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후 무대와 관객의 상황을 포착하여 노래로 표현했다는 것은 젊은 대학생들 특유의 참신한 발상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의 상황이란 격정의 감정을 쏟아 낸 후 깊은 적막의 세계로 빠지는 대단히 이례적인 감정의 순간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난 후에 경기가 끝난 후 느끼는 아쉬움의 시간, 경기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다가 시합이 종료된 후에 느끼는 깊은 허전함, 몇 날 며칠을 시험에 매진하다가 시험이 끝나면서 느끼는 홀가분함 등
우리가 살면서 온 힘과 노력을 쏟아붓다가 그 시간이 끝나는 상황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는 특이하게 이런 순간을 노래로 승화한 작품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의 상황은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힘은 고갈이 되지만, 환희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의 시간은 격정의 감정이 사그라지는 허탈감의 극치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고 무수한 감정이 넘나드는 순간입니다.
무대공연이 끝난 후의 공허감 때문에, 일부 가수들이 마약이나 술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감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연 후의 상실감, 허탈함, 희열 등의 복합 감정을 못 이겨서 술에 찌든 가수가 꽤나 많습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떤 가수가 한 말이 문득 기억납니다.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으며 콘서트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그 몇 배나 더 큰 쓸쓸함이 돌아온다."
그렇게 말하는 연예인의 삶에 대해 이해가 간 정도였지만, 이제 와 ‘연극이 끝난 후’를 들으며 되짚어보면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는 조명받던 시절, 바쁘게 살던 시절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그 조명이 꺼질 때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라는
가사처럼 공연이 끝난 후의 세트는 정적만이 남아 마치 시간이 나를 위해 잠시 멈춰있는 미지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커튼콜을 모두 마치고 음악의 가사와 같이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던’ 배우들은 어느새 연기라는 가면을 벗고
커튼의 암막 속으로 사라지고 이후에는 연출과 제작팀의 무대 철거 작업이 이어집니다.
배우를 따라다니던 조명들은 철거팀을 향해 제 마지막 빛을 다하다가 마침내 작업이 끝난 후에는 제 갈 길을 잃습니다.
그다음에는 자리를 채워 그들의 극을 지켜보고 반응하던 관객들이 떠나간 연극이 끝난 후의 객석을 얘기합니다.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라는 가사처럼 관객도 연극의 일부로 함께
참여하며 치던 힘찬 박수와 호응은 연극이 끝난 후 커튼이 무대를 덮기 위해 내려온 뒤에는 제 갈 길을 향해 떠나갑니다.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은 마치 파도가 휩쓸고 가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 마냥 고요한 정적만이 가득한 바다처럼 객석이라는
또 다른 무대 위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정적만이, 그리고 침묵만이 흐릅니다.
노래의 마지막 구절에는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라는 가사로 내용을 끝맺습니다.
연극이라는 짧은 시간은 우리의 모든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이게 할 수 있는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는 장소로 보입니다.
극 중 인물들의 감정에 휩쓸려 그들의 불행에 울기도, 때로는 성공에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은 관객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감정에 이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관객은 떠나가고 사람이 떠난 공간에는 결국 정적과 침묵만 남습니다.
세트를 비춰주는 화려한 조명, 그리고 연출의 상상력을 조화롭게 엮어낸 연극의 무대 세트는 관람객들에게 기쁨, 슬픔과
같은 몰입의 경험을 향유하게 합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난 후의 세트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무대를 빛내던 배우들은 커튼콜을 마지막으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따스하게 온기를 내주던 조명마저 꺼진 버립니다.
'연극이 끝난 후'는 관객이 떠난 후 홀로 남은 무대, 그리고 관객들이 지나간 자리를 통해 홀로 남아 보는 세트라는 공간을 재해석합니다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발표된 ‘연극이 끝난 후’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어떻게 이런 개성 충만한 작품이
발표되었나 감탄이 나오게 합니다.
그 암울하고 격동의 시절에 이렇게 감성적인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나 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1980년은 정말 어수선 한 한 해였고, 여러 가지 사건도 일어났었던 해였습니다.
가장 비극적이었던 5.18 민주 항쟁을 겪어야 했던 무섭고 힘들었던 지긋지긋한 한 해였습니다.
민주화와 군부의 폭거에 항거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최루탄이 터지고 눈이 따갑고
밤낮으로 시끄럽던 때였습니다.
최루탄 냄새가 그만 좀 났으면 하는 절망의 시대 1980년 11월 8일 MBC 대학가요제가 열렸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저항의 노래를 부르던 젊은이들의 신선한 노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행쟁"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매년 여름에 열리던 대학가요제가 그해에는 11월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의 대학가요제와는 다르게 쌀쌀했던 날씨에, 그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쓸쓸함과 공허함에 대해 노래하는
이 곡이 시간을 거슬러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시대적 분위기가 듣는 이에게 느껴집니다.
당시 1위 곡 '꿈의 대화'에 밀려 은상을 수상하긴 했으나, 특유의 기타 리프와 여성 보컬의 중성적인 목소리에서 나온
재즈 필에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며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있습니다.
1등만 최고로 기억하고 있는 시대에 방송과 다운타운에서 은상 수상곡이었던 그룹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래와 가사가 수준이 높은 곡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노래였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가 일본 시티팝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 일본 노래를 표절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블로거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깁니다.
그러나 음악평론가나 전문가들은 이런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윤수일, 김현철, 김완선, 빛과 소금 등의 음악이 일본의 시티팝과 유사하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일본 시티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했던 음악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음악 스타일을 일본의 엔가에 적용한 것으로 퓨전 재즈, 애시드 재즈, 신스팝 등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스타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샤프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6인조 그룹입니다.
최명섭(성균관대), 양인호(연세대), 임태환(연세대), 노기영(건국대), 최성진(경기대), 김영란(숙명여대), 조선희(숙명여대)가
당시의 멤버인데, 이들 중 최명섭은 '세월이 가면'의 가수 최호섭의 형으로 이 곡의 작사 작곡을 책임졌습니다.
멤버는 7명인데 6인조 그룹이라는 건 대학가요제에서 실제 공연에 참가한 멤버가 6명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가요제 녹화영상을 보면 사회자가 소개하는 출연자는 최명섭이 빠진 6명만 나오고, 자막으로 나오는 멤버 명단에는
최명섭을 포함한 7명이 소개되고 있어서, 작사 작곡자인 최명섭이 실제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대학가요제 이후 별다른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이들에 대한 정보는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밴드의 이름을 왜 샤프로 지었는지, 서로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어떻게 밴드를 만들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MBC 대학가요제의 녹화 영상을 보면 남자 멤버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이고, 여자 멤버들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고
남자 멤버들 중 한 명이 여자 멤버들과 친구인 것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샤프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한 개의 싱글곡만 큰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말)로서 대중가요의
역사 속에서 이런 원 히트 원더를 기록한 아티스트들은 꽤 많습니다.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음악이라고는 단 한 곡에 불과하지만, 이 노래는 MBC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가장 인상적인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당시 다른 밴드들과 달리 트윈 기타 체제에 봉고 같은 악기가 추가되어 매우 소울 풀하고 펑키한 연주를 보여줬으나,
이 곡 이후에 추가 활동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2004년 KBS TV '콘서트 7080'에 한서대 의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보컬 조선희 님을 비롯해 멤버 4명이
24년 만에 출연했던 적은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연극이 끝난 후'에 영상에 샤프의 멤버이자 '연극이 끝난 후' 작사, 작곡자인 최명섭 님이 직접
댓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영상은 유튜브 "MBCfestival" 채널에 2012년에 올라온 영상으로, 최명섭 님의 댓글은 2021년에 올라왔다가
지금은 삭제된 상태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이곡이 일본 시티팝(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의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글이었습니다.
7개로 나누어 올린 꽤나 긴 댓글에서 최명섭 님은 ‘연극이 끝난 후’가 일본 음악과 유사하다는 세간의 평과,
일부 누리꾼들의 표절 시비에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샤프는 대학가요제 이후 음악 활동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었기에 근황이 반가울 따름이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김희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네온을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그룹 샤프의 보컬 조선희 님
1980년 MBC대학가요제 방송 캡처 (출처 유튜브 "MBCfestival" 채널)
열창중인 "샤프" 멤버들 (출처 유튜브 "MBCfestival" 채널)
'연극이 끝난 후'가 수록된 LP앨범
'연극이 끝난 후'가 수록된 카세트 테이프