민군도 한국군을 괴뢰군(미국의 꼭두각시)이라
하여 쌍방이 서로를 비하했다.
인민지원군이라고 부르는 중공군은 30만 명(인민지원군이라 부르는데 18만 3천명전사)이나
되어 인해전술 때문에 서부전선의 퇴로가 막히고 장진호(Chosin; 미군은 일본산
지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초신’이라 부른다)허천강 (Huchun River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것은 장진강, 허천강, 부전강은 같은지역에 위한다고 초등학교
4학년때 배웠다)등지에서 포위된 적이 있는 미군의 동생이 나에게 들려준 포위상태를
그는 공포의 시간이라고 했고 포위망을 뚫으려고 계속 아군전투기의 엄호를 받았단다.
삼수갑산이 이지역이 되는데삼수는 장진강 허천강 부전강이고 갑산은
산들이 갑옷처럼 생겼다는 데서 온말이란다.
이지역은 높은 고지가 되니 대단히 추운곳이어서 미군들의 켄푸드가
얼어버렸는데 그것을 먹으면 설사를 했다고 하며 부상병의 상처의 피부가 얼어버렸단다.
내가 가본 화천댐의 낙차는 74.5m이지만 1,200m고지에 위치한
호수인이곳의 낙차는 707m나 되니 1930년에 만든것은 13만 kw나 되었다는데
자금은 전력을 더 많이 만든단다.
연합군이 실수를 한것은 평양과 원산을 연결하는 전장[戰場]은 좁지만 더
윗쪽으로 올라갈수록 일선[후방의 반대말]이 두배로 넓어진다는생각을
못한것 같으며 중공군과 아군의 비율이 1당 10이니 포위가 될수밖에 없었고
후퇴가 용이한 퇴로를 뚫어야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 때 건조된 화물선 메레디트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는
처음에는 최고로 약 2천명 생각을 했으나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최고
14,000명을 태웠는데 부산에서 하역을 하고 흥남으로 갔다가 피난민을
실은 후에 거제도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한국의 문대통령부모님도
이배에 타게 되었으며 부산항은 피난민이 너무많아서 거제도로 가게된다.
인터넷에는 메르디스라고 되어 있는데 'th'는 혀를 앞니사이에다가 대고
내는 발음이어서 한글에는 없으며 '드'에 가까우니 '메르디드'가 보다 더 정확하다.
후송을 할 병기나 병참도 많았지만 버리고 피난민 10만명을 태워서 구해준
미국인의 인류애에대해서 감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작전 성공 보고를 받은 당시 미국 트루먼대통령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언급했다고 알려져있단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비는 쓰지 못하게 다이너마이트를 감아놓고 원격조종으로
폭파를 한 다음 남하하여 피난민을 부산항이나 거제도로 분산을 시켰는데
불행하게도 그 당시 피란민이 너무많아서 미쳐 승선을 하지 못한
사람은 가족과 생이별이 되는데 ‘굳세어라 금순아.’ ‘나는 울었네.’
등의 대중가요가 그 후에 생겨났다.
‘굳세어라 금순아’ 의 끝에 오는 가사로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은 지금에 와서 화해가 무르익으니
‘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배는 피난민 전원을 태우지 못하고 떠나니
이산가족이 되었다.
내가 그 당시 배운 대중가요에 ‘함경도 사나이’가 있다.
흥남부두 울며 찾던 눈보라 치던 그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에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항구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구나
영도다리 난간에서 누구를 기다리나.
한국전에서 발생한 미군의 사상자가 164,670명이어서 UN 군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명과 물자의 손실을 보았단다.
지금도 한국에 있는 전쟁대비 확보병기 재고(War Reserve Stock Ammunition)는
항공기 100대를 포함해서 3년간의 한국 국방비에 해당하는 140억불이 된단다.
오래전에 책방에서 사서 지금도 집에 있는 ‘2002-3년연감[National almanac]’에
의하면 미국 군인 수는 1,414,000명이고 국방비는 3,220억불로 한국에 비해 28.75배가 된단다.
한국군에서도 사용하지만 4각형의 방수천의 복판에다가 구멍을 뚫어서
만든우의 인데 입으면 우의가 되고 치면 몸을 덮을 수가 있다.
그 때의 중공군들 모두 판초(poncho)우의를 허리에 매고 다닌 것은
중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에게 남자라면 “우장과 거짓말”
이 2가지만은 꼭 지녀야 한다. 라고 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훈 때문이란다.
대장부를 한국적으로 보면
‘불의와 타협은 금기’ 이고 일본으로 보면
‘진정한 사무라이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이지만 중국적으로 보면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초지를 포기 할줄 도 굽힐 줄도 알아야 된다.’
는 차이점이 있는데 ‘가지 다원화(多元化)’ 시대에 사는 우리로는 선택이 부존재(不存在)다.
해방 후 어른들이 일을 잘하면 웬만하면 “다이조부 다!”라고 말씀 하여 내
딴에는 굳잡(good job)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대장부(大丈夫)라는 말이었다.
1952년 거제도에는 132,000명의 포로가 수용되는데 옷은 노랑과 빨강색으로
만약 탈출시 쉽게 눈에 띄도록 고안된 것 이었단다.
북으로 가겠다는 자동송환과 남한이나 제3국으로 가겠다는 자유송환의
2가지로 분류되었는데 남한에 눌러앉고 싶지만 가족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는 포로도 있었단다.
감시가 소홀한 포로 병원에는 거짓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어서 쪽지로
북한과 연락이 닿았으며 군관(장교)들을 수용한 76수용소에서 돗드소장을
납치하라는 남일의 지령을 받고 1951년 거짓 투항하여 포로들속에 섞인
전 북한 노동당 황해도 부책인 박상현을 위시한 좌익계통의 포로들이
수용소장 면담을 요구하는 바람에 비상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면담하는
도중 여러 명의 포로들에게 돗드 소장(所長; General Francis Dodd, 小將이 아님)이 인질로 붙들리게 된다.
강제 진압을 하면 그의 신변이 위험하게 되어 포로들이 요구 하는 대로
포로 학대시인, 고문, 전원송환보장, 포로대표단 구성, 원자탄 실험무기에 포로를 사용,
등 강요에 의하여 진술서를 쓰고 그가 사인한 서류가 판문점에 제출되어 아군이 큰 피해를 보았단다.
3일 만에 새로 임명된 콜슨 준장이 서명을 하는 바람에 돗드 준장(准將)이
석방이 되었는데 두 소장(所長)은 대령으로 강등되며 콜슨 준장은 9일 만에
소장에서 전격 해임되니 사상 최단명이 되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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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쟁사에 역사적 인것과 전투용 비행기등
잘읽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
폭격기는 Bomber 'B'
전투기는 Fighter 'F'
수송기는 Cargo "C'가 된답니다.
근현대사에 해박하시고 군사학적인 안목도 갖추셨네요.
한국전쟁에 얽힌 비화를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휴전 다음 해, 태어난 저로선 실감을 제대로 못 느끼는 세대지만
이렇듯 당시의 상황을 글로 알려주시니 이해가 더 가네요
또다시 전쟁으로 인한 수없이 많은 애꿎은 죽음의 원혼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한국전쟁때 주검을 많이 목격했답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답니다.
감솨요
당시의 전쟁사를 공부하는
느낌이지만 잘 모르겠어요
애 써 주신 글 즐감하며
배움에 감사 합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사람축에 속하네요.
감솨요
맥아더 장군의 말대로 만주를 폭격했드라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변했을 텐대요
1983녘 이웅평대위의 미그기가 떠오르네요
이 미그기가 혹시 노금석대위의 것인가 해서 자세히 실폈는데
아니고 다른기종이었답니다.
우리 나라를 위해 죽은 미국 군인이 164760명이나 된다니...
지금 생각해도 마음의 아픔니다
너무많이 사망했군요
아직도 약 3만명을 찾는다고 발굴단의
영상을 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